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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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찢어진 마음

등록 2016-03-31 20:32 수정 2020-05-03 04:28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일러스트레이션/ 이우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서 화제가 된 한 장의 사진. 여섯 색깔 무지개로 꾸며진 한 현수막 사진이다. 그러나 거기 적힌 글귀는 알아볼 수가 없다. 현수막의 대부분을 누군가가 도려냈기 때문이다. 그 문구는 한 대학에 입학한 성소수자와 비성소수자 학생 모두를 환영한다는 내용이었다고 한다. 험하게 베이고 접혀버린 이 현수막은 캠퍼스 입구 신입생 환영이나 행사 알림을 위한 게시물들이 늘어선 곳에 붙어 있었다. 다른 현수막들이 멀쩡한 사이 이것만 찢겼다. 그 길고 거칠게 뚫린 모습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낸 비웃는 입과 흡사하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환영하지 않는다는 상징</font></font>

이런 일은 이 학교에서만 벌어진 것이 아니다. 올해만 해도 성균관대, 서울여대, 서강대, 서울대 등에서 성소수자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게시물들이 훼손되거나 사라졌다. 올해만 벌어진 것도 아니다. 지난해에는 부산대·고려대·이화여대 등에서 유사한 사건이 있었고, 오래전부터 대학 내 성소수자 동아리의 홍보 게시물이 강제로 뜯겨지는 일은 종종 발생했다.

성소수자 인권 관련 게시물을 훼손하는 행위는 전형적인 혐오범죄(또는 증오범죄)에 해당한다. 혐오범죄는 쉽게 말해 소수자에 대한 편견이나 혐오, 적대감을 동기로 해서 이루어지는 범죄를 말한다. 어떤 특정한 행위를 일컫기보다는, 일반적으로 범죄로 다루어지는 행위에 소수자를 공격하기 위한 동기가 있을 때 붙여지는 이름이다. 현수막 훼손 역시 성소수자에 대한 적대감으로 물건을 파괴한 것이므로 혐오범죄에 속하는 손괴 행위다.

혐오범죄의 성격 중 하나는 사회적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범죄라는 것이다. 이는 어떤 특질을 가진 사회 구성원을 이 사회에서 배제, 억압 또는 제거해야 한다는 주장을 물리적으로 표출한 것이다. 즉, 혐오범죄는 그 폭력을 통해 소수자 집단에게 “보이지 않는 곳으로 사라져라”라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그래서 성소수자 신입생을 환영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을 훼손한 것은 상징적이다. 대학 사회가 성소수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성소수자 신입생은 환영할 수 없다는 메시지를 끔찍한 모습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혐오범죄의 또 다른 특성은 그 표적이 된 집단에 속한 개인에게서 사회 전체로 뻗어나가는 파급력이다. 성소수자들은 현수막이 찢겨질 때 마음 역시 찢겨지는 감정을 느끼고, 현수막의 입을 닮은 시커먼 구멍을 보며 그것에 잡아먹힐 것 같은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이 공격은 성소수자라는 특성을 노린 것이기에, ‘모든’ 성소수자는 많든 적든 영향받을 수밖에 없다. 성소수자의 가족, 친구, 또 성소수자 인권을 지지하는 사람에게도 상처는 퍼져나간다. 보통의 사회 구성원에게도 우리 모두가 존엄하고 동등한 인간이라는 가치가 훼손당했다는 인식을 불러일으킨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증오의 심연이 삼키기 전에</font></font>

사람에 대한 환대를 갈가리 찢어버린 이 혐오범죄에 대한 치유와 대응이 사후적인 형사처벌로만 될 수는 없을 것이다. 성소수자에 대한 이 사회의 편견과 증오가 그 시작이기 때문이다. 무지개색 환대의 현수막이 매서운 증오의 송곳니가 돼버린 지금, 우리에게는 더 많은 환대가 필요하다. 증오의 심연을 담은 저 시커먼 입에 이 사회가 잡아먹혀버리기 전에.

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font color="#991900">*한가람 공익인권변호사모임 ‘희망을만드는법’ 변호사가 ‘노 땡큐!’ 연재를 시작합니다.</fo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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