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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연시 선물 고민하는 독자를 위한 <한겨레21> 필자와 이웃들의 추천…마음을 담은 착하고 소소한 선물 리스트
등록 2015-12-22 22:47 수정 2020-05-03 04:28
한겨레 김성광 기자

한겨레 김성광 기자

평소에도 자주 들여다보는 스마트폰을 이맘때면 어쩐지 더 자주 보게 된다. 올해가 가기 전에 인사를 잊지 말아야 할 사람이 없을까. 연락처를 뒤적이며 작은 선물로 마음을 전하고 싶은 이들도 몇몇 떠오르는데 유독 지출이 많은 계절이라 망설여진다.

취업포털 사이트 잡코리아가 직장인 752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답변자 가운데 73.3%가 ‘11월보다 12월 지출이 많을 것’이라고 답했다. 부모님 및 친지의 용돈 및 선물(16.6%), 조카·지인의 크리스마스 선물(10.1%), 자녀의 크리스마스 선물(3.9%) 등이 지출의 큰 몫으로 손꼽혔다.

그런 고민을 덜어줄 작고 따뜻한 선물 리스트를 을 아끼는 ‘친구’들로부터 추천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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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는 책 선물할 거라는 오해는 금물

소설가 정이현씨는 일상적으로 써서 닳아 없어지는 것을 주로 선물한다. 핸드크림, 비누, 초콜릿, 커피, 문구류 등 써버리고 나면 남아 있지 않는 것, 먹고 없어지는 것, 휘발돼버리는 것이 그의 연말 선물 리스트에 자주 오른다. 얼마 쓰지 못해 본인이 직접 사기 망설여질 만한 것도 그가 즐겨 하는 선물이다. 가장 최근에 한 선물은 쌍둥이 아기를 낳은 지인에게 건넨 아기 운동화다.

‘이걸 쓰면서 오래오래 내 생각 해’라고 강요하는 것이 아니니 상대방에게 부담을 덜 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가장 좋은 선물은 ‘밥 사줄게’라는 말이다. 택배로 선물을 부치는 것보다 함께 마주 앉아 밥을 먹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은 바쁘고 외로운 우리에게 가장 어렵고도 소중한 선물이다. 소설가라 책을 자주 선물할 것이라는 ‘오해’도 받지만 가장 꺼리는 선물이다. 자신의 취향을 강요하는 것 같아 부담스러워서다.

함께 시간을 보내는 방법으로 붕가붕가레코드 대표 고건혁씨는 공연을 보는 것을 추천했다. 연말 선물과 관련한 홍보성 기사가 넘쳐나는 요즘, 독자를 위해 작고 착한 선물을 추천해달라는 요청에 연말 대형 기획사들의 덩치 큰 공연에 치인 인디레이블의 대표는 웃으며 말했다. “아무래도 머리에 스쳐지나가는 건 우리 공연밖에 없는데….” 인디레이블의 작은 무대들에도 귀를 기울여달라는 것이 그의 전언이다.

“없어도 나눠야지.” 가든파이브 상인비상대책위원장 유산화씨는 투쟁 현장을 누비는 밥차에 힘을 보태기로 했다. 뻥튀기나 과자 같은 간식을 좀 사서 밥차 활동을 하는 지인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쌍용차와 코오롱 등 장기 농성장과 경남 밀양의 송전탑 건설 반대 투쟁 현장 등 돈과 권력에 의해 한데로 내몰리는 이들에게 이름 없이 보내는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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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뭐 연말이라고 특별히 생각한 건 아니고….” 가끔 그렇게 간식거리를 밥차를 통해 보내왔다는 유씨는 이런 마음을 함께 담아 전한다. 뭐가 됐든 속이 채워져야 불공정한 세상과 싸워나갈 힘이 생길 테니까. 콩 한쪽을 나눠 먹는 것만큼 든든하고 간절한 연대도 없을 테니까. 유산화씨는 각 농성장에 있는 주민과 노동자들의 내년 한 해가 자신이 보내는 뻥튀기처럼 좀 가벼워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작은 선물들로도 크고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상단 왼쪽부터 뻥튀기, 현미로 만든 핫팩, 동물과 함께 쓰는 향초, 뱅쇼, 감말랭이. 한겨레 자료, 박정윤 제공, 박정윤 제공,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한겨레 자료

