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스름한 새벽녘에 뒤란 대밭에서 새끼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었다. 어미고양이가 멀리 사냥을 나갔겠거니 생각하고 다시 잠들어 아침에 눈을 떴는데 여전히 고양이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닭 모이를 주러 뒤란으로 나갔을 때도 새끼고양이는 여전히 앵앵거리며 울고 있어서 소리가 들리는 대밭으로 들어가 댓잎을 들춰보았더니 그 안에 어린아이 주먹만 한 새끼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리고 앉아 있었다.
“니가 키울 것 아니믄 그 자리다 그냥 둬라.”
새벽같이 밭에 나갔다 돌아온 어미가 내 하는 양을 등 뒤에서 지켜보다 엄중히 경고하듯 말했다.
어미도 밤새 그 소리를 들었다고 말했다. 몇 년간 집 주변을 어슬렁거리며 살았던 들고양이가 낳은 새끼인데 아마도 지난밤에 죽은 것 같다고 말했다. 집에 종종 들를 때마다 마당과 뒤란에서 마주친 어미고양이는 창고에 새끼를 낳기도 했지만 그해에는 대밭을 요람으로 삼았던 모양이었다. 그 어미고양이가 새끼를 놔두고 아침까지 돌아오지 않을 이유가 달리 무엇이 있을까.
“그냥 둬라. 니가 감당 못한다.”
새끼고양이는 그날 하루 종일 앵앵거리며 울더니 저녁 무렵이 되자 울음을 그쳤다.
용숙이는 단순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주로 전단지를 돌리며 밥을 먹고 산다. 하지만 귀찮으면 내일 돌리기도 하고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기도 한다. (사진은 본문 내용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정용일 기자
용숙이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선 건 지난봄이었다. 전단지를 돌려 밥을 먹고 사는 용숙이는 열세 살 같은 스물여섯 살이다. 나이는 스물여섯이지만 약간의 자폐가 있어서 열셋 같은 스물여섯으로 살아간다. 그러니까 용숙이는 열세 살 때부터 스물여섯 살인 지금까지 열세 살로 살아왔고, 앞으로도 계속해서 죽는 날까지 열세 살로 살아갈 것처럼 보인다. 용숙이를 보면 의 ‘엘리’나 의 ‘클로디아’가 떠오른다. 나이를 먹어도 늙지 못해 슬픈 영혼 말이다. 이곳이 동막골이라도 된다면 ‘여일’처럼 평생을 철부지 소녀로 살아갈 수 있을 테지만 여기는 21세기 대한민국의 도시 전주이므로 뱀파이어로도, 바보 여일로도 살아가기 팍팍하기만 하다.
“전단지 300장만 주세요. 돌려주께요.”
용숙이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다름 아닌 대밭 사이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새끼고양이였다. 가게 문을 열고 드나드는 수많은 영업사원들은 지나치는 풍경이자 일상으로 여기는데 이 아이는 쉬이 여겨지지 않았다. 한번 연을 맺으면 끊기도 어려울 것 같은 그런 느낌이 든 것이었다.
‘내가 이 아이를 감당할 수 있을까.’
우선 연락처를 받고 하루 동안 고민한 뒤 여러 가지 우려를 접고 일을 주기로 마음먹었다. 그 뒤로 용숙이와의 연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용숙이는 궁금한 것이 많다. 그렇지만 말이 어눌해 궁금한 것을 모두 물어보지 못하다가 어느 때건 방언처럼 말문이 터지면 묻기 시작한다.
“내가 말이 많은 것 같아요?”
음식 연기를 빨아들이는 덕트의 엔진 소음이 요란한 저녁 시간에 용숙이는 물었다. 튀김통에선 돈가스가 튀겨지느라 기름이 끓고, 우동은 찰랑찰랑 끓어 넘치기 일보 직전이고, 불판은 시뻘건 불을 토해내며 밥을 볶고 있는 와중에도 용숙이는 생각이 났고 말문이 터졌으므로 부뚜막의 괭이새끼처럼 맞은편 의자에 앉아 물었다.
‘정신없어 죽겄는디 이것은 뭔 노무 귀신 씻나락 까잡수는 소리댜.’
“뭐??!!”
밥을 볶으며 고개를 돌려 용숙이를 바라봤더니 큰 소리로 다시 묻는다.
“내가… 말을 많이 하는 것 같냐고요~오?!!!”
