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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옆집에 웹드라마가 산다

<대세는 백합> 윤성호 감독, 박관수 기린제작사 대표, 최재윤 딩고스튜디오 이사가 말하는 웹드라마의 현재와 미래
등록 2016-01-06 20:38 수정 2020-05-03 04:28

‘거실 TV를 보는 것은 강아지뿐일 것’이란 미래 예측은 이미 누군가에겐 이상할 것 없는 현실이다. 거실 TV 시청은 수용자의 의지적 행위가 아닌 관습적 풍경이 되어가고 있다. 수치로 입증된다. 2015년 한 해 지상파 방송은 100여 편의 드라마를 쏟아냈지만, 시청률 10%를 넘긴 주중 드라마는 채 10편 남짓이다. 주중 드라마 가운데 시청률 20%를 넘긴 작품은 (SBS)가 유일하다.
웹드라마, 이들의 공에 빚지다

김진수 기자

김진수 기자

웹에도 드라마가 있다. TV용으로 제작된 드라마를 웹으로 다시 보는 것을 넘어선 창작 행위가 본격화되고 있다. 2015년에는 50편이 넘는 ‘웹드라마’가 선보였다. 웹드라마는 모바일에 최적화된 짧은 스토리텔링 콘텐츠를 의미한다.

반응은 놀라울 정도다. 까지 무려 4편이 1천만 클릭을 넘었다. 웹예능을 표방한 는 현재까지 누적 클릭 수가 무려 3천만 건을 넘어섰다. 방송 바깥의 문제에 둔감한 연구자들과 여전히 관습의 질서를 따르며 안락한 비평만 난무하는 얄팍함 사이에서 웹드라마는 빠른 속도로 영토를 확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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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 웹드라마의 장르적 태동을 알리고, 이후 와 를 거쳐 으로 웹드라마의 좌표가 되고 있는 윤성호 감독, 지금껏 없던 영역의 프로듀싱을 개척하고 있는 박관수 기린제작사 대표, 그리고 가장 주목받던 케이블 방송사를 뛰쳐나와 온라인·모바일 콘텐츠의 전위에 서 있는 딩고스튜디오의 최재윤 이사를 만났다.

2016년, 이 3명의 이름을 기억해둘 필요가 있다. 만약, 올해 웹드라마가 비평적으로나 산업적으로 유의미한 성과를 거둔다면 단언컨대, 이들의 공에 빚지는 것일 테다.

윤성호 감독은 왜 독립영화의 기린아에서 웹드라마의 ‘거장’이 됐는가.(웃음)

윤성호(이하 윤)  아니다. 우선 ‘웹드라마’란 표현부터 고민이 많다. 네이버에서 안착시킨 용어인데 처음 시도했던 의 경우 ‘인디시트콤’이라고 불렸다. ‘모바일 무비’라고도 부르고 ‘스낵 드라마’라고도 하다가 결국 네이버캐스트가 플랫폼이 되면서 웹드라마가 정착됐다. 큰 불만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무래도 드라마의 프레임에 갇힌다. 뭐, 무비라고 하면 무비에 갇히겠지만.

박관수(이하 박)   용어를 둘러싼 첨예한 갈등이 있는 건 아니지만, 웹드라마라는 이름은 포털이 자사 플랫폼을 강화할 목적으로 도입한 건 맞는 것 같다. 사람들이 익숙해지면 그게 이름인 것이기도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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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 감독은 왜 어느 날 갑자기 웹드라마를 하게 된 것인가.

  갈증이 있었다. 독립영화로 만날 수 있는 관객은 아무래도 한정적이다. 좀더 대중적인 시나리오를 고안하거나 상업영화로 가지 않으면 극복하기 어렵다. 심도가 깊지 않고, 얇은 얘기를 발사하는 데 관심 많은 나는 어떻게 작업해야 하나 답답했다. 감독들은 전통적으로 온라인 상영이 아닌 극장을 고수하는데 나는 거기에 연연하지 않는 얇은 스타일이다. 경로 고민의 답이 온라인이었다.

방송국은 기-승-전-편성표
최재윤 이사(왼쪽), 윤성호 감독(가운데), 박관수 대표(오른쪽). 우연치 않게 웹드라마에 모여 을 함께 만든 이들은 농담인듯 사담 아닌 수다처럼 유쾌하게 드라마의 다음 문법에 대해 말했다. 김진수 기자

최재윤 이사(왼쪽), 윤성호 감독(가운데), 박관수 대표(오른쪽). 우연치 않게 웹드라마에 모여 을 함께 만든 이들은 농담인듯 사담 아닌 수다처럼 유쾌하게 드라마의 다음 문법에 대해 말했다. 김진수 기자

최재윤 이사는 를 연출하는 등 CJ E&M에서도 독보적인 프로그램을 만든 PD 가운데 한 명이었다.