일상에서 유용하게 쓰이는 작은 선물들로도 크고 따뜻한 마음을 전할 수 있다. 상단 왼쪽부터 뻥튀기, 현미로 만든 핫팩, 동물과 함께 쓰는 향초, 뱅쇼, 감말랭이. 한겨레 자료, 박정윤 제공, 박정윤 제공, 한겨레 박미향 기자, 한겨레 자료

멀리서 보내는 연대의 먹거리

유산화씨처럼 먹을 것을 나누는 일은 가장 풍족한 위안을 주는 선물이다. 음악평론가 김학선씨도 먹거리 선물을 추천했다. 처음엔 “이건 너무 뻔한 건데…”라며 추천을 망설였다. 뻔하다고 하기에 케이크나 쿠키 같은 답변이 나올 줄 알았다.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케이크 예약 경쟁을 벌이는 유통 업계와 베이커리 업계의 광고가 흔한 시즌이다. 하지만 의외로 김학선씨의 추천 품목은, “감말랭이 어때요?”

10년째 지난한 싸움을 기록하고 있는 밀양 송전탑 반대 주민들이 판매하는 품목 가운데 하나다. 밀양 주민들이 기른 채소와 과일, 직접 만든 반찬을 판매하는 ‘미니팜협동조합’을 통해 구매할 수 있다. 미니팜협동조합은 1만원 이상 출자금을 납입하면 가입할 수 있는데, 들여다보면 건강하고 온기 넘치는 선물의 보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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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학선씨가 추천한 ‘밀양의 친구들 감말랭이’는 3팩에 5만5천원에 판매 중이다. 무말랭이 등 반찬과 산에서 뜯은 구절초와 금목서꽃으로 만든 향기로운 차도 있다. 달기로 유명한 밀양 사과와 투쟁하는 와중에도 부지런히 볍씨를 뿌리고 모를 내며 거둔 햅쌀도 누군가의 따뜻한 밥상에 오르길 기다리고 있다.

소설가 한창훈씨와의 전화 통화 중 간간이 들려오는 바람 소리는 왠지 겨울 바다의 시리고 비릿한 냄새도 같이 실어오는 것 같았다. 그는 거문도의 이웃이 판매하는 해초비빔밥을 추천한다. “밥까지 보내는 건 아니고 미역줄기, 톳 등 7가지 해초를 보내는데 4천원어치 한 팩이면 두 명 먹어요. 5만원어치 사면 택배 무료. 최형란이라고 동네 식당 주인인데, 나도 해초 다듬을 때 몇 번 돕기도 했어요.”

소설가의 손길이 깃든 해초다. “에이, 난 그냥 재수가 없어서 불려가서 도왔는디…” 하고 말을 흐린다. “해초 다듬고 데쳐서 냉동 보관하고 양념장도 만들고…. 이런 선물도 괜찮겠어요? 연말에 거문도산 깨끗한 해초 드시고 건강하시라고.”

조금만 머리를 굴리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아이디어가 반짝이는 선물을 마련할 수도 있다. “뱅쇼 세트 어떨까요?” TV평론가 이명석씨의 추천이다. 뱅쇼는 겨울에 따뜻하게 마시는 와인으로 만든 음료다.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넉넉한 냄비에 와인을 붓고 과일과 설탕, 계피 스틱과 정향 등을 넣고 센 불에 끓인다. 화르륵 끓고 나면 약한 불로 줄여 20분 정도 과일과 향신료에서 향이 우러나도록 두면 끝.

끓이면서 알코올이 날아가 술을 잘 못하는 이에게도 부담이 없다. 감기 예방에도 좋다. 그런데 재료를 사려면 양이 너무 많아서 부담이 되곤 한다. 한 사람이 재료를 소분해 선물 세트를 만드는 건 어떨까. “계피 스틱, 정향, 월계수잎, 오렌지나 과일 한두 개가 들어가면 좋겠고, 여력이 되면 싼 와인을 한 병 넣어도 좋겠죠. 레시피를 정리해 작은 종이에 인쇄해서 같이 넣으면 될 것 같아요.”

