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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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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연대·공유, 세 개의 처방전

의사 출신 감독이 ‘인류’라는 환자에 대해 내놓은 해법 <매드맥스>
등록 2015-06-06 17:59 수정 2020-05-03 04:28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조지 밀러 감독은 의사 출신이다. 의대생 시절에 영화 특강을 듣고 동료와 함께 단편영화를 찍으며 영화의 꿈도 함께 키웠다. 1970년대 후반, 병원에서 구급전문의 수련의로 일할 때, 오스트레일리아 폭주족들이 부상을 입고 실려왔다. 이들은 몸이 나으면 또다시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타고 질주했다. 조지 밀러 감독은 폭주족의 세계에 흥미를 느껴 23살의 멜 깁슨을 단돈 23달러의 개런티로 출연시켜 를 찍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그는 40만오스트레일리아달러의 적은 제작비로 미화 1억달러의 흥행수익을 올렸다.

감독 나이 70, 집념 끝에 탄생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1981년 는 포스트 아포칼립스(세상의 종말) 세계를 그린 전설의 걸작이다. 만화 , 롤플레잉게임(RPG) 시리즈와 시리즈, 등이 의 영향을 받았다. 이 영화는 속편은 전편만 못하다는 속설을 뒤집었다. 1970년대 석유파동을 겪은 뒤, 조지 밀러 감독은 세계가 자원전쟁을 겪을 것으로 예측했다. 미래학자들이나 예상했던 세계가 스크린 앞에 펼쳐졌다. 그의 예언은 옳았다. 1985년 역시 돼지의 배설물로 생성한 메탄가스 에너지원을 둘러싼 이야기를 선보였다. 3편은 범작에 머물렀지만, 시리즈가 근심했던 자원과 환경 문제, 그리고 살아남은 인류는 어떻게 생존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여전히 유효하다.

50대 중반에 접어든 조지 밀러 감독은 2000년 초반부터 4편 제작에 착수했다. 9·11 테러와 오스트레일리아의 홍수 등으로 몇 번이나 엎어졌던 는 그의 오랜 집념 끝에 완성됐다. 그의 나이는 이제 70살이다. 삶의 통찰력을 얻었다고 할까. 조지 밀러 감독은 시리즈가 품고 있는 근본 문제, 즉 ‘세상의 종말 이후 살아남은 인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해답을 4편에 녹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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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의사 출신답게 ‘인류’라는 환자를 놓고, 어떻게 치료해야 회복할 수 있는지 연구를 거듭했다. 그가 찾아낸 처방전은 여성·연대·공유다.

이 시리즈는 미국과 소련의 냉전이 한창일 때 등장했다. 힘과 힘이 부딪쳤다. 시리즈는 굉음을 내는 자동차의 추격과 충돌로 시대 분위기를 담아냈다. 삭막한 공간, 황폐한 대지 위에서 살아남은 인류는 공존의 해법을 찾지 못했다.

가 나온 지 30년이 흘렀다. 낡아빠진 엔진을 갈아끼우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조지 밀러 감독은 페미니즘 엔진을 새로 장착했다. 그는 인터뷰에서 “나는 지배적인 남성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여성의 영향을 받는 존재가 됐다. 페미니스트가 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30년 전, 의 독재자 역할은 팝스타 티나 터너의 몫이었다. 이제 새로운 영웅은 샬리즈 시어런이다).

남자도 자식도 없는 여전사
생명의 땅을 찾는 것이 지상 목표인 퓨리오사에게 죄의식에 시달리는 맥스가 합류한다. 남성과 여성의 연대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생명의 땅을 찾는 것이 지상 목표인 퓨리오사에게 죄의식에 시달리는 맥스가 합류한다. 남성과 여성의 연대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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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에선 2명의 여성이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먼저 조지 밀러 감독은 의 작가 이브 엔슬러를 촬영장에 초청했다. 이브 엔슬러는 독재자 임모탄 조(휴 키스-번)의 부인 역을 맡은 5명의 여배우에게 전쟁 지역에서 *여성에 가해지는 폭력에 대한 시각을 가르쳤다. *

편집은 부인 마거릿 식셀에게 맡겼다. 그는 부인에게 “당신이 이 영화를 편집해야만 돼. 왜냐하면 다른 액션영화와는 다르거든”이라고 말했다. 마거릿 식셀은 이 영화까지 편집한 작품이 7편밖에 되지 않았다. 마지막 영화는 남편 조지 밀러가 연출한 애니메이션 (2006)였다. 부창부수라 했던가. 10년 가까이 일손을 놓고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녹슬지 않은 편집 실력을 뽐냈다.

조지 밀러 감독은 무성영화에 매혹된 인물이다. 시리즈는 대사보다 이미지와 액션에 의존하는 영화다. 의 위험천만한 해안가 추격 시퀀스는 현대 영화에서 가장 긴장되고 다이내믹한 추격신으로 회자된다. 그는 버스터 키튼 감독의 (1926)의 속도감 넘치는 기차 장면을 참고해 액션 시퀀스를 고안했다고 밝힌 바 있다.

“무성영화는 우리가 현재 쓰는 영상언어 문법을 만들어냈다. 버스터 키튼이나 해럴드 로이드가 등장하는 무성영화를 움직인 원동력은 액션과 코미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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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서는 2편보다 더 박진감 넘치는 액션이 꼬리를 물고 펼쳐지는데, 마거릿 식셀은 남편의 의중을 제대로 살려낸 편집으로 추격신의 리듬감을 잃지 않았다.

