경기도 하남시 미사대로 750. 개장 한 달 만에 누적 방문자 수 300만 명을 넘겼고, 연말까지 1천만 명이 찾을 것이라는 ‘스타필드 하남’(이하 스타필드)의 주소다. 아직 내비게이션은 그 장소를 ‘로딩’해내지 못한다. 좌표는 길을 벗어난 곳에 찍힌다. 올림픽대로를 벗어나 하남시로 들어가는 길은 온통 공사판이다. 외길의 한편에 ‘라이브 카페’가 늘어서 있고, 반대편으론 산책하기 좋은 ‘조정 경기장’이 있는 단출(!)했던 미사리는 이제 없다. 지금 그곳은 ‘강남 접근 10분’ ‘전셋값으로 내 집 마련할 마지막 찬스’ 등 서울 사람들의 필요와 욕망이 펄럭이는 맹렬한 건설 공간으로 재편 중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스타필드, 한국적 몰의 현재 입지 혹은 숙명 </font></font>그건 한국적 ‘몰’(mall)의 입지이자 거부할 수 없는 운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미국 국제쇼핑센터협의회의 정의에 따르면, 몰은 ‘유통 전문 디벨로퍼(업체)에 의해 계획·개발·운영·관리되는 다소매 점포의 집합체’다. 백화점이 주로 이미 성숙된 상권에서 영업을 한다면, 몰은 아직 존재하지 않는 광역 지대를 배후로 상정하곤 미성숙한 지역을 장기적 관점에서 거대 상권으로 견인해가는 사업이다. 이를 유통업에선 ‘디벨로퍼 비즈니스’(Developer Business)라고 부른다. 한국식으로는 ‘난개발’이 가장 적절한 표현이지 않을까 싶다. 아직 들어서지 않은 아파트들로 상가 개발을 정당화하고, 상가가 있으니 아파트가 필요하단 순환 논법 위에서 대개의 신도시들이 기획되고 결과적으로 정당화됐다.
스타필드가 개장하기 전부터 언론의 관심은 유별났다. ‘정용진의 승부수’라는 말이 아무렇지 않게 쓰였고, 1조원 투자를 두고는 ‘신세계의 유통 DNA가 바뀌는 출발점’이 될 거라며 기대감을 최대치까지 높였다. 이케아가 처음 국내에 점포를 열었을 때 언론이 그야말로 이케아의 콘텐츠(상품)를 ‘융단폭격’했단 점을 감안하면 좀 편파적이긴 하다. 언론이 주목하는 것은 스타필드의 규모인데 이케아 역시 규모에서는 획기적이었다.
물론 스타필드는 부지 11만7990m²(약 3만6천 평), 지하 4층~지상 4층의 연면적 45만9498m²(약 13만8900평), 동시 주차 가능 대수 6200대에 이르는 국내 최대 규모의 복합쇼핑몰이다. ‘축구장 70배 크기’라고 말하기도 한다. 2000년 개장한 국내 최초의 몰인 서울 삼성동 코엑스몰이 대략 축구장 30배 크기라니 스타필드가 엄청난 규모이긴 하다.
하지만 막상 공간 구성은 아기자기하단 느낌이 종종 들 정도로 장쾌한 맛은 없다. 코엑스몰의 공간이 다양한 경로로 이어지고 쪼개지면서 늘어서 있어 길을 잃을 정도로 입체적인 데 반해, 스타필드는 층 구획이 익숙하게 되어 있고, 층별 동선 역시 한 방향으로 이어져 비교적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다. 큰 규모이긴 하지만 촌놈 겁먹을 정도의 압도감은 아니다. 다만 채광은 독보적이다. 넓은 통창으로 햇살이 쏟아지는 광경은 스타필드 이전의 몰들에는 없던 것이다. 그래서 스타필드는 훗날 한국에 본격적인 ‘몰워커’(Mall Walker·몰에서 운동 삼아 산책하는 사람들) 시대를 연 장소로 기록될지도 모르겠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작은 쥐구멍 통과하는 ‘몰워커’ 시대 열까 </font></font>당분간 내비게이션이 길을 찾지 못해도 전혀 걱정할 것 없다. 근방에 가면 내가 거길 찾아간다기보다 그 건물이 나를 훅 덮친다. 스타필드의 겉모습은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거대한 박스처럼 보인다. 더 아름답게 지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은데, 이건 몰의 전형적 연출이다.
