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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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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박 꿀단지의 경지

유난히 단것이 당기는 날, 부끄러움과 갈등에서 벗어나 “살 만큼 살았는디, 뭐”라고 말하는 쿨한 노년을 기다리며
등록 2015-12-12 20:17 수정 2020-05-03 04:28
부끄러움과 갈등에서 벗어나 처연하게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그때, 우리 할머니가 그랬듯 뜨끈한 호박물을 여유 있게 맛볼 수 있을까. 한겨레 탁기형 기자

부끄러움과 갈등에서 벗어나 처연하게 인생을 바라볼 수 있는 그때, 우리 할머니가 그랬듯 뜨끈한 호박물을 여유 있게 맛볼 수 있을까. 한겨레 탁기형 기자

입에 단것이 당기는 날이 있다. 1년을 살아야 내 입에 넣자고 사탕 한 봉지 사는 일 없는데 며칠 전 그날은 일부러 차를 세우고 편의점에 들어가 말랑말랑한 사탕 한 봉지를 사들었다. 당 떨어져서 급하게 찾는 그런 사탕이 아니었는데도 앉은 자리에서 네댓 개를 까먹고 있었다. 이내 입이 마르고 목이 탔다. 짠것을 많이 먹고 물을 켜듯 단것을 많이 먹고도 물켜 애를 먹었다.

할머니가 사랑한 단것들

오늘도 그날처럼 급한 요기가 찾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입에 단것이 당겨 통아이스크림을 끌어안고 퍼먹듯, 방바닥에 드러누워 사과잼 한 통을 숟가락으로 퍼먹었다. 사과잼은 몇 주 전에 그녀가 만들어온 것인데 마스코바도(사탕수수를 정제하지 않은 원당) 설탕으로 조린, 그리 달지 않고 향긋해서 그것만 떠먹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맛도 좋았다.

그녀의 고향집 이웃에선 사과농사를 짓는데 상품은 내다 팔고 못나고 상처 난 사과들은 이웃에 나눠주는 모양이다. 막 딴 사과는 못나거나 어쩌거나 아삭하고 맛이 좋아 손에 잡히는 대로 깨물어 먹지만 시간이 지나 마르고 퍼석해지면 천한 것이 되어버려서 냉장고 어느 구석진 자리에서 붉은색으로만 요란하다. 몇 주 전 여기에 ‘못난 것들, 신경 쓰인다’고 주절거려선지 못난 사과의 껍질을 벗기고 다져 솥에 넣고 끓여 잼을 만들어보았노라고 말했다. 아침에 눈떠서 방바닥을 굴러다니며 잼 반통을 떠먹고 점심과 저녁에는 식빵에 발라 먹었더니 하루 종일 입안이 달달하다.

유전인지 무엇인지, 할머니는 유난히도 단것을 밝혔다. 참외를 깎으면 남들은 버리는 씨만 골라 드셨다. 참외씨가 엉겨붙은 태좌가 달고 맛있다는 것이었는데, 깎은 참외를 반으로 갈라 숟가락으로 태좌와 무른 안쪽 살만 긁어 먹고 나머지 과육은 나 먹으라고 주었다. 그걸 누가 좋아한다고. 매년 가을만 되면 변비로 곤욕을 치르면서도 달콤한 감의 유혹을 견디지 못해 단감이건 홍시건 가리지 않고 열댓 개씩 먹고는 똥 안 나온다며 울상을 지었다.

겨울이 되면 늙은 호박 몇 개는 할머니 차지였다. 누렇게 익은 단단한 호박 서너 개를 할머니 자는 아랫목 머리맡에 모셔두었다가 생각날 때마다 하나씩 꺼내 꿀단지를 만들었다. 호박 꼭지 부근을 빙 둘러 칼로 도려내고 씨를 파낸 뒤 그 안에 꿀을 가득 채우고 대추·인삼·은행 따위를 넣고 봉합해 찜솥에 쪘는데 호박도 참외처럼 태좌가 달고 맛나다며 씨만 골라내고 태좌는 도로 호박 안에 넣고 쪘다. 그 꿀단지가 어찌나 달았던지 식구들은 줘도 안 먹었지만 할머니와 나는 맛나다며 뜨끈뜨끈한 것을 한 국자씩 떠먹었다. 할머니는 호박 꿀단지도 참외를 먹는 방법 그대로 달지 않은 과육은 먹지 않고 나를 주거나 나도 먹지 않으면 소에게 먹였다. 달지 않은 과육 따위 소나 먹는 것이지.

‘노랑술’(환타)을 ‘꺼멍술’(콜라)보다 좋아했는데 할머니 입맛에는 노랑술이 꺼멍술보다 더 달았던 모양이다. ‘말강술’(사이다)이나 시금털털 스포츠음료 따위는 누굴 먹으라고 만들었는지 모르겠다며 상종도 하지 않았다. 할머니가 여태껏 살아 계셔서 탄산수를 맛보았다면 어떤 표정을 지으셨을지….