엔진을 교체했으니, 맥스(톰 하디)의 차량도 상징적 차원에서 제거해야 했다. 에서 멜 깁슨이 몰았던 애마는 ‘인터셉터’로 불리는 1974년형 XB 포드 팔콘 쿠페였다. 4편에서 톰 하디는 극 초반부에 인터셉터를 몰지만, 추격전을 거듭하다 결국 박살이 난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는 법이다.

시리즈를 리부팅하는 새로운 차량은 당연히 사령관 퓨리오사(샬리즈 시어런)의 몫이다. ‘전쟁기계’로 불리는 워리그는 8기통 엔진 두 개가 양 끝에 달려 있는 6륜 구동의 18륜 차량이다. 퓨리오사의 워리그는 남성 중심으로 전개되는 카 체이스 영화의 틀을 넘어서겠다는 선언과 같다.

여성과 남성의 혁명을 위한 연대
<매드맥스> 시리즈는 석유 파동 뒤에 탄생했다. 미래학자가 예상했던 세계는 2010년대 사람들에게 더 호소력이 높은 듯하다.  첫째 편의 멜 깁슨. 한겨레

<매드맥스> 시리즈는 석유 파동 뒤에 탄생했다. 미래학자가 예상했던 세계는 2010년대 사람들에게 더 호소력이 높은 듯하다. 첫째 편의 멜 깁슨. 한겨레

여전사 퓨리오사의 캐릭터도 흥미롭다. 기존 할리우드에서는 ‘어머니=강한 여성’이라는 모성 이데올로기가 작동했다. 의 여전사 리플리에게는 유사 자녀인 뉴트가 있었고, 의 사라 코너는 지켜야 할 아들이 있었다. 퓨리오사는 할리우드 영화가 답습하던 여전사 캐릭터와는 다르다. 사랑하는 남자도 없고, 키워야 할 자식도 없다. 오로지 탄압받는 여성 동료를 구하고, 생명의 땅을 찾는 것이 그의 지상 목표다.

신체적 측면에서 퓨리오사 일행은 약자다. 퓨리오사는 외팔이다. 왼팔에 기계팔을 부착한다. 눅스(니컬러스 홀트)는 불치병에 걸린 시한부 인생이다. 임모탄 조의 다섯 부인은 ‘아이 낳는 기계’로 취급받는다. 이들은 임모탄 조의 착취를 받는 피지배 계급이라는 점에서 사회적 약자이기도 하다.

퓨리오사 일행의 탈주 과정 속에 죄의식과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맥스가 합류하면서 여성과 남성의 연대가 이뤄진다. 이들이 힘을 합해 독재자가 세운 가부장적 사회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이 영화의 기둥 줄거리다. 남성과 여성의 혁명을 위한 연대인 셈이다.

조지 밀러 감독은 페미니즘을 밑바탕에 깔았을 뿐이지, 그것을 목표로 세우는 우를 범하지 않았다. 외신기자들이 칸영화제 기자회견에서 샬리즈 시어런에게 “페미니즘 영화냐”고 질문했다. 시어런은 “페미니즘적 시각을 가지고 만든 게 아니다. 진실을 추구했고 그를 통해 여성이 제대로 보여졌다. 조지 밀러 감독이 인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영화를 만들었기 때문에 는 훌륭한 페미니스트 영화가 됐다”고 답했다.

퓨리오사가 맥스의 조언을 듣고 독재자의 본거지인 시타델로 회군하는 것이나 맥스의 피를 수혈해 목숨을 건지는 것 등은 남성과의 연대와 공존을 강조하기 위한 설정이다.

일명 ‘장대액션’을 비롯해 카 체이스 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스턴트 연기가 시종 감탄을 자아내지만, 이 영화에서 가장 뭉클한 대목은 모든 사건이 종결된 이후에 맥스가 퓨리오사에게 신뢰의 미소를 보내는 순간이다.

수평과 수직이 충돌하는 세계

<매드맥스>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이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추격신의 리듬감을 살려낸 것은 감독의 부인이기도 한 편집감독 마거릿 식셀이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매드맥스>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신이 꼬리를 물고 펼쳐진다. 추격신의 리듬감을 살려낸 것은 감독의 부인이기도 한 편집감독 마거릿 식셀이다. 워너브러더스 코리아(주) 제공

는 수평과 수직의 충돌로 설계됐다. 사막의 모래폭풍을 뚫고 쫓고 쫓기는 광란의 추격전이 수평이라면, 임모탄 조가 지배하는 시타델은 독재 봉건제 사회를 형상화한 수직적 계층이다. 수평은 평등의 세상이고, 수직은 독재의 세계다. 퓨리오사는 평등을 꿈꿨고, 임모탄 조는 독재를 갈구했다. 물을 독점한 독재자는 굶주림에 시달리는 민중에게 물을 배급하며 자신의 권력을 유지·강화한다.

모든 독점과 독재는 폐해를 낳는다. 인류 역사는 독점과 독재와 싸워온 지난한 투쟁의 역사이기도 했다. 그러나 이 싸움은 여전히 끝나지 않았고,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다.

조지 밀러 감독은 먼저 퓨리오사 일행을 탈출시켜 ‘여성해방’을 이루고 고독한 방랑자 맥스를 합류시켜 ‘양성평등’을 구축한 뒤 마지막으로 독점의 사슬을 끊고 ‘자원공유’로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한다. 명쾌한 처방전이다.

곽명동 객원기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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