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발표된 게임 (스탠리 우화)은 게임 자체에 대한 근본적 질문을 던져 화제가 되었다. 도전 과제의 해결로 요약되는 게임의 서사에서 ‘과제’ 자체가 사라진다면? 거대 빌딩에서 일하는 427번 피고용인 스탠리는 어느 날 상부로부터 아무런 지시도 받지 않게 된다. 텅 빈 빌딩 안에는 그와 정체를 알 수 없는 내레이터의 목소리만 남는다. 플레이어는 불안하다. 그는 이제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 수십 개의 결말 중 어떤 결말을 맞든 게임은 계속해서 자동 리셋된다. 게임을 진행할수록 만들어진 선택지가 아닌 자신만의 답을 찾아가도록, 게임 바깥에서 게임이라는 것의 숨겨진 성질을 보도록 유도된다.
게임을 해체하는 게임같은 개발자가 지난해 10월 출시한 게임 (초보자 가이드)는 더 나아가 적극적으로 게임을 해체한다. 게임은 실제 개발자인 데이비 레든이 직접 내레이터로 등장해, 자신의 친구인 ‘코다’(CODA)가 2008년부터 2011년까지 만든 게임들을 소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된다(물론 픽션이다). 특정한 목적, 도전 과제는 없고 오직 게임 플레이를 통해 플레이어에게 코다라는 친구와 그의 게임을 설명하는 내용이 전부다.
코다의 게임 세계는 낯설다. 그것은 기존 게임에 뭔가를 더해서가 아니라, 겉치레를 모두 빼버리고 정수만 남긴 데서 오는 낯섦이다. 그는 말하자면 게임의 설계도 자체를 드러내려 한다. 창밖의 우주 아래에 있는 게임 맵의 바닥을 보여주거나, 사방의 벽을 사라지게 해 보이지 않던 방 밖의 거대한 공간과 복잡한 통로들을 드러내거나, 하나의 알고리즘으로 설계된 감옥 게임이 현상만 바꾸면 어떻게 여러 가지 버전으로 변주될 수 있는지 보여준다.
코다는 이에 더해 보통 사람이 ‘즐길 수 없다’고 여기는 아이디어 심기를 즐긴다. 오직 뒤로 걸을 수밖에 없거나, 수감실에 ‘1시간 동안’ 갇혀 있어야 하거나, 어떤 문에 이르는데 갑자기 믿을 수 없이 느린 속도로 기어가야 하거나, 반복되는 충돌을 막을 수 있는 정답이 ‘더 이상 못하겠어’라고 솔직히 말하는 거든가 하는 것이다. 내레이터 데이비는 그가 심어놓은 이런 식의 무의미하고 목적 없는 행위들을, 빨리 해결하거나 목표 지점을 만드는 식으로 바꾸어놓곤 한다. 기존 질서를 깨뜨린 이 이상한 게임들이 진행될수록 플레이어는 생각에 잠긴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게임의 실체는 무엇인가? 우리는 이 게임을 왜 하는 건가? 이 게임의 탈출 해법은 무엇인가?
그렇게 18개의 게임을 거쳐 마지막, 첫 게임에 등장했던 위스퍼 머신이 나온다. 한 여자가 ‘당신의 몸을 희생해 이 머신을 멈추면 우리 모두 살 수 있다’고 말했던 기계다. 이때 예상 밖으로 감동적인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 기계의 동력원인 푸른 빛줄기 속에 몸을 던지자 돌연 몸이 공중으로 높이높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잠시 후 저 먼 발 아래에는 방금 전까지 헤매고 다녔던, 복잡하고 불가해하며 광대한 미로의 세계가 끝없이 펼쳐졌다.
먹먹한 마음으로 엔딩 크레디트를 보고 있으면 마침내 다시 ‘게임 시작하기’가 화면에 나타난다. 플레이어는 문득 이것이 진짜 엔딩이 아님을 깨닫는다. 훨씬 더 교묘하고 분주한 모양으로 조작된 세계, 정해진 선택이 강요되는 현실 세계의 게임이 거기에 버티고 있는 것이다.
‘더 이상 못하겠어’어슐러 르귄의 단편 에는 깊은 우물에 갇힌 마법사가 나온다. 그는 안개, 매, 반지 등으로 여러 차례 변신해 탈출을 시도하지만 실패하고 번번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온다. 그는 결국 일생에 단 한 번밖에 할 수 없는 ‘해제의 주문’을 속삭인다. 그렇게 다른 차원의 불가역적 세계로 이동하면서 그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내가 찾은, 게임 속에 숨겨진 코다의 ‘해제의 주문’은 이런 것들이었다. 멈춰서서 바라보기. 느린 도달. 자신에게 솔직해지기. ‘더 이상 못하겠어’라고 말하기. 그리고, 회로 바깥으로의 탈주. 초보자 가이드를 제대로 통과했다면 그는 더 이상 초보자가 아니다. 누군가는 결국 스스로 답을 찾아내 각자의 ‘해제의 주문’을 생각하기를, 더 이상 게임을 만들지 않는다는 코다는 바랐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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