단것이 당기는 날은 술이 당기는 날보다 몸 상태가 좋지 않음을 알게 된 것은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술이 당기는 날은 몸에 어느 정도 기운이 남아 있어서 술을 감당할 수 있겠다는 말이지만, 단것이 당기는 날은 몸도 마음도 모두 지쳐버렸다고 몸이 나에게 신호를 보내는 것이다. 그런 날이면 뜨끈한 아랫목과 두툼한 담요, 그리고 꿀단지가 필요한데 아무것도 만족시켜주지 못하니 다급하게 사탕이라도 입안에 밀어 넣어줘야 했다. 그렇게라도 달래주지 않고 버티거나 모른 척하면 지독한 몸살이 찾아왔다. 어느 해에는 그 신호를 술을 달라는 뜻으로 잘못 이해하고 소주 한 병 마셨다가 사흘 밤낮을 끙끙 앓았고, 다른 어느 해에는 링거를 꼽고 병원 신세를 져야만 했다.

기운만 센 젊음이 싫었던 젊은 날

나는 작년 한 해 동안 자연에서 내 손으로 구한 것만 먹고 살아보겠노라 결심하고 전국의 산과 들, 해안가를 여행했다. 그 결심을 철저하게 지켜내지는 못했지만 대체로 그 뜻을 견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 여행을 통해 얻은 것은 매우 많지만 가장 크게 얻은 것은 내 몸과 자연이 나에게 전하는 말에 귀 기울일 수 있게 된 것이고 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이다. 몸으로 자연을 견뎌야 했으므로 몸은 정신보다 우위를 점하고 자연과 직접적으로 대면했다. 몸보다 생각을 앞세웠을 때 몸살이 나고 찢어지고 깨지고 부서졌다.

여행 초반엔 생각하는 대로 몸이 움직여주길 바랐지만 중반을 넘기면서 자연스럽게 생각이 몸을 따랐다. 몸이 쉬자고 하면 며칠이라도 쉬었고, 견딜 만하다면 아무리 힘든 일이라도 해내고 말았다.

몸을 따르자 자연은 불편해하지 않고 밥을 내줬다. 여행 초반엔 밥을 구하지 못해 20kg 이상 살이 빠졌지만 중반 이후에 몸은 계절과 날씨, 밤과 낮의 변화, 달과 해의 움직임에 맞춰 잠들고 깨어나고 밥 먹고 똥을 싸며 적응해 강건해졌다. 먹지 못하면 며칠이고 똥을 싸지 않았다. 변비가 아니었다. 먹지 않았으므로 앞서 먹었던 것을 내보내지 않는 것이었다. 날이 추워지자 혈액 안에 지방을 축적했다. 건강검진을 받았을 때 의사는 심각한 표정을 지으며 일반인보다 수십 배 높은 지방이 혈액에서 검출됐다며 고지혈증을 의심했지만, 나는 무척이나 말랐고 생활하는 데 아무런 불편함을 느끼지 못했다. 여름엔 더위를 견뎌내기 위해 몸 스스로 서늘해졌고 겨울엔 추위를 견뎌내기 위해 혈액 안에 지방을 가득 품었다. 살아 있는 하나의 존재로서 자연과 조화를 이루려는 노력으로 보였다.

호두 껍데기와 알맹이 사이에 간극이 존재하고 서로 다른 것이지만 껍데기와 속살이 하나여야만 온전한 호두 한 알이 되는 것처럼, 몸과 나는 다른 존재지만 조화를 이뤄 합쳐져야만 ‘나’라는 온전한 존재가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여행 전 내가 누구인지조차 알지 못하는 무지함에서 비롯한 통증(부끄러움까지 포함한)을 감당할 때마다 아무것도 모르고 기운만 센 ‘젊음’이 싫었다. 힘을 버리고 지혜와 바꿀 수 있다면 그리하겠노라 다짐했던 날들이 촘촘했다. 아주 어린 나이에는, 알아먹지 못해 답답한 그 젊음이란 감옥을 탈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늙는 것이라고 생각했었다. 아비나 어미만큼 늙어서는 그 편안함을 찾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나 할머니 또래의 할아버지 정도 나이를 먹은 사람들만이 사람과 사람의 관계에 신경 쓰지 않고 세계와 직접 대면한다고 여겼다. 쭈글쭈글해진 몸과 후줄근한 차림새를 바라보는 시선에 더 이상 신경 쓰지 않는 그 처연함이야말로 내면의 갈등이 사라지고 편안해진 상태라고 초등학교 4∼5학년 무렵에 생각했었다. (이렇게 근사한 말로 생각했던 건 아니다. “살 만큼 살았는디, 뭐”라고 말할 때의 그 쿨함이 내 눈엔 끝내주게 멋져 보였다. 엄마·아빠는 늙은이의 허튼 투정으로 치부했으므로 그들은 아직 멀었던 것이다.)

쭈글쭈글해진 몸에 서린 편안함

아직 나는 젊어서, ‘젊어서 좋았다’고 말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니지만 ‘이제는 나이를 먹어 몸이 전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좋다’고는 말할 수 있다. 아마도 봄볕 아래 쪼그려 앉아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저기 먼 세계를 내려다볼 때까지 나이를 먹어도 젊음을 그리워하지는 않을 것 같다. 아무것도 모르고 원숭이 새끼처럼 까불던 어제까지의 나를 떠올리면 아찔해서 눈이 질끈 감기기 때문이다.

언제쯤 나는 이러한 부끄러움에서조차 벗어나 홀가분하게 꿀단지를 품에 안고 쌉싸름하지 않고 달콤하기만 한 호박물을 뜨끈뜨끈 떠먹을 수 있을는지….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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