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째달’의 음악을 처음 들은 건 꼭 12년 전인 2004년 가을이었다. 이나영, 김민준, 김민정, 현빈 등이 출연한 MBC 드라마 (인정옥 작가는 요즘 뭐하시나?)를 보다가 제목처럼 ‘아일랜드스러운’ 선율에 꽂혀버리고 말았다. 극중 인물들의 운명이 서로 엇갈리는 장면에서 흐르던 애절한 바이올린 선율은 차가운 듯 따스했고, 공허한 듯 풍성했다. 지금도 두번째달을 대표하는 곡 다.
그해 처음 대중음악 담당 기자를 맡은 나는 두번째달을 수소문하기 시작했다. 서울 강남의 어느 작은 라이브 클럽에서 공연한다는 얘기를 듣고 무작정 찾아갔다. 클럽은 120여 명의 사람들로 빼곡했다. 인기 밴드가 됐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서쪽 하늘에’ 뜬 ‘두번째달’“전에는 밴드 멤버 7명이 관객 5명 앞에서 공연한 적도 있었거든요. 언론과의 인터뷰도 오늘이 처음이에요.” 공연을 마치고 클럽 한구석에 둘러앉아 우리는 얘기를 나눴다. 등 영화음악과 포카리스웨트(“나나나나 나나나 나~” 이거 맞다) 등 광고음악을 만든 김현보(기타·만돌린)를 중심으로 박진우(베이스), 박혜리(키보드·아이리시 휘슬), 최진경(키보드·아코디언), 백선열(드럼·퍼커션), 조윤정(바이올린) 등 주로 영화·광고음악 일을 하던 사람들이 뭉쳤다고 했다. 보컬을 맡은 린다 컬린은 아일랜드에서 온 영어학원 강사였다. 국내에 생소한 음악을 한번 해보고자 2003년 말 에스닉 퓨전 밴드 두번째달을 결성했다고 했다.
이듬해인 2005년 2월, 두번째달과 다시 만났다. 마침내 데뷔 앨범 을 냈기 때문이다. 그들은 아일랜드를 비롯해 스코틀랜드, 프랑스, 스페인 등 서부 유럽에 퍼져 있는 켈트족의 전통음악뿐 아니라 중동, 남미, 아프리카 등 세계 곳곳의 음악을 고루 녹여냈다. 인터뷰 당시 브라질 출신의 세계적인 퍼커션 연주자 겸 보컬 발치뉴 아나스타치오도 있었는데, 그는 를 포르투갈어로 노래해 두번째달 1집에 실었다. 두번째달의 음악을 우연히 듣고 감동해 선뜻 동참한 특별 게스트였다.
두번째달은 2006년 초 열린 한국대중음악상 시상식에서 ‘올해의 음반’ ‘올해의 신인’ ‘최우수 재즈·크로스오버 음반’ 등 3관왕을 차지하며 주인공이 됐다. 연주 밴드가 이렇게나 큰 주목을 받는 일은 이후로도 좀처럼 일어나지 않았다. 이들은 그해 윤은혜 주연 드라마 음악을 맡으며 활동의 절정에 이르렀다.
달이 차면 기우는 법이라 했던가? 두번째달은 기울기 시작했다. 2007년 음악적 성향 차이로 두 팀으로 갈렸다. 김현보와 박혜리는 아일랜드 음악을 좀더 깊이 파는 ‘바드’를 결성했고, 박진우·최진경·조윤정은 두번째달의 색깔을 잇는 ‘앨리스인네버랜드’를 결성했다. 백선열은 두 밴드 모두에 참여했다.
2008년 광화문 거리에서 김현보를 만난 적이 있다.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집회 현장에서 그는 동료들과 함께 음악을 연주하며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민초들의 한을 담은, 그야말로 거리의 음악이었다. 이후 오랫동안 그들의 소식을 접하지 못했다. 언젠가부터 바드는 박혜리와 새 멤버 루빈의 2인조로 정비됐다.