최재윤(이하 최)   원래 프로그램을 잘 만들기보단 플랫폼에 고민이 많은 유형의 PD였다. 일률적인 포맷이 싫어서 일부러 30분짜리, 45분짜리, 15분짜리 클립 이런 것을 만들고 그랬다. 그러다가 ‘엠넷 아메리카’(Mnet America) 일로 미국에 갔다. 그때 고민이 본격화됐다. 미국 TV 시장 공략은 답이 없었다. 떠밀리다시피 멀티 플랫폼으로 가야 했고, 그때부터 온라인만 계속 파게 됐다. 떠밀려왔다.(웃음)

떠밀려왔다고 하지만, 케이블 방송도 실험적인 작업을 하기 수월한 플랫폼이 아닌가.

  TV는 그럼에도 이제 올드 미디어다. 여전히 강력해 보이지만 헤매고 있다. 한국은 세계적으로 가장 특이한 문화콘텐츠 구조를 갖고 있다. 영화만 하더라도 배급망을 가진 CJ가 감독을 데리고 영화를 만들어 파는 게 아닌가. 방송국은 무슨 실험을 하더라도 방송국 수익구조에 기여하는 결론을 내야 하는 조직이다. 1시간짜리 예능이건, 다른 무엇이건 간에 아무리 새롭더라도 결국 24시간 편성 시간을 배분받아야 하고 몇%의 시청률 커버리지를 목표로 하는 산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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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성호 감독은 모르는 사람은 모르고 아는 사람은 열광하는 이름이다. 운 좋게도 그의 데뷔작 (2001)이 영화제에 출품됐을 때, 심사를 한 적이 있다. 함께 심사에 참여했던 한 영화계 관계자는 영화를 보는 내내 거의 떼굴떼굴 굴렀다. “홍상수보다 더 지질하고, 우디 앨런보다 더 유머스럽다”는 찬사를 받았던 그의 영화는 그해 독립영화계를 밝힌 가장 좋은 신호 가운데 하나였다.

그러나 이후 윤 감독의 행보는 여느 유망주들이 쌓는 필모그래피와 조금 다른 방향으로 전개됐다. 첫 장편 (2007)을 만들기까지 그는 전방위적인 영상 게릴라처럼 활동했다. ‘사담’과 ‘담론’ 사이에서 가장 재기발랄한 농담을 하기 위해 영상을 만드는 것처럼도 보였고, 독립영화가 쌓아왔던 관행과 완전히 결별하지도, 주류에 편입되지도 않았지만, 주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인디’의 상징처럼 보였다.

그런 윤 감독을 웹드라마에 안착시키고, 그의 작업을 산업적으로 의미 있게 만들고 있는 이들이 바로 박관수 대표와 최재윤 이사다. 윤 감독이 연출한 은 ‘스무 살 경주와 미모의 전직 아이돌 세랑’이 펼치는 로맨틱 드라마다. 백합(일본어 百合 ゆり)은 GL(Girls’ Love)을 일컫는 말로, 여성 간 동성애를 소재로 하는 장르다. 은 윤 감독과 최 이사가 공동 기획하고, 박 대표와 최 이사가 공동 제작했다.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웹드라마들. 윤성호는 당대 대중문화에서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열광하는 이름 가운데 하나다. 윤성호 제공

윤성호 감독이 연출한 웹드라마들. 윤성호는 당대 대중문화에서 모르는 사람은 모르지만 아는 사람은 열광하는 이름 가운데 하나다. 윤성호 제공

각각 다른 이력을 갖고 있다. 그러다 어떻게 셋이 뭉쳐 을 하게 됐나.

  윤 감독과는 농구하다 알게 됐다. 이런저런 얘기하다가 을 기획하게 됐다. 물론, 윤 감독은 농구를 하기엔 작지만, 큰 분이다.(웃음)

  그냥 큰 분이라고 하지 말고 나를 웹드라마계의 ‘뤼미에르 형제’ 정도라고 하면 좋지 않나.(큰 웃음) 는 대충 웹드라마의 태초가 아닌가. MBC 에브리원에서 방송했을 때의 성적이 좀 아쉽긴 했지만, 모바일엔 최적화된 작품이었다. 웹드라마로 ‘코스요리’를 차릴 순 없다. 서사의 ‘컵밥’이다. 하지만 그만큼 날렵하고 종횡무진할 수 있다.

  아니다. 항상 그런 유의 단편은 있었다. 미국만 하더라도 1998~99년에 이미 웹 시리즈들을 선보인 플랫폼이 있었다.

  맞다. 거슬러 올라가면, 류승완 감독의 같은 작품도 있긴 하다. 인터넷 특성에 최적화한 맛을 내고, 장르적 클리셰를 난사하는 그런 영화. 내가 원조 아니다.(웃음) 다만, 나와 작업했던 박혁권·한예리·박희본·정연주 이런 배우들이 웹드라마를 통해 연기 경로의 선순환을 만들었단 점은 인정해달라.

웹드라마로 코스요리를 차릴 순 없다 웹드라마의 제작 추세는 어떤가.

