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곤충을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눈만 감아도 떠오르는 곤충이 있을 것이다. 어렸을 때는 눈을 감으면 장수풍뎅이가 수액에서 암컷을 차지하기 위해 싸우는 장면이 떠올랐고 조금 지나 본격적으로 곤충을 시작하게 되면서는 멋조롱박딱정벌레가 기어가는 모습을 떠올렸으며 하늘소에 미친 사람이 되면서는 눈을 감기만 해도 고운산하늘소가 아른거렸다.”
이승현(27)씨가 처음 고운산하늘소를 본 것은 30년 전에 나온 (1987)에서였다. ‘이승모 하늘소도감’이라고 더 많이 불리는 책이다. 2009년의 일이었다. 그 자리에서 학명(Brachyta bifasciata Oliver)이 전광석화처럼 외워졌다. 인터넷을 샅샅이 찾고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 줄기차게 물어보았다. 태백산에서 채집되었다는 소문을 들었다. 결국 노린재꽃 위 고운산하늘소의 사진을 보게 된 순간 “전율이 왔다”. 2011년 싸이월드에는 이런 글도 남긴다. “저 멀리 하얀 꽃이 흐드러진 나무에 니가 기대어 서 있는 거야. 너무 오랜만이라 뭐라고 말해야 할지 고민하면서 천천히 걸어갔어. 근데 갑자기 네 머리 위의 꽃 한 무더기가 흔들리기 시작했어. 살랑살랑 바람 한 점 없는 맑은 날씨에.”
하지만 입대, 고운산하늘소를 향한 그리움을 잠시라도 멈추게 한 것은 잠깐씩의 휴가였다. 2011년 5월, 3박4일의 휴가를 받아 강원도 산골로 향한다. 산을 30분 올라 줄각시하늘소를 한 마리 잡고 나자 같이 갔던 후배의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고운산!” 쉬땅나무 위에서 고운산하늘소가 쉬고 있었다. “살아 있는 고운산하늘소는 정말 내게는 그야말로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노란색 바탕에 검정 무늬가 박혀 있는 시초와 더듬이와 다리의 적절한 노란색, 정말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의 감동이었다.” 알현했지만 채집에는 실패했다. 그리움은 제대 뒤까지 연장되었다. 결국 비무장지대(DMZ) 근처의 모처에서 기적을 맞는다. 한 마리가 아니라 세 마리를 동시에 잡게 되는 기적. (이상 이승현씨 블로그 발췌)
눈을 감아도 아른거리는 하늘소를 찾아다니던 이승현·장현규(30)·최웅(23)씨가 한국의 하늘소를 망라한 도감을 펴냈다. (지오북 펴냄)에 정리한 하늘소는 357종에 이른다. 하늘소의 모습은 297개의 표본으로 선명하게 드러난다. 그 와중에 신칭(새로 이름 붙임) 42종, 국내에 첫 기록을 남긴(미기록) 10종, 분류학상 명칭이 아직 정해지지 않은(미동정) 7종을 상재했다.
도감을 펴내며 기왕의 기록들을 바로잡기도 했다. 에 산하늘소라 기록된 표본을 점박이산하늘소로 새로 이름 붙였다(신칭). 신칭은 곤충꾼들 사이에서 통용되는 말을 도감으로 정착시켰음이다. “후박나무하늘소 같은 경우 후박나무를 기주식물로 하는 하늘소라 자연스럽게 그렇게 불렸다. 1997년 정도부터 알려졌는데 논문에 기록된 것은 2013년이다.”(장현규) 라틴어 학명을 참조하여, 그리고 겉모습을 보고 매칭시킬 수 있는 자연스러운 이름으로 불러주었다. 가 알밤색하늘소 표본을 무늬가슴섬하늘소로 동정하고, 알밤색하늘소에 해당하는 표본을 기록했다(미기록). 그간의 도감이 전문가들의 연구 성과를 정리하던 식이라면 은 ‘취미생활’이라는 영역에서 만들어진 것이 새롭다. 이승현씨는 곤충계통분류학 연구실에서 공부하고 있지만 도감의 자료를 마련한 것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공부할 때였고, 장현규씨는 한 대기업에서 프로그래머로 일하고 있다. 최웅씨는 생명과학과 대학생이다.
옌볜 일주일, 제주도 한 달, 강원도 25일가 처음 발간된 1948년에는 하늘소를 205종, 를 재발행한 2011년에는 302종이라고 각각 기록했으니 이들이 만든 도감의 성과가 장하다. 조복성 박사는 하늘소의 특징을 수염이라고 말한다. 영어 이름(Longicorn beetle) 역시 여기서 유래한다. 수염을 건드리면 큰 턱으로 위협하는데 이 턱이 쓰임새가 많다. 짝짓기를 마친 암컷은 큰 턱을 이용해 애벌레의 먹이가 될 만한 나무나 식물 줄기에 산란관을 꽂고 알을 낳는다. 애벌레는 큰 턱을 이용해 밖으로 나와 성충이 된다. 나무를 뚫고 나오기 때문에 나무에 해를 주게 되어 하늘소는 보통 ‘해충’이라고 불린다. 곤충 유일 천연기념물인 장수하늘소가 가장 유명하지만(제218호), 최근에는 한반도 소나무를 고사시킨 소나무재선충을 매개하는 솔수염하늘소, 북방수염하늘소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대표주자가 되었다. 하지만 회색, 금색, 혼합색으로 치장한 모습과 자태는 사람의 마음을 빼앗기에 충분하다. 조복성 박사는 사향하늘소를 예로 들며 이렇게 눈과 코를 만족시키는 놈이 드물다고 말한다.
