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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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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밥심

결핍을 인정하지 못하는 사람, 인공지능 시대에 가장 인간적으로 살아가는 방법
등록 2016-09-30 19:08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일러스트레이션/ 조승연

올봄, 구글의 인공지능 ‘알파고’와 이세돌 프로의 바둑 대국이 진행되는 일주일 동안 매우 우울했다. 이세돌이 한 번이라도 이겨주었으니 망정이지 다 졌다면 좀더 깊은 우울증에 빠질 뻔했다. 주위에 비슷한 사람이 꽤 있었다. 공상과학(SF) 영화에서 본 미래의 인간 모습이 상상돼서였을까? 아무튼 그 대국이 끝난 뒤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 것인가’는 우리의 화두가 되었다. 자율주행자동차가 등장했고, 금융계에서는 로봇이 도우미 일을 하고 있다. 의료계에서도 IBM의 슈퍼컴퓨터 ‘왓슨’이 의사 구실을 대신한다는 소식도 있다. 그리고 “2045년이 되면 인류는 완전히 인공지능 시대에 살 것”이라는 전문가들의 예언도 있었다. 더불어 인공지능 시대가 도래하면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인간적인 것만 살아남을 거라는 이야기도 들린다. 그 이야기에 공감한다.

0과 1 사이에 너무 많은 ‘나’

알파고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다. 이진법에 따라 0 아니면 1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인간은 이진법이 될 수 없다. 0과 1 사이에 너무도 많은, 그야말로 인간적 갈등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스트레스다. 아무리 복잡한 기계도 원리는 간단하다. 그러나 인간의 문제는 아무리 단순해 보여도 복잡하다. 프로이트 식으로 말하면 의식의 세계에 영향을 미치는 무의식, 전의식이 너무 많은 것이다.

어느 시인의 시에 “나의 천적은 바로 나”라는 구절이 있다. 그 말을 실감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어쩌면 내 경우엔 “나의 천적은 내가 갖고 있는 기질”이라고 해야 좀더 정확한 표현일지 모르겠다. 불안 강도가 높고, 작은 일도 선뜻 결정하지 못하고, 자주 우울 속으로 곤두박질하고, 그러면서도 일단 추진력이 붙으면 매우 빠른 속도로 일을 해치우고, 반대로 한번 손을 놓은 일은 웬만해선 다시 기억도 잘 못하는, 내 기질이 언제나 ‘말썽’인 것이다. 그런 면들이 모여서 내 인생에 다양한 스펙트럼을 부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런데 적어도 아직 인공지능에 그런 기질이 ‘탑재’될 수 없다. 결핍된 부분이 많은 인간과 알파고처럼 완벽한 기계의 기질은 애초에 양립할 수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면 결국 인간적이란 것은 결핍이 많은 존재라는 뜻과 동의어인 셈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자신에게 그런 결핍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걸 몹시 어려워한다. 특히 남들과 비교할 때만큼 내가 갖지 못한 것이 두드러지는 경우도 없다.

예를 들어, 누구는 외모도 근사하고 능력도 뛰어나고 사업 수완까지 있어서 일취월장 성공을 향해 달려간다. ‘그런데 도대체 난 왜 이 모양 이 꼴인 거야’ 싶을 때가 여러 번 있는 것이다. 그 순간 인생의 불공평함 앞에 좌절감을 느끼지 않을 사람은 없다. 원망을 키워가는 사람도 많다. 좋은 가문, 좋은 부모 밑에서 태어나지 못한 원망, 좋은 기회가 주어지지 않는 것에 대한 원망, 잘난 외모와 명석한 두뇌를 타고나지 못한 원망, 남들이 날 제대로 알아주지 않는 데 대한 원망 등. 원망이란 한번 시작하면 도무지 끝이 없는 법이다. 원망은 대부분 열등감을 만들어내는 원인이 된다. 거기서 좀더 발전해 일상생활에 방해받을 정도면 신경증이 되고 마는 것이다.

‘플랜맨’의 변화

알고 보면 문제없는 인생은 없다. 운이 좋은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다. 누구도 ‘100%’ 채워진 인생을 살아갈 수는 없다. 어떤 인생이든 부족한 부분이 있다. 그런데 그것을 특별히 더 받아들이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 인생에 자부심이 강하고 완벽주의 성향이 강한 사람들이 그 유형에 속한다.

김수현(40·가명)씨도 그 유형에 속했다. 별명이 ‘플랜맨’이란 것만 봐도 그가 어떤 타입인지 짐작될 것이다. 그는 강한 자부심만큼이나 철저하게 매사를 통제하며 완벽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자 분투했다. 그는 모든 일을 정해진 스케줄대로 움직였다. 약간이라도 변화가 생기면 견디지 못했다. 얼마 전 팀장으로 승진한 뒤에는 더욱더 철저하게 자기관리에 돌입했다. 맡은 일에는 언제나 최선을 다하고, 인맥 관리도 철저히 하고, 헬스클럽에도 빠짐없이 나가고, 책도 많이 읽고, 여기저기 나가는 조찬 모임도 많았다.

