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 진보당 제공
“그들은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서울 광화문에서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를 마치고 이동하던 중에 소식을 접했다. ‘전봉준 투쟁단’의 트랙터가 경찰에 막힌 남태령으로 시민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2016년 박근혜 퇴진 시위를 하던 농민들이 양재 나들목(IC)에서 경찰과 대치하던 때가 떠올랐다. 이번에도 농민들은 연행되고 트랙터는 되돌아가게 될까. 걱정을 안고 남태령으로 향했다. 8년이 흘렀지만 달라진 것 없는 상황에 답답하고 화가 났다.
남태령은 사방이 어두웠고, 바람도 매서웠다. 늘어선 경찰 차벽을 뚫고 구호와 함성이 들려왔다. “차 빼라! 차 빼라!” 차벽 너머에는 색색의 응원봉들이 트랙터를 엄호하고 있었다. 답답했던 가슴에 불이 켜지는 기분이었다.
막차 시각이 다가올수록 이 팽팽한 대치를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다. 이대로 집으로 돌아가야 하는 청년들의 마음이 얼마나 무거울까. 춥고 어두운 고갯길에 남겨진 농민들은 또 얼마나 서러울까.
무작정 밤새워 싸울 수는 없었다. 체감기온 영하 12도. 준비 없이 달려온 청년들은 그야말로 덜덜 떨고 있었다. 몸을 녹일 곳도, 음식을 구할 곳도 없는 남태령 고개가 아닌가. 저체온증으로 누군가 쓰러지기라도 한다면 어쩌나. 엿새동안 트랙터를 몰고 온 농민들은 이미 녹초가 되지 않았나. 연신 시계를 들여다보았다.
누군가 미니초코바가 가득 담긴 종이봉투를 건넸다. 하나라도 입에 넣으면 덜 추울 것 같았지만 못 본 척 옆으로 넘겼다. 옆 사람도, 그 다음 사람도, 그 뒷 사람도 종이봉투 안을 보고도 초코바를 꺼내지 않았다.
그 모습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시계를 보니 막차는 이미 떠났고, 응원봉 불빛과 구호는 더 크게 번지고 있었다. 내가 틀렸음을 깨달았다.
여기 모인 이들은 양심을 지키기 위해 용기 낸 서로에게 의지하고 있구나, 쉼 없이 울려퍼지는 “차 빼라” 구호를 응원의 주문 삼아 추위와 두려움을 넘어서고 있구나, 우리는 오늘밤 지치지 않고 싸울 수 있겠구나, 뒤늦은 확신이 들었다.
그 후로 진솔하고 용기있는 자유발언이 밤새 이어졌고, 각종 물품이 끊임없이 전해지며, 끝내 트랙터가 한강진까지 진출하는 ‘남태령 대첩’의 역사가 쓰여졌다. 세상천지 어디에서 이토록 열정적이고, 정의롭고, 용기있고, 따뜻하고, 포용력 있고, 체력까지 좋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까, 다시 생각해도 꿈같은 시간이었다.
지난 여름부터 윤석열 퇴진 광장을 열고자 애쓰면서, 나는 늘 관성과 패배감을 극복하자고 말해왔다. 그런 내가 2024년 12월21일 밤, 남태령에 모인 시민들의 뜨거운 양심과 용기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다. 졸음도, 칼바람도, 두려움도 넘어서는 청년들의 의지를 예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대중을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 위대한 민중의 힘을 믿으라는 역사의 가르침이 책장을 뚫고 현실로 걸어나온, 남태령의 밤을 평생 잊지 않겠다.
김재연 진보당 대선후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총학생회장, 민주노동당 부대변인(2008), 반값등록금 국민본부 공동집행위원장(2011), 제19대 국회의원(비례대표·통합진보당), 인생서점협동조합 이사(2018~2023), 진보당 상임대표
김재연 후보 출마 영상 보러가기
https://youtu.be/BZr8dC3O07g?si=Um2RSoGR9mMPt3r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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