주문 전화는 걸려오고 덕트는 정신없이 웅웅거리고 기름통 위의 타이머는 빽빽거리고 우동은 불어터지기 일보 직전인데 불판 위에 굴리던 프라이팬을 내려놓고 뒤돌아 팔짱을 낀 채 용숙이를 바라봤다.
“누가 너보고 말이 많대?”
“내가 너무 말이 많고 시끄럽고 귀찮대요.”
사실 나의 이러한 몸짓은 일반인에겐 말 시키지 말라는 신호일 테지만 용숙이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사람들이요, 내가요, 너무 말이 많고요, 시끄럽고요, 귀찮대요.”
“용숙아, 이렇게 바쁠 때 그런 질문을 하면 시끄럽고 귀찮은 거지. 지금 바쁜 것 같아 안 바쁜 것 같아? 궁금한 게 있으면 대답할 사람이 대답할 수 있을 때를 기다렸다가 질문을 해야 되는 거야.”
“네… 근데요, 왜 전화 안 받아요?”
‘그래. 내가 잘못했다….’
“너한테 대답해주느라 이러고 있잖아!! 이 썩을 년아!! 아이구….”
“알아요, 근데요, 시간이 지나면 이상하게 까먹으니까 생각났을 때 물어보는 거예요. 내가 시끄러워요?”
“그렇지. 그려서 시끄런 거여. 이 난리통에 그게 말이냐 막걸리냐!! 시끄러!! 입 다물고 앉었어!!”
“그럼요, 조용히 할 테니깐요…. 사이다 한 병 먹으께요.”
‘시바….’
“먹어라, 먹어. 일단 사이다로 그 입구녕을 좀 막어야 쓰겄다. 임병, 돈가스 다 타부렀네, 잡것….”
용숙이는 가끔 공장에도 나가고 단순 작업을 하는 아르바이트도 하지만 주로 전단지를 돌려 밥을 먹고 산다. 전단지 배포업자에게 일을 받으면 장당 25원, 나 같은 호구를 만나면 장당 35원을 받는다. 주로 업자를 통해 일을 하지만 일이 없을 때는 나 같은 호구를 찾아다니며 일을 구걸하는데,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모양이다. 어눌하고 바보 같아서 어느 놈은 등쳐먹기도 하고, 욕하며 내쫓기도 하는가 하면, 시끄럽게 굴지 말라며 손찌검을 하는 이도 있는 모양이다. 그렇게 사람들이 용숙이를 밀어내기 위해 핑계 삼았던 ‘시끄럽다’는 말을 용숙이는 진심으로 받아들인 모양이었다.
어릴 적에 어느 마을이건 바보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었다. 우리 마을에도 있었고 건너, 그 건너 마을에도 있었는데, 부모가 있는 바보도 있었고 없는 바보도 있었다. 부모가 있거나 없거나 바보 하나를 건사하는 일은 마을 사람들 공동의 몫이었다. 말썽도 피우고 동네 어린 것들이 마음에 안 들면 한 대씩 쥐어 패기도 하며 살았다. 어른들에겐 허구한 날 구박받고, 만날 천날 뒷전으로 밀려도 끼니때 나타나면 밥상에 밥 한 그릇과 숟가락 젓가락을 놓아주었다. 또한 겨울날 잠잘 곳이 없으면 부뚜막에 이불이라도 깔아주었었다. ‘그것도 산목숨’이었으므로.
어느 날인가 전단지 배포를 부탁하려고 용숙이를 가게로 불렀더니 울먹거리며 말했다.
“아파요.”
‘이것이 너무 일이 고된가….’
“어디가 아퍼? 오늘은 쉬고 다음에 전단지 돌리까?”
“아뇨, 그게 아니라, 마음이 아파요. 가슴이 막 아파요.”
용숙이는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여일’ 같은 철부지 소녀다. 겨우 밥 한 그릇에 그토록 환한 웃음을 지어주니 그만하면 밥값 하는 거다. 한겨레 자료
용숙이는 시키는 일을 잘 하지 않는다. 못하기도 하거니와 내키지 않으면, 한눈팔 거리가 생기면 안 하기도 한다. 봄에 전단지를 손에 들려 보냈더니 하루 종일 꽃구경을 하다 그냥 돌아왔노라고 말했고, 여름이 시작되자 너무 더워 나무 그늘에서 쉬었노라고도 말했다. 아파트만 돌리고 싶고(주택이나 단층 아파트보다 엘리베이터가 있는 아파트가 전단지 돌리기엔 더없이 수월하지만 밥은 잘 팔리지 않는다), 귀찮으면 내일 돌리겠다고 말하곤 며칠이 지나도 연락이 없는 날이 이어지기도 했다. 나와의 관계에서만 그랬겠는가. 그래서 용숙이는 시끄럽고 귀찮고 ‘돈값 못하는 것’이 되어버렸다. 유년기의 그 시절이었다면 미우나 고우나 서로의 밥 한술을 떼어 먹였을 테지만 이 시대는 이런 용숙이에게 밥 한술을 나누어주지 않는다. 삼식이와 칠푼이가 대통령이 되고부터는 날로 내 밥그릇이 작아지는 기분이 들게 되었는데, 그 시절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내 밥그릇만 작아지는 것이 아니라 용숙이의 밥그릇도 작아져만 갔을 것이다.