그에게 감정은 사치스러운 것이었다. 오로지 성장과 발전만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왔다. 덕분에 “능력은 뛰어나지만 인간미는 별로”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그는 그것도 이해하지 못했다.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깍듯하게 예의를 지키는데…” 싶어서였다. 실제로 일도 잘하고 성실하고 책임감도 크다는 것이 그를 아는 주변의 평가였다. 문제는 자신이 매사에 철저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만큼 다른 사람들의 실수를 용납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직원들의 작은 실수에도 큰소리로 야단치는 적이 많았다. 가족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아무리 치밀한 ‘플랜맨’의 인생에도 복병은 자리하는 것이 세상사가 아니던가. 그의 인생에도 갑작스러운 변수가 등장하고 말았다. 상사가 바뀌면서 그의 시련이 시작됐다. 상사 역시 그와 똑같이 완벽함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아니, 오히려 한 수 더 위인 사람이었다. 상사는 그가 하는 일마다 오로지 지적만 했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는 언제나 나름대로 완벽하게 일을 해냈음에도 그랬다.

화를 참을 수 없었던 그는 감히 상사에게는 대들지 못하고 주차장 벽에 차를 들이박고 말았다. 심리검사 결과 그에게 가장 결핍된 부분은 당연히 유연성이었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그는 펄쩍 뛰었다. 자기가 얼마나 매사에 합리적이고 유연한 사람인데 그런 결과가 나올 수 있느냐는 거였다.

그의 반응은 이해할 수 있었다. 스스로 완벽하다고 여기는 이상, 거기에는 자기는 유연하고 관대하며 합리적 사람이란 환상도 포함되는 것이 당연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상담이 진행되면서 그는 자신의 상태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인정하고 그것을 채워나가기 위한 노력을 시작한 것이다. 마침내 조금씩 변화가 일어났다. 플랜맨의 인생에 처음으로 계획에 없던 변화가 시작된 셈이었다.

빈 부분을 인정하고 채워넣기

우리가 스스로에게 결핍된 부분을 채워가기 위해서는 김수현씨 사례에서처럼 먼저 그 결핍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그다음에는 그것을 채워넣으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나는 “마음도 먹어야 한다”고 표현하기를 좋아한다. 우리 몸이 음식을 먹고 분해해서 에너지를 내는 것처럼 마음도 들어오는 것이 있어야만 그것을 대사한 다음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다.

쉬운 예로, 아무리 근사한 모양을 하고 훌륭한 엔진을 갖춘 자동차라도 기름 없이는 굴러가지 않는다. 특히 좋은 자동차 엔진에는 좋은 기름을 사용해야 더욱 시너지 효과가 나게 마련이다. 마찬가지로 정신의 에너지를 최대한 효과적으로 만들어내려면 우리 마음에도 좋은 영양소가 공급돼야 한다. 즉, 마음도 먹어야 하는 것이다.

과거에 내가 책에 ‘나는 매일 마음을 먹는다’고 썼더니 어느 광고하는 분이 전화를 걸어와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그분은 “요즘 너무 창의력이 메말라서 일을 그만두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 중이었는데 마음도 먹어야 하는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 당신 글을 읽고 보니 자신의 창의력이 왜 메말라가는 느낌이었는지 알 것 같다. 그 동안 마음에서 줄기차게 꺼내어 쓰기만 했지 채워넣을 줄 몰랐다는 것을 이제 깨달았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마음을 먹는다는 것

그렇다면 우리 마음은 무엇을 먹어야 하나? 아마 이쯤에서 다들 해답을 짐작하실 것이다. 그리고 어쩌면 “뭐야, 너무 진부하고 상투적인 거 아니야?”라고 여길 분들도 있을 것이다. 물론 ‘희망과 꿈을 먹고 사랑·즐거움·기쁨 등 긍정적 감정을 먹는다’는 해답은 충분히 그런 생각을 갖게 한다. 하지만 내가 늘 말해오듯 인생에서 대부분의 해답은 대체로 진부한 법이다. 중요한 것은 그와 같은 긍정적 감정이야말로 우리 정신의 양식이며 밥심이라는 것이다. 그것을 먹을 때 우리 뇌에서는 스트레스 호르몬의 분비가 억제되고 마음의 평화에 연관되는 옥시토신이 분비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렇게 인생에서 좌절을 이겨나가며 자신에게 결핍된 부분을 보완하기 위해 노력해나간다면 그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우리 사회가 요즘 감정노동의 중요성에 대해 마음을 쓰게 된 것 역시 바로 이 마음 양식의 중요성을 알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므로 어떻게 서로 희망과 삶의 의미를 나눌 것인지야말로 앞으로 펼쳐질 인공지능 시대에 우리가 풀어야 할 과제가 아닐까 싶다.

양창순 마인드앤컴퍼니 대표·신경정신과 전문의
*새 연재 ‘마음비추기’를 시작합니다. 심리·정신 분석 전문가인 필진들이 현대인의 뒤엉킨 마음을 들여다보고 함께 치유하는 지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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