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극단 ‘바키’의 와 극단 ‘양손프로젝트’의 라는 두편의 연극을 보았다. 는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네 일상을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펼쳐 보였고, 는 ‘여우’라는 가상의 적에 대한 공포를 심어 국민을 통치하는 전체주의 사회를 우화적으로 그려냈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국가라는 ‘통치기계’ </font></font>두 작품 모두 국가를 다룬다. 에서 한 배우는 국가를 연기하는 다른 배우에게 질문을 던진다. “국가여, 당신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사랑한 적이 있습니까?” 국가 역의 배우가 잠시 뜸을 들이더니 담담하게 답한다. “아니요.”
에는 여우가 농장의 작황과 생활에 미치는 악영향을 조사해 보고하는 조사원이 등장한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국가에 의해 조사원으로 양육되고 훈련된 냉철한 관료다. 그런 그가 조사 대상인 농민을 사랑하게 된다. 자신의 사랑이 거부당하자 자신의 보고서에 농민의 삶이 달려 있다고 협박하며 그녀를 범하려 한다.
두 연극에서 나는 국가의 무능력과 능력을 발견한다. 국가는 사람을 사랑하는 데 무능력하지만 사람을 지배하는 데서는 능력을 발휘한다.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보편적인 일이 사랑인데,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국가는 정작 사람들을 사랑할 수 없다.
국가의 말들, 정확히 말하면 국가의 기능을 수행하는 이들의 말에서 나는 ‘사랑’이란 단어를 발견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그들의 말에서 부각되는 것은 바로 ‘힘’이다. 정부의 힘, 국민의 힘, 경제의 힘, 문화의 힘 등등.
심지어 이 힘을 거스르는 사람과 집단은 적으로 간주되기 일쑤다. 최근 박근혜 대통령은 ‘민중총궐기대회’에 등장했던 수많은 말들 속에서 가장 ‘이적성’이 높은 말에 주목하며 그 말의 배후에 국가 전복 세력이 있고 심지어 테러리스트가 암약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들에게 준엄한 심판이 내려져야 한다고 말했다.
노조와 시민단체 회원이건 어디에도 속하지 않은 개인이건 그날 거리에 나선 사람들은 자신의 삶이 파괴되고 있다는 불안과 분노를 공유하고 있었다. 삶이 파괴되면 사랑의 능력도 파괴된다. 사람과 사람을 잇는 가장 중요한 마음의 다리가 끊어진다. 국가와 달리 사람들에게 사랑을 못하게 된다는 것은 너무나 끔찍한 일이다.
시위 과정에서 경찰의 물대포에 맞아 사경을 헤매고 있는 백남기씨의 딸은 자신의 아버지가 테러리스트냐고 하소연하며 사람들 앞에 나섰다. 이 또한 사랑의 능력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왜 국가는 사람과 사랑과 삶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음의 인과관계를 헤아리지 못하는가.
어쩌면 그것은 통치의 효율성 때문이리라. 사람들의 마음을 헤아린다면 경찰은 그토록 강고한 차벽을 거리 한복판에 세울 수 없고 그토록 강력한 물대포를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뿌릴 수 없으리라. 그렇기에 나는 국가를 종종 ‘통치기계’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통치기계는 아무 감정 없이 움직이지 않는다. 자신의 힘에 저항하는 이들을 적으로 간주하는 순간 무소불위의 적개심이 작동하기 시작한다. 경찰은 부상자를 운반하는 구급차에까지 물대포를 쏘고 대통령은 적들의 배후를 끝까지 색출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font size="4"><font color="#008ABD">그들은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font></font>사람들은 이처럼 비인간적인 국가에 대해 적개심을 느낀다. 때로 이런 적개심은 일부 비이성적 폭력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은 통치자가 아니다. 이들이 거리에서 나누는 것은 지침과 보고서가 아니다. 이들은 삶을 지키기 위해 거리로 나섰고 자신들의 행렬을 가로막는 경찰 차벽 앞에서 울분을 토했다. 이들은 시민을 납치하고 죽이려드는 테러리스트가 아니다. 이들은 여전히, 기어이, 사랑의 능력을 발휘하려는 사람들이다.
심보선 시인·사회학자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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