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나!
이 겨울에도
눈이 가득히 왔습니다
흰 봉투에
눈을 한 줌 넣고
글씨도 쓰지 말고
우표도 붙이지 말고 말쑥하게 그대로
편지를 부칠까요?
누나가 가신 나라엔
눈이 아니 온다기에
-윤동주 시인의 ‘편지’
하늘에 있는 누이에게 보낸 시인의 시처럼, 하늘로 편지를 보내는 이들이 있다. 4월16일 그날 이후, 하늘로 닿은 편지가 쌓였다. ‘잊지 않겠습니다’ 시리즈는 지난해 12월25일치로 100번째 편지글을 실었다. 박재동 화백이 그린 경기도 안산 단원고 학생들 얼굴 그림과 함께 희생자 부모 등이 보내는 100편의 편지가 실렸다. 아이들을 그리워하는 사연마다 심금을 울렸고, 숱한 이들이 사연을 리트위트 하면서 아이들 얼굴 하나하나를 마음에 새겼다. 차마 편지를 쓰지 못하는 부모가 있고, 겨우 편지를 쓰기 시작한 이도 있으며, 날마다 하늘로 편지를 보내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간절한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우리는 여전히 편지를 쓴다. ‘나를 잊지 마요’,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지상엔 빨간 우체통, 고공엔 초록 우체통
그래서 첫 세월호 추모 단편영화의 제목은 ‘편지’다. 영화는 지쳐 보이는 중년의 사내가 추모 리본을 푸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그는 딸과 휴대전화로 대화를 나누지만, 왠지 혼잣말처럼 들린다. 집에서 엄마는 딸에게 전화를 걸지만 “수화기가 꺼져 있다”는 응답만 들린다. 슬픔에 잠긴 엄마는 욕조에 몸을 담그고 마지막을 맞으려 한다. 리본을 이어 묶은 끈으로 아빠는 목을 매려고 한다. 그 순간 엄마를 어루만지는 손, 아빠를 붙드는 손이 있다. 교복을 입은 딸이 그들을 말리고, 결국 부부가 부둥켜안는다. 그것은 ‘살아 있으라’고 당부하는 하늘에서 온 편지이고, 가누지 못하는 슬픔을 담아 하늘로 보내는 편지다.
신영복 선생의 은 장기수였던 그가 지인들에게 보낸 편지를 묶은 책이다. 양심을 감옥에 가둔 시대, 창살 아래 묶인 이들이 보내는 편지는 가장 간절한 형식의 문학이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준비위원회(남민전) 전사 김남주 시인은 감옥에서 종이라 할 만한 모든 것에 시를 썼다. 그의 노래는 ‘은박지에 새긴 사랑’이 되었다.
그리고 감옥으로 보내던 편지를 고공으로 보내는 시대가 왔다. 지상에는 빨간 우체통, 고공에는 초록 우체통, 쌍용자동차 공장 안팎엔 두 개의 우체통이 마주 보고 있다. 보고 싶은 붉은 마음과 평화를 바라는 소망이 적록의 조화에 담겼다. 지난해 12월27일, ‘쌍코피 터진 날’ 집회가 열렸던 날에 지상의 우체통은 세워졌다. 이은혁 작가 등이 만든 나무 우체통에 사람들은 고공의 굴뚝인, 김정욱과 이창근에게 보내는 편지를 써서 넣었다. 우체통을 함께 만든 신유아 문화연대 활동가는 “쌍용차 해고자 중에 가장 묵묵한 윤충렬 형님은 지금껏 한 번도 뭔가를 부탁한 적이 없다”며 “그가 오래 망설이다 부탁한 일이라 기꺼이 만들었다”고 말했다. 그만큼 절박한 마음이 이번 농성에 담겼다.
하늘에서 먼저 편지가 왔다. ‘김정욱, 이창근 드림’으로 끝나는 편지는 지난해 12월15일 전해졌다. 이들은 굴뚝에 오르자 가장 먼저 쌍용차 공장 안 노동자들에게 호소문을 썼다. “조립3팀 샤시과 A조에 근무했던 김정욱과 조립3팀 샤시과 B조에 근무했던 이창근이 드립니다”로 글은 시작된다. 이들은 쌍용차 신차 ‘티볼리’의 1월13일 출시에 앞서 열리는 쌍용자동차노조 대의원대회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잡히기를 기대하며 호소했다. “장롱 안에 넣어둔 쌍용의 작업복을 꺼내 입고, 동료들과 환한 웃음을 지으며 티볼리를 만들고, 일이 끝나면 동료들과 소주 한잔 기울이고 싶습니다.”
