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를) 때려 부수는 건 목표가 아니에요. 그건 일종의 준비 과정이고요. 정말로 하려고 했던 권력의 설계도가 안 나오고 있는 거예요. (…) 국회를 마비시킨 뒤엔 뭘 하려고 했을까. 이게 내란의 목적이거든요. 12·12 사태 때도 최규하 대통령 허수아비 체제를 운영하다가 국가보위비상대책위를 만들었고요. 유신헌법 체제 때도 유정회 만들었지요. 이런 정권 친위적 통치 모델이 있을 건데, 내란의 목적이 지금 안 밝혀진 거예요.”(김종대 전 의원, 12월17일 한겨레21 유튜브 채널 ‘뉴스크림’)
2024년 12월3일 내란이 오랜 기간 치밀하게 계획된 정황이 속속 나오고 있다. 비상계엄 선포 전부터 중앙선거관리위원회·국회 통제 지시를 받았다는 군인 진술도 하나둘 나온다. 그러나 쏟아지는 증언에도 설계도의 ‘큰 줄기’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내란수괴 윤석열과 김용현이 친위 쿠데타로 만들고자 했던 대한민국은 어떤 모습이었나. 향후 진실 규명이 필요한 과제를 정리했다.
12월3일 내란의 우두머리는 대통령 윤석열과 전 국방부 장관 김용현이다. 특히 김용현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부터 곽종근 특전사령관 등에 전화를 걸어 전체적으로 지시를 점검했다고 한다.
그러나 두 사람 힘만으로 군인 1천여명을 동원했다고 보는 이는 드물다. 대통령 윤석열은 군 면제로 복무 경험이 없고 야전 출신인 김용현은 세밀한 작전계획을 짜는 데 취약하다는 세평이 있어서다. 게다가 군을 직접 움직이는 건 합동참모본부의 협조 없인 불가능하다. 원활한 작전 전개를 돕고 내란의 세부 그림을 짠 이들이 더 있을 가능성이 크다.
김종대 전 정의당 의원은 한겨레21 유튜브 채널 ‘뉴스크림’에서 “이건 대통령 혼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나라 전투 상황을 통제하는 합참의 시스템이 분명히 작동했을 거다. 밝혀지지 않은 합참의 비밀 지휘소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선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12월16일 오마이TV에 출연해 “김용현은 야전 작전통이어서 비교적 머리가 단순하다. 구체적으로 작전 계획과 실행을 잘 짜는 참모가 필요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계엄사령관은 육군참모총장 박안수, 계엄 부사령관은 합동참모본부 차장 정진팔 이었다. 박안수는 직무 배제됐지만 정진팔은 여전히 직무를 하고 있다. 특히 정진팔은 내란 당일 윤석열, 김용현과 함께 합참 건물 지하 4층 지하통제실에 모인 ‘5인방’ 중 한 사람이기도 하다. 그 역시 내란의 핵심 동조자이나, 수사기관의 초점이 국회 통제 쪽으로 쏠리면서 관심 밖으로 밀려났다. 관련 수사도 현재까지 검찰 참고인 조사를 한 차례 받은 게 전부다.
당시 계엄사령부엔 보도처장도 있었다. 육군정훈감 박성훈이 맡았다. 12월3일 밤 계엄사령부는 사령관과 부사령관, 보도처장만 먼저 임명됐다. 계엄이 급박하게 진행된 탓에 치안처·법무처·구호처 등 다른 직책은 채워지지 않았다. 그런 가운데 대통령 윤석열이 보도처장부터 채운 건 의미심장하다. 국회 통제 다음 수순이 언론통제였을 수 있다.
계엄사령부의 나머지 직책 대상자들은 12월3일 새벽 3시 서울 용산으로 향했다. 국회가 이미 계엄 해제 요구안을 통과시킨 이후다. 버스에 탑승한 영관급 장교 34명의 명단을 민주당이 파악한 결과, 9명이 계엄사령부 주요 직책(2017년 조현천 문건 기준)에 해당하는 이들이었다. 국회 결정과 관계없이 2차 계엄을 밀어붙이려 한 정황이라고 민주당은 본다.