에 있는 사향하늘소는 중국 옌볜산이다. 이승현씨가 한 대기업의 지원 프로그램에 엄청난 경쟁률을 뚫고 당첨돼 옌볜에서 채집해온 표본이다. 일주일간의 옌볜 여행에서 잠자는 시간 외에는, 아니 잠자는 시간을 줄여가며 북방 계열의 곤충을 채취했다. 명실상부한 ‘한반도 생태도감’을 만들겠다는 생각에서였지만, 이런 채집 여행은 이들에게 새로운 것도 놀라운 것도 아니다.
장현규씨는 2014년 50여 회 필드에 나갔다. 최웅씨의 2012년 5월의 기록은 이렇다. “2012년 5월2일 가평, 5일 가정리, 13일 분당, 17일 분당, 19일 해산, 23일 파주, 24일 해산, 26일 해산, 27일 해산, 28일 홍천, 29일 춘천, 30일 해산, 31일 춘천, 6월2일 평창, 3일 평창, 15일 양양, 16일 양양, 17일 해산, 21일 해산” 기록하고 “한두 군데 빠진 데가 있는 것 같긴 한데 뭐… 생각만큼 많이 다니지는 않았네”라고 이어 적고 있다. 이승현씨는 2009년 한 달간 제주도에서 혼자 살면서 곤충채집을 했고 2013년 최웅씨와 강원도 양양군에서 25일간 동거했다. 동네 사람들이 다 알아보고, 다음해에 다시 갔을 때 “벌레 잡는 청년들 왔어?”라고 반가워했단다. 이쯤 되면 취미생활도 아니다.
(정부희 지음)에는 봄에 하늘소를 쉽게 찾아낼 수 있는 방법이 나온다. 계란꽃이라고도 불리는 개망초의 잎사귀가 푹 꺾여 있는 모습을 보면 개망초 밭을 뒤져보라. 줄기에 붙어 있는 국화하늘소를 발견할 수 있다. 단단한 더듬이로 쉽게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몸길이는 1cm 정도인데 더듬이는 1cm가 넘는다(13mm). 몸 전체는 검은색인데 앞가슴등판에만 빨간색이 찍혀 있다. 개망초의 흠집 난 부분을 살펴보면 알도 관찰할 수 있다.
세 명의 도감 필자들은 알락하늘소와 벚나무사향하늘소를 도시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다고 말한다. 알락하늘소는 기주식물을 크게 가리지 않고 몸길이도 25~35mm로 크다. 검은색 몸통 전체에 페인트를 흩뿌린 듯 노란 점이 박혀 있다. 알락하늘소를 6월에 발견했다면 여름에는 벚나무사향하늘소를 찾아보자. 역시 25~35mm로 크고 반짝이는 검은색 몸통의 가슴 앞부분이 선명한 빨간색이다. 심지어 옅은 사향 향기를 풍긴다.
원 포 스리, 스리 포 원. “셋이었기에 도감이 완성될 수 있었”(이승현)다. 장현규씨는 프로그래머로서 곤충 입력용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승현씨는 해외 자료 수집을 용이하게 하는 영어 실력을 지녔다. 최웅씨는 미적 감각이 뛰어나서 출판사에 접촉하기 전에 시안을 만들었고 표본을 만드는 데 뛰어난 실력을 발휘했다.
인덱스로 만들어진 하늘소가 가득한 페이지를 펴서는 “이 두 개는 최웅이 한 거고 이 두 개는 제가 한 겁니다”라고 장현규씨가 가리킨다. 이들의 표본에는 이름(크레디트)이 없다. 미기록 종을 누가누가 가져왔다는 선점 의식이 없다. 헤르만 헤세 의 등장인물이 가질 것 같은 ‘집착’에 대해 정작 그들은 천진난만하다. “맨 처음 채집 나간 사람도 미기록 종을 들고 올 수 있는 거거든요.”(이승현) 이들에겐 “장수하늘소 역시 357종의 한 종일 뿐”(최웅)이다. 그래도 누구의 표본인지는 던져놓아도 안다.
이런 천진난만함은 왜 하늘소인가를 물었을 때 장금이식 대답으로 돌아온다. “어느 날 나의 마음에 들어왔”(이승현)고 “어떻게 숨을 쉬게 되셨나요 물어보면 살다보니 숨을 쉬어지게 되었다고 대답하는 것과 비슷”(장현규)하다. 하늘소는 여전히 “판도라의 상자”(장현규)고 “거창하게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굳이 표현하자면 끝없는 길”(최웅)이다.
일찍 일어나는 새가 벌레를, 곤충을 잡는다. 이들이 채집에 나서는 시간은 새벽 5시. “이런 날씨면 어디에 가면 무엇을 볼 수 있겠다 생각하고 이동하나요?” “하나를 보러 가서 하나를 보면 행운이죠. 하나를 보러 가서 하나도 못 보는 경우가 많아요.”(이승현) “이틀 전까지 비가 오고 햇빛이 나면 바람 쐬러 가자 출발하는 거죠.”(장현규) “갑작스럽게 마음이 동해서 차를 타고 가는 건가요.” 잠시 침묵. 그들은 대중교통만 이용해왔다. 고속버스와 시내버스로 이동하고 가끔 택시를 탔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다 “아, 저기 있을 것 같아” 안타까워도 100m를 지나 내려야 한다.
“그곳에 언제나 하늘소가 기다리고 있는데, 우리가 어떻게 찾느냐의 문제인 것 같아요.”(이승현) 최근 장현규씨가 차를 마련했다. 새로운 봄이 더 설렐 수밖에 없다. 비가 이틀 동안 오고 해가 났다. 하늘소 보기 좋은 날이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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