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 날 때면 전북 완주군 내의 작은 마을들을 마실 삼아 찾아다니는데 재작년 이맘때 완주군 소양면 어느 작은 마을에서 할머니 한 분을 만났었다. 할머니는 마당에 따로 만들어둔 아궁이에 불을 피워 물을 끓이고 있었다. “내일 교회 가야 혀서 머리 좀 감으려고 물 끓이고 있다”는 할머니의 집은 정갈한 초가집이었다. 처마에 지른 대나무 장대에는 메주가 소담하게 매달려 있었고 마당 한 귀퉁이에 모여 앉은 장독들은 반짝반짝 윤이 났다.
우리 어미 같은 할매배추를 길러낸 남새밭 한쪽 자리엔 묻은 지 얼마 안 된 김장독이 눈에 띄었다. 마루에는 분홍색 플라스틱 바가지 하나가 놓여 있었는데 그 안엔 노란 배추 한쪽과 무 하나, 배 반쪽, 사과 반쪽, 갓과 쪽파 한 뭉치에 자박하게 국물을 담은 동치미가 담겨 있었다. 머리 감을 물을 끓이기 전에 도가지(항아리)에서 동치미 한 바가지 떠다놓은 모양이었다. 머리 감기 전에 동치미를 떠다놔야 머리를 감고 곧장 방으로 들어갈 수 있을 테니 말이다. ‘머리 감고 동치미 뜨러 가다 감기 들기 십상이지, 암만’이라고 나는 생각하며 배시시 웃었다. 자식 여섯은 죄다 시집·장가 들어 떠나고 영감하고 함께 이 집에서 살았는데 이제는 영감도 죽고 혼자 이러고 산다며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머리를 수건으로 싸매던 할머니가 말했다.
“자식들이 오라 해도 안 가. 아파트가 편허기는 혀도 씻고 자는 것만 편허지 다른 것은 편허도 안 혀. 마당 있고 남새밭 있고 혀야 김장도 담그는 것이지. 지금도 때 되면 죄다 모여 여그서 김장 담가가. 긍게 여그가 얼매나 좋아, 허허허.”
늙은이 사는 모습이나 하는 말이 대개 그러한 것인지, 다른 땅 남모르는 할머니의 하는 짓과 말이 어찌 우리 어미와 그리도 같을까. 머리 감은 할머니는 감기 들지 모른다며 동치미 바가지 들고 곧장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뒤돌아 나오는데 보지 않았어도 할머니의 앞일과 뒷일이 훤하게 그려졌다.
내 어미는 이제 이가 시려 도가지에서 막 떠담은 시원한 동치미를 먹지 못한다. 그래서 동치미 한 바가지를 떠다 아랫목에 모셔두었다가 미지근해지면 그때 먹는다. 동치미 한 바가지 떠다 아랫목에 두면 삶은 밤, 고구마 먹을 때 한 모금씩 마시고 밤참으로 배추와 무도 한 점씩 집어먹는다. 새벽에 일어나 자리끼로도 마시고 아침 밥상 반찬으로도 먹는다. 그리고 다시 한 바가지 떠다놓고 그것을 물과 간식, 반찬 삼아 겨울을 난다. 소양면에서 만난 할머니라고 그러지 않을라고. 울 엄마도 교회 가기 전날이면 뒷마당 아궁이에 불 피워 끓인 물로 머리 감고 교회 갈 채비를 한다. “뜨신 물 콸콸 나오는 보일러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평생 그러고 살았고 그렇게 머리 감아도 개운하기만 한 것을….
동짓달 늦은 밤 시골집을 찾아갔더니 어미는 낡은 집에서 잠들어 있었다. 깎아먹은 배 껍질과 까먹은 밤 껍데기가 분홍색 바가지에 담겨 있었다. 그 옆에 동치미는 없었다. 첫눈이 야무지게 내릴 무렵에 김장을 담근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일이 바빠 김장 일을 거들지 못하고 뒤늦게 찾아 면목이 없었다. 올해는 누이와 누이의 친구, 매형, 어린 조카가 일손을 거들어 김장을 마쳤다고 했다. 어미의 얼굴은 머리 감고 난 할머니의 얼굴처럼 편안해 보였다. 김장은 한 해 동안 이뤄지는 큰일 중 가장 마지막 일이어서 내년 봄까진 달리 걱정할 것이 없어서일 것이다.
“혼자 무슨 맛으로 먹는다냐”“얼굴이 해반허오. 큰일 허느라 고생 많으셨소.”
