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년 2월6일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문 앞에서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마트산업노동조합,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 등이 대형마트 심야배송 허용을 추진하는 정부와 여당을 규탄하고 있다. 연합뉴스
#1.
2026년 2월10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더불어민주당 을지로위원회 소속 의원들과 쿠팡 등 택배업계 관계자, 노동계 인사 등이 모였다. 이날 열린 ‘택배 사회적대화기구’ 회의에선 심야노동을 주 46시간으로 제한하는 내용이 논의됐지만 합의에 이르지 못했다. 애초 논의됐던 40시간보다 심야노동 시간이 늘어난 안이지만, 쿠팡 등의 반대가 있었다. 주 46시간은 야간노동 할증(30%)을 고려하면 과로사 판정 기준인 주 60시간을 턱밑까지 채운 수준이다.
#2.
그보다 이틀 전인 2월8일 서울 종로구 국무총리 공관. 정청래 민주당 대표와 김민석 국무총리,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만났다. 당·정·청은 이날 대형마트도 심야배송이 가능하도록 하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대형마트가 심야배송을 하는 쿠팡 등 온라인 유통업체와 ‘공정한 경쟁’을 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겠다는 이유에서다.
이 장면들이 이야기하는 건 두 가지다. 하나는 심야배송을 하는 택배기사와 물류센터 노동자들이 잇따라 숨지면서 구성된 택배 사회적대화기구의 논의가 점점 후퇴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 2025년 말 고용노동부 의뢰로 진행된 심야배송의 건강 위험성 관련 연구에 참여한 심야배송 택배기사들의 수면 중 혈압 하강 수치가 위험 상태에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는 연구 결과(제1596호 참조)를 받아든 민주당이 “장시간 노동이 상당히 위험하고 사망에 이르게 할 수 있다는 의견이 나온 만큼, 격차는 상당히 있지만 노동시간을 줄여가기 위한 노력은 필요한 것 같다”(박홍배 의원)고 언급했던 것과 다른 길을 가고 있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이런 상황인데도 대형마트마저 심야배송에 뛰어들게 되면 앞으로 심야배송 경쟁은 더 극심해질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다. 한겨레21이 만난 현장 마트 노동자들과 소상공인, 전문가들도 이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쿠팡을 견제하고 소비자에게 다양한 선택권을 준다는 긍정적 효과보다 대형마트의 노동조건 악화와 소상공인·자영업자의 매출 하락 등 부정적 효과가 더 클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현재 대형마트는 낮엔 배송이 가능하지만 0시부터 오전 10시까지는 배송이 불가능하다. 국회에 발의된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김동아 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의 골자는 대형마트의 기존 의무휴업과 영업시간 제한은 유지하되 ‘전자상거래를 위한 영업 행위’, 즉 온라인 배송은 적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신설하는 것이다. 지금도 이마트 같은 경우 쓱(SSG)닷컴이라는 별도의 온라인 배송 법인을 만들어 센터를 따로 두고 심야시간대 배송을 하고 있는데, 이 법이 통과되면 굳이 별도 법인을 만들지 않아도 마트에서 심야시간대 배송이 가능해진다. 게다가 심야배송이 열린다는 것은 마트에서 심야에 배송이 나가기 위해 물건을 분류하고 포장하는 작업도 필요해짐을 의미한다. 전국 약 400개 대형마트가 물류센터가 되는 셈이다.
“노동 형태가 바뀌겠죠. 그런데 100% 악화될 거예요. 당장 심야근무조가 추가될 거고요. 주간에 일하길 원하는 분들이 강제로 야간에 투입되겠죠.” 김선경 마트노조 이마트지부 사무국장이 말했다.
김선경 국장의 걱정은 경험에서 우러나온 것이다. 대형마트는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마다 그 부담을 노동자들에게 전가해왔다. 이마트 왕십리점에서 10년째 ‘캐셔’(계산원)로 일하고 있는 신선희(52)씨는 2024년 ‘퀵커머스’(바로배송) 서비스가 도입됐을 때를 떠올렸다. “우리 지점에서 먼저 시작했어요. 그런데 퀵커머스를 위한 부서를 만들거나 전담 인원을 둔 게 아니고 내가 있는 캐셔나 진열 쪽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그냥 돌아가면서 투입됐어요. 무기계약직 1명이랑 정규직 1명이 하루 2시간씩 돌아가면서 들어갔어요. 파트별로 인원이 빠지니까 당연히 노동강도는 높아졌고 연장노동도 많이 하게 됐죠.”
이 때문에 최대영 마트노조 온라인배송지회 사무국장은 대형마트에서 심야배송이 가능하게 되면 현재 외부 센터에서 진행하는 물품 피킹(분류) 업무를 마트 주간 노동자에게 전가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게다가 이미 외주화한 배송 업무 역시 대형마트 물품까지 배송이 가능하게 돼 배송해야 할 물품이 늘어나게 되면 택배기사들에게 가는 배송 수수료가 더 줄어들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된다.
각 대형마트가 ‘물류센터화’가 된다지만, 쿠팡 등의 물류센터보다 대형마트 노동자에게 강도가 더 센 노동이 주어지리라는 전망도 나온다. 서울시 업무상질병판정위원으로 활동하며 마트 노동자들의 질병 사례를 다양하게 들여다봤던 김철주 전문의(일터건강을 지키는 직업환경의학과의사회)는 “오히려 택배 물류센터 노동자보다 대형마트에서 온라인 배송을 담당하는 이들의 노동강도가 훨씬 높기 때문에 (심야배송 규제가 풀리는 건) 재앙”이라고 말했다.
