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 밤, TV를 트니 한 채널에서 진보 논객으로 잘 알려진 진중권 동양대 교수가 인간 심리 현상에 대해 열심히 설명 중이다. 옆에는 전 새누리당 국회의원 강용석 변호사가 그의 말을 받아칠 준비를 하고 있다. MBC 시사프로그램 의 한 장면이라 해도 믿을 법한 이 모습은 JTBC 토크쇼 2회의 한 풍경이었다. 수요일 밤의 한 음식프로그램에서는 황교익 맛 칼럼니스트가 한국인 입맛의 변화에 대한 지식과 식재료에 대한 철학을 진지하게 설파한다. KBS 교양프로그램 에나 어울릴 만한 장면인데 정작 이 음식프로그램의 장르는 예능이다. tvN의 음식토크쇼 얘기다. 바야흐로 지식을 품은 예능이 주목받고 있다.
올해 초, KBS가 광복 70주년을 맞이해 대대적으로 단행한 신년 개편에서 주요 키워드 중 하나로 ‘지적 호기심’을 내세운 것도 이러한 예능 트렌드 안에 위치한다. 예컨대 개편과 함께 선보인 파일럿 프로그램 는 연예인 패널들이 일상의 작은 현상을 두고 과학·의학·사회·경제·법률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과 더불어 다양한 파급효과를 예측하는 지식 게임쇼였고, 정규 편성된 는 광복 이후 70년 동안 한국의 사회문화사를 되돌아보는 지식토크쇼다.
방송가의 중요한 트렌드로 떠오른 이러한 프로그램들은 요즘 들어 갑자기 나타난 형식은 아니다. 이들은 모두 인포테인먼트 장르에 속한다. 교양지식과 정보를 예능에 접목한 이 장르는 국내에서는 1998년부터 본격적으로 등장했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체제에 들어서며 방송가 내부에서는 제작비 감소의 필요성, 외부적으로는 무한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자기계발 기술과 실용적 정보 습득 욕구의 증대 등 여러 요인이 결합해 그 환경에 최적화된 콘텐츠로 탄생한 것이 바로 인포테인먼트 장르다. 이 장르의 시초가 된 SBS 과 , MBC , KBS 등과 같은 프로그램이 당시 인기를 끈 대표적 프로그램이다.
그 뒤 리얼 버라이어티, 서바이벌 오디션 등 예능의 주류 장르가 계속 바뀌는 동안 명맥만을 유지해오던 이 장르가 근래 다시금 인기를 모으는 것에도 유사한 배경이 작용한다. 장기 불황 시대에 대처할 수 있는 생활경제 정보에 대한 대중의 욕구와, 2011년 개국하며 적은 제작비로 안정적인 시청률을 확보해야 했던 종합편성채널의 내부적 요인이 결합해,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을 주력 콘텐츠로 내세운 것이 이 장르의 부흥을 불러온 것이다. 실제 MBN 이나 TV조선 등과 같은 프로그램은 모두 건강관리와 생활경영 정보를 주요 소재로 내세우고 있다. 이들은 말하자면 불황 시대에 필요한 직접적인 생존기술 안내서로 ‘먹고사니즘’만이 최고의 관심사가 된 대중을 TV 앞으로 불러모은다.
정보에 관점을 더하니그런데 최근 주목받는 또 다른 경향의 인포테인먼트 프로그램들이 있다. 이들은 건강·생활 정보 위주의 천편일률적 소재에서 벗어나 다채로운 내용으로 눈길을 끈다. JTBC , tvN 등이 그것이다. 은 연애심리와 성담론을 ‘19금’ 토크로 풀어냈고, 은 다문화를 소재로 한다. 은 인간 심리를 분석하는 고품격 심리토크쇼를 지향하며, 는 음식에 대한 문화적인 설명이 곁들여진 토크쇼다. 이들은 하나같이 교양지식의 구체적이고 다양한 분야를 주제로 삼고 있다.
이 프로그램들의 흥미로운 특징은 기존의 단순한 정보 전달에 그치지 않고 다른 관점의 성찰을 제공한다는 점이다. 가령 연애지식 토크쇼로서 의 남다른 의미는 여성이 성적 욕망을 비교적 솔직하게 드러낼 수 있다는 지점에 있다. 연애 칼럼니스트 곽정은은 다양한 경험과 지식을 바탕으로 여성의 성심리에 대한 이해를 이끌어내고, 여성 게스트들도 성에 대해 적극적이고 열린 태도를 보인다. 그런가 하면 은 각각 다른 문화권 출신의 외국인 출연자들을 통해 국내의 관습적 가치관을 낯설게 바라볼 기회를 준다.
도 마찬가지다. 이 프로그램이 후광효과, 군중심리 등 다양한 심리 현상을 소재로 우리의 선입견과 고정관념에 영향을 미치는 요인들을 분석하는 것은 인간과 세상을 다르게 이해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또한 음식의 역사와 유래를 설명하고 음식의 재료를 대하는 요리사의 윤리까지 비평 대상에 올려놓으며 맛 평가를 중심으로 한 음식프로그램과는 사뭇 다른 접근법을 선보인다.
하지만 크게 볼 때 이러한 지식 예능 역시 결국 최소한의 생존이 화두인 불황 시대의 처세법, 그 실용주의적 성격을 넘어서지 못한다. 이들 프로그램 대부분이 의뢰인의 사연에 대한 상담과 문제 해결 형식을 띠는 것은 그래서다. 이를테면 은 연애시장에서 패배하지 않기 위한 판단의 기술, 은 개인적인 생각과 행동이 ‘비정상’이 아니라고 주장할 수 있는 논리의 기술, 은 타인과 사회에 대한 이해를 돕는 관계의 기술을 가르친다.
이들 프로그램의 색다른 관점이란 결과적으로 처세의 오류를 최소화할 수 있는 조언에 가깝다. 도 최적의 취향을 발견해 소비의 실패를 줄이는 안내 프로그램이지 않은가. 요컨대 최근의 지식 예능은 단순히 지식과 정보를 나열하고 전달하는 데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분석과 해설을 더해 한층 꼼꼼하고 친절해진 처세 가이드에 가깝다. 갈수록 선택의 기회와 자유가 줄어드는 시대에 어쩌면 이 또한 지식이 찾은 최소한의 처세법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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