김장이 큰일이긴 해도 김장을 담그기 위해 봄부터 해온 일에 비하면 화룡정점을 찍는 찰나일 수밖에 없다. 봄에 고추를 심어 수확하고 말리고 빻아 고춧가루를 만들고, 마늘과 양파를 거둬 말리고, 실파를 심어 대파로 길러내고, 젓갈을 담가 익히고, 갓과 무, 배추를 심고 길러내야 비로소 김장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사이사이 애타는 일이 한두 가지였을까.
이튿날 새벽 아침 밥상에는 김장김치와 함께 닭백숙이 올랐다. 닭백숙을 보자 동치미 생각이 절실해 어미에게 물었다.
“동치미는 안 담갔소?”
“왜 동치미 담가주랴?”
“시원한 동치미 국물에다 이 닭국물을 넣고 괴기도 짝짝 찢어 넣고 무수랑 배추도 쓸어담고 거그다 국수를 말아 먹으믄 기가 맥히게 맛나.”
이가 시려 먹지 못하는 것이라 담그지 않았는데 밭에 아직 무도 있고 배추도 남았으니 한 도가지 담가주겠다는 어미의 말이 반가웠다. 사실 이 대화는 몇 년째 반복되는 어미와 나만의 콩트 같은 것이다. 지난해에도 이렇게 물어 동치미를 얻어냈고 재작년에도 그 전해에도 그랬다. 주문을 외워야 문이 열리고 찾는 사람이 있어야 동치미도 담근다. 아마도 어미는 그렇게 물어주길 기다리고 있었는지 모른다. 동치미를 담그려면 한 도가지 가득 담가야 군내 없이 잘 익는데 먹는다는 사람이 없으면 혼자서 그 많은 동치미를 담가 어찌 먹어치울 수 있을까. 그래서 내가 오길 기다려 동치미를 찾으면 그때 담그는 것인지도 모른다. 그도 그럴 것이 이렇게 해서 동치미를 담그면 3분의 2는 나를 주고 나머지를 어미가 먹는데, 시골집에 갈 때마다 보면 아랫목에 동치미를 꺼내놓고 반찬 삼아 물 삼아 먹는 걸 볼 수 있다. 어미는 이렇게 말한다. “혼자 살면 뭐든 귀찮은 법이여. 함께 먹을 사람이 있어야 김장도 허고, 동치미도 담그고, 괴기도 삶고, 팥죽도 끓이고, 된장도 담그는 법이지. 안 그냐? 혼자 그것을 무슨 기운으로 만들고 무슨 맛으로 먹는다냐. 간장만 있어도 밥이야 먹는 것을.”
여기서 뜬금없는 연애 얘기 하나 하자. 얼마 전 나와 연애하는 그녀가 밥을 지어놓고 이런 메모를 남겼다.
“연애를 이루는 가장 큰 두 가지는 성욕과 식욕일 겁니다. 어쩌면 같은 비중으로 적절히 제대로 버무리지 못하면 연애 또한 실패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매번 돈만 지불하고 식욕을 해결하는 연인들은 쉬이 지칩니다. 식욕을 채움에 열과 성을 다하지 않았으므로 성욕과의 균형이 깨진 것이지요. 함께 머물고 같이 있는 시간에 온전히 먹고 싸고 할 수 있다면 참과 거짓을 금방 알아챌 수 있을 텐데요. 손잡고 먼 길 가는데 눈이 맞을 때마다 할 수는 없잖아요. 눈 맞으면 먹기도 하고 그래야지요. 성욕이 허허로워지면 식욕만으로도 쇠털같이 많은 날 살고 그러는 거지요. 연애를 상상만 하는 세상 모든 외로운 아저씨들도 요리를 할 일입니다. 달콤한 건 몸에 바를 때보다 마주 보고 함께 먹어야 제맛입니다. 허니를 몸에 바르는 건 상상이지만 허니시나몬단호박은 실체이며 사랑입니다. 건빵에 설탕만 발라도 완전 사랑스럽죠. ^^”
동짓날 너를 위한 팥죽 한 그릇연애만 이런 것이 아니라 사람 사이에 하는 짓이란 것이 거개가 이러하다. 어미와 자식 관계라 해도 그녀가 말하는 연애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간장만 있어도 밥은 먹어지지만 동치미를, 김장김치를, 허니시나몬단호박을 만드는 데 열과 성을 다하는 이유는 나 하나가 아닌 너와 함께 밥을 먹기 때문이다. 가난한 영혼들아, 동짓날 긴긴밤이 얼마 남지 않았다. 그놈을 혹은 그년을 위해 뜨끈한 팥죽 한 그릇 끓여 동치미 국물과 함께 나눠먹어보자. 동짓날 긴긴밤이 그리 길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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