“대형마트가 온라인 배송을 위해 만들어진 공간이 아니잖아요. 물건 판매를 위해 만든 공간이다보니 배송까지 가는 동선 자체가 상당히 길어요. 쿠팡 같은 경우엔 물건을 쉽게 꺼낼 수 있도록 적재하는데, 마트는 사다리 작업도 많이 해요. 더 큰 문제는 대형마트 자체가 줄어드는 추세라 노동조건에 관해 이야기하기도 어렵다는 거예요. 회사에서 하라면 해야 하죠.”
이미 마트 노동자들의 노동강도는 한계에 다다른 상태다. 대형마트들은 그간 누적되는 적자에 인력을 꾸준히 줄이며 대응해왔기 때문이다. 김철주 전문의는 “(심야노동 규제 논의가 이어지는 와중에) 대형마트를 끌어들였다는 건 건강적인 면보다 친기업적인 면으로 접근한다는 뜻”이라며 “정부의 이번 조처(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 추진)는 사실상 노동자 건강권 측면에서는 아무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여당에선 이번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이 “쿠팡 이용에 불안해하면서도 대안을 찾지 못하는 소비자들의 선택지를 넓혀주는 차원”(김영배 의원)이라는 의견도 나왔다. 그러나 대형마트 심야배송 허용의 여파는 마트 안에서 끝나지 않는다. 이어지는 불황으로 벼랑 끝에 선 소상공인들에게도 여파가 미칠 가능성이 크다.
경기도 의정부에서 편의점을 운영하는 손현덕(57)씨는 당·정·청이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을 추진하는 상황을 두고 이렇게 말했다. “링 안에서 프로 한 명(쿠팡)하고 싸웠던 걸 이제 다섯 명(대형마트들)하고 싸우라는 겁니다. 어떻게 버티겠어요.”
손씨가 운영하는 편의점 인근에는 대형마트가 세 곳이나 있다. 손씨의 편의점은 야간시간대 매출이 일평균 10만원 정도인데, 이번 개정안이 통과되면 야간 영업 인건비마저 건질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문제는 이렇게 돼도 가맹본부와의 계약 때문에 야간 영업을 당장 그만둘 수도 없다는 점이다. 프랜차이즈 편의점은 주로 4~5년 단위로 가맹본부와 계약하는데, 야간 영업에 관한 사항도 계약에 포함된다.
서울 서대문구 포방터시장에서 16년째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유경희(53)씨도 진작부터 벼랑 끝에 서 있다. 그는 쿠팡에 대응하기 위해 쿠팡이츠 서비스를 시작했다. 쿠팡은 처음에 수수료를 받지 않았는데, 2025년 4월부터 “프로모션이 종료됐다”며 갑자기 수수료를 내라고 했다. 중개 이용료와 카드수수료, 배달비 등을 제하면 순식간에 판매 금액에서 20~30%가 날아간다. “여기서 마트까지 배송한다고 하면 어쩌라는 건지 모르겠어요. 우리도 이제 밤새워 일해야 할까요. 아니면 직업을 바꿔야 할지.”
양창영 참여연대 민생희망본부장은 쿠팡과 대형마트가 경쟁해서 얻을 소비자의 선택권보다 대형마트의 배송 진입이 골목상권이나 중소상인에게 미칠 피해가 훨씬 명확하고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은) 결국 소매업을 중심으로 한 유통시장에서 주도권을 그야말로 대형마트와 쿠팡에 완전히 맡기겠다는 뜻”이라며 “시장을 완전 무한 경쟁으로 풀어주겠다는 것이기도 하다. 대기업들과의 무한 경쟁에서 중소상인이나 자영업자들은 더욱 설 자리가 없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당·정·청은 이번 개정안 추진과 관련해 “전통시장과 골목상권 등을 보호하기 위해 유통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고 밝혔지만, 현장의 반응은 싸늘하다. 이성원 한국중소상인자영업자총연합회 사무총장은 “말도 안 되는 이야기”라며 “유통산업발전법의 취지는 전통시장 보호가 아니다. 유통산업 전체의 어떤 균형발전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와 여당이 ‘상생협력기금’ 조성을 검토한다고 밝힌 것에 대해서도 이 사무총장은 “한국 도소매 업체가 160만 개인데 얼마를 거둬서 어떻게 나눠줄 수 있을까. 뒷돈 주듯 전통시장 몇 개만 기금 주고 말겠다는 것인가”라고 말했다.
마트 노동자와 소상공인 등이 입을 모아 반대 목소리를 내면서 민주당 내부에서도 유통산업발전법 개정안에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소상공인연합회 회장 출신으로 당내에서 전국소상공인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는 오세희 의원은 2월6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형마트 온라인 새벽배송 허용은 반드시 중단돼야 한다”며 “쿠팡 견제라는 명분으로 포장된 이 논의가 현실화한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상공인에게 전가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정의당은 같은 날 낸 성명에서 “반복되는 야간노동 과로사로 이제야 규제 논의가 시작된 참이었다. 이재명 정부는 야간노동 과로사 벌써 잊었나”라며 “당·정·청의 영업시간 제한 완화 방침은 이러한 노력을 일거에 뒤집고 무력화하는 것이자 쿠팡 막겠다고 더 많은 쿠팡을 양산하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류석우 기자 raint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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