몰은 그 안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바깥에선 전혀 예측할 수 없는 형태를 취한다. (세종서적 펴냄)을 쓴 파코 언더힐의 표현을 빌리면 몰의 외부는 “거대한 벽에 작은 쥐구멍이 있는 형태”가 기본이다. 또한 몰은 기본적으로 부동산 개발 사업이다. 건물 외관은 곧 시공사의 비용으로 수렴된다.
시내 입지가 중요한 백화점과 외곽에 입지를 개발하는 몰은 고객 접근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원스톱 쇼핑’(One Stop Shopping)은 현대의 백화점을 설명하는 상징적 표현이다. 고객의 욕망을 수직계열화해 시간을 단축해내는 효용성이 공간의 핵심이다.
몰은 다르다. 차를 몰고 와야 하기 때문에 백화점에 유원지를 더한 장소성을 갖는다. 미국에선 1960년대, 한국에는 2000년대 이후 등장한 ‘몰링’(Mall-ing) 개념은 쇼핑은 기본이고 미팅, 식사, 게임, 오락, 산책 등 다양한 행위가 모두 그 안에서 가능하도록 하는 기획이다. 그래서 몰의 슬로건은 ‘원스톱 라이프스타일’(One Stop Lifestyle)이다. 백화점이 빠른 시간 안에 고객의 지갑을 노린다면, 몰은 방문자의 시간을 늘려 지갑을 노린다. 백화점 평균 체류 시간이 1~2시간인 데 비해 몰은 4시간에 이른다는 통계도 있다.
스타필드의 목표 역시 정확하게 거기에 맞춰 있다. 3040 남성을 겨냥한 ‘카 스튜디오’를 경쟁력 있는 콘텐츠로 앞세우는 것은 스타필드의 전략적 기획이 어떤 것인지 보여준다. 남성들의 유입과 체류 시간을 늘려, 그들을 능동적 방문자로 만드는 것을 1차 과제로 설정한 셈이다. 기존 쇼핑센터들이 부가 서비스 기능을 주로 여성 타깃으로 설정했다면, 스타필드는 ‘쪼가리 공간’을 남성들에게 많이 내놓았다. 영·유아와 어린이를 구분한 키즈존이나 유소년 스포츠 ‘체험’ 공간인 몬스터존은 이전 몰들에 비해 진화된 형태라고 할 수 있지만 그 정도 생경함으로 지금처럼 하루 10만 명을 계속 모을지 다소 회의적이다.
<font size="4"><font color="#C21A1A">‘놀이’ 더한 유통업 대형화의 근거는</font></font>이제 개장한 지 갓 한 달밖에 안 된 스타필드의 미래를 함부로 말하긴 어렵다. 신세계 입장에서 이 사업은 결코 실패할 수 없고, 부족한 것이 있으면 어떻게든 개선해서 제2, 제3의 스타필드를 속속 내놓을 것이다. 20여 년 전 영화 한 편이 현대자동차보다 더 많은 이익을 냈다는 말이 문화산업 투자에 큰 영감을 제공했다면, ‘이케아 입점 뒤 가장 큰 타격을 받은 건 가구업체가 아니라 에버랜드’라는 말은 유통업 대형화에 가장 큰 근거가 될 것이다.
‘구매 기능’ 중심으로 편성된 인간의 삶에서 쇼핑은 영원히 유지될 세계다. 거기에 ‘놀이’까지 더해진 공간은 감히 맞수가 없다고 할 만큼 강력하다. 다만, 그래서 문제다. 주말엔 입구에서 주차까지 2시간이 걸린다 하고, 안에선 줄 서서 다녀야 한단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전화신청▶ 02-2013-1300 (월납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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