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혐오의 시대

등록 2016-05-13 17:32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가히 혐오의 시대다. 어느 때보다 성소수자와 이주민을 공격하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총선은 압권이었다. 거대 정당들의 대표급 인사들이 동성애와 이슬람을 ‘반대’한다고 공개적으로 천명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요구 역시 ‘누가 이런 법 찬성하느냐’며 일축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은 유엔조약기구의 국가 심의 때마다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권고다. 혐오를 전면에 내세운 정당도 약진했다. 기독자유당은 정당득표율 2.64%를 기록해, 원내 진출에는 실패했지만 정당 국고보조금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공포·증오·배척 모두 한 단어 </font></font>

이 시대상을 혐오라고 통칭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그리 단순하지만은 않다. 한 동료는 영어의 헤이트(hate), 포비아(phobia), 디스거스트(disgust)의 번역어가 모두 ‘혐오’로 모아진다는 것을 지적한 적이 있다. 혐오(증오)범죄 또는 혐오표현에 쓰이는 헤이트, 동성애·성전환공포, 즉 호모포비아와 트랜스포비아에 붙는 포비아, 타자에 대한 역겨움을 뜻하는 디스거스트가 모두 혐오의 이름으로 번역된다는 것이다. 뒤집어보면 이런 번역어의 모습은 우리가 자주 입에 올리는 혐오의 본질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준다. 혐오는 소수자에 대한 관념적 역겨움을 바탕으로 이들이 사회를 해칠 것이라는 공포를 생성하고, 이들을 증오하고 배척하는 행동과 말들로 나아간다.

지난해 가을 조우석 KBS 이사의 발언은 이런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는 한 토론회에서 동성애에 대해 “더럽다” “역겹기 짝이 없다”라고 하면서 “국가 전복, 교회 파괴, 사회 해체”를 가져온다고 했다. 그리고 그의 말은 “그 사람들을 우리가 구제해야 할 책임이 있다”는 것으로 끝이 났다.

그의 발표 중간에는 성소수자 활동가들의 실명이 등장했다. 더러운 존재가 어떻게 국가를 전복할 수 있는지, 국가를 전복하려는 사람을 왜 ‘구제’해야 하는지는 아무런 논리성도 연관성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 말들은 성소수자와 활동가들을 상처 입혔고, 청중에게 ‘국가 전복과 교회 파괴의 최종병기’인 동성애자들을 공격해야 할 근거를 제공했다.

최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SNL 코리아'의 동성 간 키스 장면에 대한 징계, 'TV조선' 뉴스의 ‘10대 청소년까지 파고든 동성애’ ‘에이즈 심각, 동성애 확산 때문?’과 같은 기사 역시 ‘혐오(역겨움과 공포)에 의한 혐오(차별과 공격)’였다.

미국의 법철학자 누스바움은 혐오감을 법적 판단의 기준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 혐오의 바탕을 구성하는 역겨움이 인간의 취약성과 동물성으로부터 멀어지려는 감정이라고 지적한다. 자신이 오염되고 싶지 않아 타자를 배척하지만, 그 취약함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이미 가지고 있는 것일 뿐이다. 혐오를 넘어서는 과정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래서 그 공포는 타인 때문이 아니라 자신 때문이라는 것을 인식하고, 마찬가지로 나약하고 불안에 떠는 옆에 있는 사람들과 서로 껴안는 것으로 시작된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휴머니티를 향해</font></font>

5월17일은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이다. 1990년 5월17일 세계보건기구가 정신질환으로 규정하던 동성애를 국제질병분류에서 삭제한 것을 기념한다. 질병분류라는 공적 판단에서 혐오를 내려놓았을 때, 소수자들의 건강은 오히려 증진됐다. 삭제해야 할 것은 상상된 역겨움과 근거 없는 공포, 그리고 이것을 기반으로 하는 배제와 폭력이다. 누스바움은 혐오감의 반대편에 휴머니티를 놓는다. 이 혐오의 시대에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은 인간애와 존엄성이다.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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