울컥 눈물을 쏟아내려는 용숙이를 큰 소리로 불렀다.
“용숙아!!”
용숙이는 깜짝 놀랐는지 멍한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보았다.
“내가 너의 호구가 되어주께.”
“호구가 뭐예요?”
‘시바....;;;;’
“그런 게 있어. 너한테 전단지 주는 사람이 호구여. 긍게 꾀부리지 말고 나가서 열심히 전단지 돌려.”
“음…. 그럼요, 열심히 돌릴 테니까요, 다 돌리고 오면 맛있는 거 해주세요.”
“야 이 썩을 년아!! 내가 니 호구가 맞긴 맞는갑다!! 어여 나가 전단지나 돌리고 와!! 밥도 줄랑게!!”
용숙이는 전단지를 돌리고 돌아와 밥을 먹고 TV를 보고 노래를 듣고 소파에 누워 잠을 자고 커피를 마시고 생각나는 말이 있으면 두서없이 내뱉는다. 요즘은 전단지 돌릴 일이 없어도 가게로 나와 밥 얻어먹고 낮잠도 한숨 주무시다 해 질 무렵이나 되면 하품 한 번 하고 집으로 돌아갈 때도 있다. 누군가는 그 꼴을 왜 보고 참고 견디느라 애를 쓰는지 모르겠다며, 너 아녀도 여태 잘 먹고 잘 살았을 텐데 무슨 오지랖으로 그것을 먹여살리느냐며 머퉁이를 주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나는 용숙이처럼 환하게 웃어 보인다.
“허허헝.”
제 밥 찾아 먹을 만하니 그 얼마나 다행이며, 겨우 밥 한 그릇 내어주는 사람에게 그토록 환하게 웃음 지어주는 사람 없으니 그 웃음에 내 기분이 좋아진다. 그만하면 밥값 하는 거다. 그만한 사람 밥이라도 한술 떼어줄 수 있으니 나 또한 먹은 밥값은 하는 것이지 않겠나. 그러므로 ‘오지랖’ 같은 말은 집어치우시라.
오늘 못 돌리면 내일 돌리고오늘도 용숙이는 아침 일찍 찾아와 1시간 넘게 혼잣말을 하고 의자에 앉아 졸기도 하더니 도시락 하나와 사이다 한 병을 싸들고 전단지 돌리러 길로 나섰다. 밖에 나가 무엇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신규 전화는 한 통도 걸려오지 않는 걸 보면 나무 그늘에 앉아 도시락 까먹고 낮잠도 한숨 주무시는 모양이다. 낮에 못 돌리면 밤에라도 돌릴 테고, 오늘 못 돌리면 내일이라도 돌릴 것이다.
언제까지 감당할 수 있겠냐고? 이제는 감당할 만하다.
전호용 식당 주인· 저자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속보] 배우 김새론 자택서 숨진 채 발견
계엄군, 국회 본회의장 진입 막히자 지하로 달려가 전력차단
눈살 찌푸리게 한 금남로 극우집회, 더 단단해진 ‘광주 정신’
LG생활건강, 풋샴푸 광고 ‘순삭’ 전말…젠더 갈등에 끙끙
[단독] 명태균 “오세훈 ‘나경원 이기는 조사 필요’”…오세훈 쪽 “일방 주장”
[단독] 수사2단, ‘노상원 부정선거 자료’ 보며 선관위 출동 준비
음식점 폐업률 전국 1위는 이 도시…집값도 급락 직격탄
“여의도 봉쇄” “수거팀 구성”…‘노상원 수첩’ 실제로 이행됐다
질식해 죽은 산천어 눈엔 피가 맺혔다
대통령·군부 용산 동거 3년…다음 집무실은? [유레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