  아직은 홍보 목적이 가장 많다. 아이돌, 정부, 기업들이 모두 홍보 수단으로 진입해 있다. 콘텐츠 유통만으로는 제작비 수급이 쉽지 않아 목적을 갖고 있는 콘텐츠가 많을 수밖에 없다. 그렇지 않은 경우 포털이 자사 플랫폼에서 독점 콘텐츠를 만든다. KBS 고찬수 PD등이 방송 편성을 전제로 웹드라마 실험을 했지만 쉽지 않다는 결론이 났다.

최근 각광받고 있는 건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Branded Entertainment) 방식이다. 브랜드를 하나만 정해 제작 지원을 받고 브랜드를 노출하지 않으면서도 콘텐츠 가치를 높이며 2차, 3차 창작물을 만드는 방식이다. 아이폰4가 출시된 기념으로 제작한 이 베를린국제영화제 단편 부문에서 황금곰상을 받기도 했다. 엡솔루트 보드카가 후원한 도 그렇고 애드 무비(Ad Movie)도 작품성을 훼손받지 않는 사례가 많다. 도 홍콩의 이금기로부터 단독 후원을 받았다.

  제작비 문제가 현실적으로 여전하지만 그럼에도 웹드라마 제작은 확대될 것으로 확신한다. 점점 사람들이 모이고 있고, 여기서 구애받지 않고 이야기를 전달할 수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제작비 문제는 해결될 것이다.

중국 진출이 어려운 이유 결국 PPL(간접광고)인 것인가, 나영석 PD의 도 웹예능으로 제작되며 PPL 규제가 없어 오히려 수익의 질은 좋았다고도 한다.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는 나영석 PD의 후광 효과와 A급 출연자들이 겹쳐진 사례다. tvN 차원에서 밀어주기도 했다. 최근 오히려 PPL은 줄어드는 추세다. PPL은 기본적으로 편성을 전제로 직접적인 노출이 담보되어야 한다.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와 PPL은 전혀 다른 개념이다. 브랜디드 엔터테인먼트는 단순한 홍보가 아닌 적절한 스토리텔링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작업이다.

  아직까지 수익보다 미래에 대비하는 차원이 아닌가 싶다. 10~20대 환경에 맞출 손바닥TV에 적합한 콘텐츠의 베타테스트 성격이다. 1부 리그에서 주인공을 하지 못하는 아이돌들의 연기 트레이닝 성격도 물론 있다. 다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는 사라진 서사의 영역을 웹드라마가 채운다는 점이다.

웅장한 서사는 여전히 올드 미디어가 담당해야겠지만, 작은 코미디, 작은 아이러니 같은 소극들이 영화나 TV로 제작되기에는 너무 힘든 현실에서 웹드라마의 가능성과 의미가 있다. 전에 없던 장터가 생겼고, 이 장터가 살아날 수 있게 많은 인재가 모이는 게 중요하다.

웹드라마가 새로운 한류를 창출할 것이란 장밋빛 전망, 특히 중국 시장 진출과 관련해 많은 얘기가 있다.

  그 강력하다는 한국 드라마들도 지금 중국에 안 팔리고 있는데,(웃음) 상영 규제가 너무 많아 당장은 힘들다. 하지만 수요는 분명 있다. 중국 시장이 북미 영화 시장보다 크고 1년에 40%씩 성장하고 있으니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다만 개발 단계에서 중국화의 문제가 있다. 의 중국 진출을 논의 중인데, 중국의 실정에 맞춰달라는 요구가 많다. 한국에선 30대 중·후반이 노처녀이지만 중국은 20대 중·후반이 노처녀이다. 중국엔 아직 요리 콘텐츠가 별로 없어서, ‘실연의 헛헛함을 달래는 따듯한 국물 요리’ 이런 설명만으론 부족하다. 를 10분짜리 10편으로 만들어 중국에 판매할 계획인데, ‘요리하는 여자’ ‘쿡방’을 원천 저작물로 다양한 기획을 확대해가는 방식을 학습하는 중이다.

  당장에 소셜네크워크서비스(SNS) 영향력으로부터 수익이 발생하고, 포털로부터 몇백만원을 받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저예산을 투여해 SNS를 수단으로 파괴적인 이야기가 만들어지면 그걸 통해 장편을 만들고 블록버스터를 가져가는 기획으로의 확장성을 보고 있다.

  어벤저스 시리즈 같은 거다.

올해는 어떤 작업들을 하고 싶나.

  미국의 코미디 채널에서 서비스하는 라는 작품이 있다. 유튜버 여자 2명이 페미닌한 이슈를 가지고 스탠드업 코미디를 하는 형식이다. 정말 재밌다. 국내 창작물의 경우 페미니즘 이슈는 납작한 상상력만 갖고 있는 사례가 많다. 여자도 남성적 문법에 갇혀 있기 때문이다. 남성 개그는 잘하는데, 여성 개그는 그래서 안이하고 진부하다. 여성 창작자들과 페미닌한 관점에서 시민권을 획득하는 농담을 웹드라마로 해보고 싶다.

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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