구한말 소리꾼과 유럽 악단의 만남 같은2012년 두번째달이 다시 떠올랐다. 두번째달 이름으로 디지털 싱글 를 발표하고 단독공연도 했다. 얘기를 들어보니 김현보와 앨리스인네버랜드가 2011년 다시 합쳐 두번째달을 재결성한 것이었다. 두번째달 1집 때부터 세션 기타리스트로 참여한 이영훈까지 정식 멤버로 합류해 6인조가 됐다. 다만 박혜리의 바드는 계속 독자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두번째달은 지난해 무려 10년 만의 새 앨범인 2집 를 발표했다. 발칸반도 집시풍의 , 1집 때 멤버였다가 고국 아일랜드로 돌아가 가수를 하는 린다 컬린이 보내온 노래에 연주를 입힌 등 대부분이 기존 색깔의 연장선상이었지만, 단 하나 이질적인 곡이 있었다. 앨범 타이틀곡인 였다. 판소리 의 한 대목인 ‘사랑가’를 소리꾼 이봉근이 부르고 두번째달이 연주한 독특한 형태의 곡이었다. 그걸 듣고 우리 판소리가 그렇게 좋은지 처음 알았고, 서양식 연주와도 그렇게 잘 어울릴 수 있는지도 처음 알았다.
특별한 계기는 우연히 찾아왔다. 2014년 7월 국립극장 주최 ‘여우락 페스티벌’에서 국악 크로스오버 밴드 ‘고래야’와 합동공연을 했는데, 이를 본 정동극장 관계자가 소리꾼 이봉근과 두번째달이 를 재해석하는 무대를 제안한 것이다. “1920년대 구한말 소리꾼과 유럽 악단이 만나면 어떤 음악이 나올까?”를 상상하며 만든 무대는 큰 호응을 얻었다. 결국 지난 4월 두번째달의 국악 프로젝트 앨범 발매로까지 이어졌다. 젊은 소리꾼 김준수와 고영열이 함께한 14곡이 담겼다.
모든 곡이 다 좋았지만, 개인적으로 에서 가장 큰 감흥을 얻었다. 1집 앨범 수록곡 을 차용한 선율 위로 흐르는 김준수의 소리를 듣노라면, 불처럼 뜨거운 사랑에 빠졌다가 금세 이별해야 했던 성춘향과 이몽룡의 애끓는 마음이 고스란히 전해져온다. 나는 우리 소리와 서양 음악을 이토록 완벽하게 조화시킨 음악을 이전에는 들어보지 못했다. 이 앨범을 접한 뒤로 판소리 자체에도 흥미가 생겨 찾아듣고 싶어졌다.
세계 여러 나라 민속음악을 연주하던 두번째달은 10여 년의 세월 동안 지구를 돌고 돌아 대한민국으로 돌아왔다. 유럽, 중동, 아프리카, 남미 민속음악을 탐닉하던 그들은 이제 우리 음악의 뿌리를 찾아 자신들의 자양분을 접목해 새로운 싹을 틔워내고 있다. 참으로 반가운 귀환이다.
치우침의 그림자가 없는 음악문득 12년 전 첫 인터뷰 때 그들이 했던 말이 떠오른다.
“태초에 빅뱅이 일어나면서 우주와 지구가 생겨날 때 만약 지구 주위의 농도나 온도가 조금만 달랐어도 달이 두 개가 됐을지도 모릅니다. 그렇게 됐다면 인류는 해와 달, 흑과 백, 음과 양 등 이분법적인 편협함에서 훨씬 자유로워지지 않았을까요? 확고한 음악적 벽들을 허물고 사람들의 가슴에 새롭게 다가가는 밴드가 되고 싶습니다.”
이 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유효했으면 한다. 다시 떠오른 두번째달은 기욺 없이 그렇게 언제까지나 세상을 비추었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의 이분법적 편협함이 드리우는 그림자가 사라지도록 말이다.
서정민 씨네플레이 대표·전 대중음악 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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