전북 익산에 있는 7공수와 충북 증평에 있던 13공수도 계엄이 성공하면 이튿날 서울로 올라올 계획이었다. 각각 1천명 이상 동원이 가능한 대규모 부대다. 4일 새벽 계엄이 해제돼 이동하지 않았지만, 이들이 구체적으로 서울의 어느 장소로 가서 무엇을 하려 했는지는 여전히 중요하다. 대통령 윤석열이 계엄 이후 만들고자 했던 사회를 추측해볼 수 있어서다. 12·12 사태 때처럼 대학과 언론사 등에 군을 집중 배치하려 했을 가능성도 있다. 특히 7공수는 과거 1980년 광주 5·18 운동을 폭력 진압한 역사도 있다.
군은 구체적인 작전계획 문서를 국회에 제출하지 않고 있다. 부승찬 민주당 의원실이 군에 두 부대의 작전계획을 요구했으나 “관련 내용은 작전계획에 없으며, 해당사항 없음”이라는 답변만 받았다.
내란 사건에서 국회만큼이나 중요한 기관이 선관위다. 군인들은 내란의 밤에 중앙선관위 과천·관악 청사, 수원 연수원 등을 찾아갔다. 투입 인원은 어림잡아도 300명 이상이다. 3공수특전여단 231명, 정보사령부 인원 10명, 방첩사령부 100명 등이다.
이와 관련해 정보사와 방첩사 수뇌부가 군인들에게 내린 지시가 눈에 띈다. 4·10 총선이 부정선거라는 유튜버들 주장을 정리해 자신에게 보고하고, 선관위 서버를 확보하라는 지시를 내린 것이다. 방첩사령관 여인형은 2024년 여름께 당시 방첩사 비서실장 정성우를 불러 ‘극우 유투버의 부정선거 의혹에 관해 정리해 달라’고 요구했다. 계엄 당일엔 ‘선관위 서버를 통째로 들고나오라’고도 지시했다.
다음 단계는 군이 주도하는 수사였다. 방첩사령관 여인형은 계엄법에 따라 합동수사본부장직을 맡을 예정이었다. 그는 발 빠르게 움직여 12월3일 밤 국방부 조사본부 쪽에 군사경찰 10명 파견을 요청하고 합수부도 꾸리기 시작했다. 여인형이 방첩사 1처장 정성우 등에게 ‘ 검찰과 국정원이 중요 임무를 하러 올 거’라며 수사 공조 가능성도 내비쳤다고 민주당은 주장한다.
정보사 쪽도 방첩사와 유사한 지시를 내렸다. 정보사 정아무개 대령 등의 경찰 진술에 따르면, 퇴역 군인인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은 2024년 11월께 정 대령에게 연락을 취해 ‘부정선거 관련 유튜브 영상을 정리해 달라’고 지시했다. 현직 정보사령관 문상호도 ‘공작 잘하는 인원 15명을 선발해 보고하라’고 정 대령에게 지시했다. 노상원은 계엄 이틀 전인 12월1일 경기 안산의 한 롯데리아 영업점에서 이들과 다시 만나 ‘선관위 전산서버를 확인하면 부정선거 증거를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내란의 핵심 주축이 방첩사와 정보사에 중복 임무를 줄 만큼 선관위 장악에 공을 들였음을 알 수 있다.
선관위 장악의 목표는 뭐였을까.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엉터리”라거나 “총선을 앞두고 문제 있는 부분에 개선을 요구했다”는 대통령 윤석열의 12월12일 담화를 보면, 4·10 총선의 정당성을 배격하는 절차였을 수 있다. 군이 선관위를 수사해 ‘부정선거 정황이 있었다’고 발표하면 계엄 명분도 찾고 여소야대 국면도 해소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스갯소리로 ‘윤석열이 술 먹고 화가 나서 계엄 했다’ 이런 수준이 아니고 (…) ‘선관위에서 부정선거 증거를 찾아서 지금 마음에 안 드는 야당 의원들 다 쓸어버리겠어. 날려버리겠어. 얘네가 정말 국회의원 아니라는 걸 온 국민에게 밝히면 그때는 국민들이 나를 지켜줄 거야. 계엄이 정당하다고 해줄 거야’라는 음모론에 (대통령이) 완전히 빠져 있었다. 저는 그렇게 보여집니다.” 천하람 개혁신당 의원이 12월11일 채널A 라디오쇼 ‘정치시그널’에서 말했다.