시나리오작가 김지현씨는 페퍼듀절임을 엄마와 외할머니에게 선물하고 싶다고 했다. 페퍼듀는 고추의 일종인 채소로 방울토마토만 한 크기에 색깔과 모양은 빨간 피망 같다. 새콤달콤하게 절여서 주로 먹는데, 절인 페퍼듀의 식감은 반시처럼 말랑하고 부드럽다. 달큰한 맛과 톡 쏘는 느낌이 혀를 자극한다. 400g 한 병에 5천~7천원 정도 하는데 온라인 사이트 여러 곳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즐거울 일 없다 여기는 할머니께

“나이 들면 새로운 건 하나도 없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내년에 87살 되는 할머니도 아마 그럴 테죠. 하지만 페퍼듀절임을 맛보시고 아직 세상에 안 먹어보고 즐거울 게 남아 있구나, 하는 기쁨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페퍼듀절임은 치즈와 크래커랑 먹으면 정말 맛있다. 1년 정도 두고 먹을 수 있다.

최근에 이 맛을 친구들과 나누려고 사람들을 초대했던 김씨는 술과 음식을 먹으면서 너무 떠드는 바람에 옆집에서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았다. 미안한 마음에 다음날 한 병 더 사서 옆집 현관문 고리에 걸어두었다.

누군가 포근하게 안아주고 싶은 마음을 선물로 대신하기도 한다. 연극배우 지현준씨는 함께 무대에 서는 배우에게 겨울 점퍼를 선물하고 싶다. 7년째 같은 외투를 입고 다니는 동료에게 따뜻한 외투로 응원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선물의 가치는 상대를 생각하는 세심한 관찰과 배려에서 비롯한다. 어쩌면 별로 비싸지 않은 것일지라도 지씨의 동료는 그 옷을 입을 때마다 가슴속부터 더 뜨뜻한 기분이 느껴질지도 모른다.

북적이는 연말 어쩌면 외로운 누군가를 위해 소설가 정이현씨는 ‘밥 먹자’는 말을 건네는 것을 추천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북적이는 연말 어쩌면 외로운 누군가를 위해 소설가 정이현씨는 ‘밥 먹자’는 말을 건네는 것을 추천했다. 한겨레 박종식 기자

이건 따뜻하게 손잡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겠다. 수의사 박정윤씨는 현미를 넣은 핫팩을 추천한다. 조금만 부지런히 손을 움직이면 큰 비용을 들이지 않고 대량생산할 수 있는 장점도 있다. 우선 튼튼하고 아름다운 커다란 천을 한 장 구한다. 현미를 산다. 먹기는 오래되고 버리기는 아까운 묵은 현미가 집에 있으면 더 좋다. 주머니에 넣을 거라면 손바닥만 하게, 어깨에 걸치거나 배에 얹을 거라면 좀더 크게 천을 자른다. 세 면을 기워 주머니를 만들고 현미를 한두 줌 넣고 쌀알이 새나가지 않게 튼튼하게 입을 막는다. 전자레인지에 2~3분 돌려 쓰면 된다. 냄새도 구수하고 제법 따뜻한 기운이 오래간다.

박정윤 수의사는 동물보호단체에서 보호 중인 동물을 후원할 수 있는 향초도 추천했다. 동물자유연대에 있는 동물들 중 몇몇의 이미지를 바탕으로 제작했다. 향이 아주 좋다. 최근 박정윤씨가 선물받은 향초는 보스턴테리어 견종 ‘보스’를 주인공 삼은 향초다. 심하게 학대를 받다 구조된 보스는 한쪽 눈이 없다. 하지만 워낙 성격이 좋아 동물이건 사람이건 모두에게 친근함을 표현한다. 보스를 주제로 한 향초에서는 시원하고 달콤한 향이 난다. 향초를 살 때마다 동물자유연대에 후원금이 전달된다.

친구여, 올해는 좀더 따뜻하길

한편 잡코리아의 설문 문항 중 가장 박탈감을 느끼는 연말 풍경 중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메운 풍성한 성탄·연말 선물 자랑’(16.2%)이 순위권에 있었다. 이 지면에 선물을 추천한 이들은 하나같이 값비싸고 화려한 것보다 일상을 나누는 선물을 추천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이겨내고 내년을 함께 걸어나갈 우리의 이웃과 친구를 위해 마음을 담은 착하고 소소한 선물은 어떨까.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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