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미콜론 제공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이 한창이던 1986년, 국경없는의사회에서는 사진가 디디에 르페브르에게 아프가니스탄 의료봉사자들의 활동을 사진으로 담아달라는 요청을 했고, 그는 ‘망설임 없이’ 짐을 꾸렸다. 3개월간의 험난했던 여정을 마치고 그의 손에 남게 된 필름 130통. 그중 여섯 장은 프랑스 주요 일간지인 에 전면 게재되지만, 나머지 사진들은 20년 가깝게 르페브르의 책상 속에서 깊은 잠에 빠진다. 이 기록들이 세상에 공개될 수 있었던 것은 르페브르의 동네 친구인 만화가 에마뉘엘 기베르의 제안 때문. “형, 우리 이거 만화로 만들자! 내가 사이사이에 그림을 그려넣을게!” 소련-아프가니스탄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사진과 만화의 완벽한 결합이라는 새로운 지평을 열어, 만화계의 아카데미상이라 불리는 ‘아이스너상’을 받은 (세미콜론 펴냄)는 이렇게 탄생했다.
는 의료팀이 파키스탄에서 아프가니스탄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해발 5천m가 넘는 험준한 산을 몇 개나 넘으면서 르페브르는 경이로운 대자연에 매료되고, 천진난만하게 뛰어노는 아이들과 자식 앞에서 순한 양이 되는 아프가니스탄 아버지를 바라보며 인간애를 느낀다. 동시에 곳곳에서 만난 전쟁의 참상은 카메라 렌즈를 투과해 그의 가슴을 난도질한다. 무기를 자랑스럽게 들고 포즈를 취하는 10대 무자헤딘 소년들, 한쪽 눈을 잃고도 아버지에게 알리지 말 것을 부탁하는 청년, 사경을 헤매는 아이를 안고 세상에 알려달라며 울부짖는 엄마. 이 모든 순간 앞에서 르페브르는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처참한 광경을 목도하고 엉엉 울어버린 순간도 있었고 죽음의 공포도 경험하지만, 르페브르는 여정의 끝자락에서 이곳을 다시 찾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실제로 그는 이후 일곱 번이나 아프가니스탄을 방문한다.
좋은 사진은 좋은 관계에서 나온다는 르페브르의 말처럼 좋은 책 또한 마찬가지임을 이 책은 증명한다. 타인의 이야기를 경청할 줄 아는 작가인 기베르는 이야기를 더욱 풍성하게 해주었고, 미장센의 일인자인 프레데릭 르메르시에는 사진이 주는 의미를 극대화했다. 그 결과로 탄생한 이 막대한 분량의 작품은 ‘전쟁’ ‘탈레반’ ‘9·11 테러’의 이미지로 점철된 아프가니스탄이 아닌 깊고도 풍부한 진짜배기 모습을 보여준다.
2007년, 디디에 르페브르는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다. 그는 살아생전 어느 마을에서 이런 말을 전해들은 적이 있다. “당신들이 무슬림이 아니어서 정말 안타까워요. 우린 서로 다른 천국에 가겠군요.” 아름다운 이야기지만 정말 그랬을까. 전쟁 희생자들과 르페브르는 모든 고통과 슬픔을 내려두고 ‘같은 하늘’에서 즐겁게 웃으며 단체사진이라도 찍고 있진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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