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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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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봄

등록 2016-04-21 19:23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한 남자고등학교에 ‘여자 같다’는 이유로 글로 옮기기 힘든 욕설과 조롱, 폭력을 당하던 학생이 있었다. 그는 스스로의 정체성을 동성애자라고 했다. 학생은 선생님에게 도움을 청했다. 상담선생님은 그의 여성스런 행동을 친구들 입장에서도 생각해보라고 했다. 학교에서 실시한 심층 심리검사에서 ‘매우 우울함, 매우 불안함, 자살 위험 매우 높음’의 결과가 나왔다. 학교는 학부모에게 이 사실을 알리지 않았다. 담임선생님은 전학을 권유했다. 심한 괴롭힘이 있던 어느 날, 학생은 ‘무단 조퇴’를 했다. 그리고 다음날 반성문을 제출했다. 그는 반성문에 “내가 없다면 더 이상 문제는 일어나지 않겠지…” “끝내 저는 이기적<del>일 수밖에 없었습니다</del>인 아이입니다. 죄송합니다”라고 적었다. 그러고는 세상을 등졌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살기 위해 벌인 투쟁</font></font>

부모는 학교의 책임을 묻는 소송을 벌였다. 1심과 2심은 학교가 학생의 죽음에 일부 책임이 있다고 판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달랐다. 대법원은 학교가 학생의 죽음을 예상할 수 없었다고 했다. 집단 괴롭힘이 ‘중대’하지 않았고 ‘악질’적이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대법원이 2심 판결을 파기하고 고등법원으로 사건을 환송하면서 사건이 세상에 알려졌다. 부모를 수소문해서 동료 변호사들과 함께 사건을 맡겠다고 했다. 자살 경위를 추적하는 심리부검을 전문가에게 맡겼다. 전문가들은 예방 가능한 죽음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파기환송심의 마지막 결과는 대법원의 판결과 마찬가지였다.

어느 날 뉴스를 봤다. 거대한 배가 잠기고 있었다. 파기환송심 선고 뒤 두 달이 지난 때였다. 학생들이 배 안에 갇혀 있다고 했다. 가라앉은 배를 보며, 그 학생을 떠올렸다. 소송을 같이 한 다른 변호사도 그러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서로 다른 사건이었지만, 죽음을 둘러싼 모습은 놀랍도록 비슷했다. ‘왜 빠져나오지 않았느냐’라는 말 속에서, 죽음을 당한 이들이 죄인이 되었다. ‘그렇게 될 줄 누가 알았느냐’는 반문과 함께, 책임을 지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그 학생을 심리부검한 전문가는 생전에 남긴 글을 샅샅이 찾아보고 주변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그가 내린 분석 중 하나는 그 학생이 죽기 전까지 살기 위해 엄청난 투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학생의 가족 역시 그 죽음 이후 또 다른 싸움을 벌여야 했다.

세월호 참사 생존학생, 그리고 희생학생 형제자매의 이야기를 담은 책 를 읽었다. 이 책은 생존자들, 그리고 유가족이라고 불리게 된 형제자매들이 벌인, 함께 살기 위한 투쟁을 육성으로 기록한다. 구술자들은 자신이 어떻게 책임을 지려 했고 져왔는지, ‘나라’와 ‘어른’들이 그것을 어떻게 좌절시키려 했는지 말한다. 세상이 들으려 하지 않았던 10대의 이야기를 읽으며, 재판할 때 그 학생의 동생 이야기를 듣지 않은 것을 깨달았다.

마지막 판결이 있던 날은 동생의 고등학교 졸업식이었다. 형제를 잃고 5년이 지났다. 변론이 있을 때마다 그랬듯, 그 학생의 부모와 밥을 먹었다. 졸업식날이어서 동생도 함께했다. 헤어지면서 그 동생이 고맙다고 했다. 부모는 동생과 사건 이야기를 거의 않는다고 했다. 재판에서 진 변호사에게 고마울 게 무엇이 있다고. 악수를 하고, 어깨를 꽉 쥐고, 재빨리 몸을 돌려 기차역으로 들어갔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슬픔 나누면 더 슬프다던 동생 </font></font>

에서 한 희생학생의 동생이 말한다. “슬픔을 나누는데 어떻게 줄어들어요, 둘 다 슬프지.” 그래서 자신만 힘들고 말지 다른 사람들에게 잘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했다. 슬픔을 나누는 것은 책임을 나누는 것이다. 두 번째 봄이 왔다.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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