여기서 정보사령부 역할을 좀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방첩사는 기무사령부 후신으로서 2017년 계엄 문건을 쓰는 등 계엄에 적극적으로 나선 전적이 있다. 하지만 정보사의 경우 비밀 조직 특성상 역할이 도드라진 적이 없다. 1980년 12·12 사태 때도 정보사는 주요 가담 세력이 아니었다.
그런 정보사가 이번엔 대담하게 계엄에 관여했다. 10명은 선관위에 진입해 서버를 촬영했고 38명은 경기 판교 일대에서 사복을 입고 대기했다고 한다. 이 중엔 북파공작원(HID)도 포함돼 있었다. 이들의 구체적 역할은 뭐였을까.
선관위 체포나 거짓 민란 기획 등 여러 설이 제기된다. 김병주 민주당 의원은 12월19일 문화방송(MBC) 라디오 ‘김종배의 시선집중’에 출연해 “(작전에) 깊숙이 관여돼 있던 인원의 양심고백”을 들었다며 “선관위 과장 등 핵심 실무자 30명을 무력 제압해 케이블타이로 손·발목을 묶고 복면을 씌워 B-1 벙커로 데려오라는 임무였다”고 말했다. 반면 부승찬 민주당 의원은 “약간 소요 이 쪽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12월10일 국방위원회에서 밝혔다.
비밀 조직이라는 정보사가 국방부에 장악된 배경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정보사는 애초 국방부가 아닌 합동참모본부 정보본부장 지휘·통제를 받는 조직이다. 그런데 사령관 문상호는 “장관 지시의 보안 유지 차원에서 본부장에게 보고 안 했다”고 밝혔다. 공식 지휘계통을 건너뛰고 국방부 장관과 직접 소통했다는 뜻이다.
국방부가 정보사를 틀어쥔 배경엔 계엄 수개월 전 정보사 조직을 위태롭게 만든 두 사건이 꼽힌다. 2024년 7월 정보사 군무원이 블랙요원 수십 명의 신상을 중국으로 유출한 사건과 정보사 수뇌부끼리도 감정싸움을 해 고소전으로 번진 사건이다. 두 사건 모두 언론에 보도돼 정보사 위신에 치명타를 입혔다.
김용현은 이들 사건을 핑계 삼아 정보사를 장악하려 했다고 한다. 2024년 8월 국방부 장관 부임 직후 정보사를 ‘해체’ 수준으로 개편한다고 예고하더니 나중엔 정보사를 국방부 직속 부서인 ‘국방정보실’로 옮기는 안을 검토했다. 다만 2024년 10월 언론보도로 계획이 유출되자 실행에 옮기진 않았다.
이후 김용현은 ‘OB’(퇴직자) 활용으로 방향을 튼 것으로 추정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 경호차장 근무 경험이 있는 전 정보사령관 노상원을 연결고리로 활용한 것이다. 12월1일 노상원은 정아무개 대령 등에게 ‘진급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취지로 인맥을 과시하며 협조를 요구했다고 한다.
정보사는 평소에도 전현직 요원들끼리 긴밀하게 교류한다. 2024년 7월 정보사 수뇌부 갈등에도 전직자 지원 문제가 있었다. 박아무개 여단장이 ‘군사발전연구소’ 등 정보사 OB로 구성된 민간단체에 정보사 기지(일명 ‘안전가옥’)를 빌려줬다가 문상호에게 질책을 당한 것이다. 박 여단장은 ‘이것도 정보활동’이라고 말했고, 문상호는 ‘그래도 민간단체는 안 된다’며 다툰 것으로 알려졌다. HID 사정을 잘 아는 한 관계자는 한겨레21에 “지금도 서울 모처에 전직 요원들이 만나는 장소가 여럿 있다. 특이한 건 현직 요원들이 거기서 (전직자) 커피와 디저트 심부름을 한다는 점”이라고 말했다. 전현직 정보요원들이 계엄에 대비하는 사조직을 만들고 운영한 건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신다은 기자 downy@hani.co.kr·채윤태 기자 chai@hani.co.kr·김완 기자 funnyb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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