그렇게 수취인이 명확한 편지다. 70m 고공의 이창근 금속노조 쌍용차지부 정책기획실장은 전화로 “여기에 있으면 내가 수화를 하고 있나 싶다”고 말했다. 가까이하기엔 너무 높은 당신은 너무나 가까이하고 싶은 이들에게 “천천히 그러나 끊기지 않고 편지를 넣겠다”고 말했다. 굴뚝 소식을 전하는 는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오지 않길 바랍니다”라는 굴뚝인들의 바람도 전했다. 다시 이창근 실장의 말이다. “지금껏 쌍용차 문제를 알리기 위해 언론 홍보, 소셜네트워크 활동을 나름 열심히 했어요. 부산에 사시는 은퇴한 선생님은 저의 모든 글에 평을 해주세요. 경북 봉화의 고향 친구도 쌍용차 소식을 잘 알아요. 그런데 정작 쌍용차 조합원은 잘 모르는 거예요. 정말 들려주고 싶은 사람에게는 우리의 얘기가 가닿지 않은 면이 있죠. 그래서 공장 안으로 보내는 편지를 씁니다. 출근길에 나눠주는 홍보물에 싣기도 하고요. 속도가 문제가 아니에요. 속달이 아니니까 늦어도 좋아요. 다만 수취인 불명만 되지 않으면 됩니다.” 그래서 편지를 보내는 마음을 담아 굴뚝 벽에 우체통을 만들었다. 가진 것을 모두 내어 청테이프로 모양을 만들고, 핫팩으로 봉투를 붙였다.
“수취인 불명으로 돌아오지 않길”농성 15일째, 지상의 아내가 보낸 편지는 “안녕하세요. 이창근 아내 이자영입니다”로 시작한다. 농성 계획을 넌지시 밝히는 남편을 붙잡기 위해 “없는 애교도 떨어보”았다는 그는 당부한다. “이창근, 김정욱은 세상 누구보다 높은 자리에 있지만 마음만은 밑바닥에 바짝 엎드려 낮아지려고 올라가 있습니다. 회사더러 당신들의 정리해고 결정은 잘못됐으니 어서 우리를 복직시키라 하고 요구하러 간 것이 아닙니다. …그냥, 그냥 부탁하러 갔습니다. 대법원 앞에서도 2천배를 했고 발 닿는 곳마다 3보1배도 해보았지만 직접적인 이해 당사자인 회사와 동료들 앞에 몸을 낮춘 것은 처음입니다. 당신들 앞에 우릴 낮추니 우리가 내민 손 잡아달라고 부탁하러 간 겁니다.” 정리해고 6년의 시간을 통과한 그는 “감히 말씀드립니다”라고 잇는다. “그저 그 일과 그 일에 속한 모든 이를 존중하자는 겁니다. 사실 나아가면 우리 모두가 그 사건과 하나의 그물망으로 연결된 존재들임을 알고 받아들이자고 말씀드립니다. 오늘 저는 제게 일어났던 모든 일을 존중합니다. 또한 여러분과 함께 있는 이 순간을 존중합니다.”
아이들도 고공으로 편지를 보냈다. 인천 만석동 ‘기차길옆작은학교’의 초·중·고 아이들이 보낸 편지는 “김정욱, 이창근 아저씨께”로 시작한다. 초등학교 1학년 아이는 “굴뚝에서 추우니까 이불도 덮어주고 싶어요”라고 썼고, 6학년 아이는 “제가 올라가서 뜨끈뜨끈한 라면과 떡볶이를 해드리고 싶습니다”라고 보냈다. 그림 편지도 있었다. 중학교 2학년 학생은 “그래도 다른 분들을 대신해 올라가신 건 정말 멋있다고 생각해요”라고 썼고, “제가 가능하면 변호사가 되어 쌍용차 아저씨들이 법원에서 안 지게 해드리고 싶었어요”라고 아쉬워하는 아이도 있었다. 사람들 쫓아내는 일이 얼마나 싫었으면 “평화란… 일하는 사람을 쫓차내지 않는 것”이라고 맞춤법을 위반하며 강조한 아이도 있었다. 공부방에서 드리는 평화기도 시간에 “아저씨들이 어서 내려오기를 바란다고 기도한다”는 아이가 많았다. 김정욱 쌍용차지부 사무국장이 아이들에게 보내는 답장을 에 보내왔다(상자 기사 참조).
빨간 우체통에는 ‘부치지 못한 편지’가 가득하다. 수취인 불명도 아닌데 편지는 전해지지 못하고 있다. 쌍용차 회사 쪽에서 서신을 굴뚝으로 올려보내지 못하도록 하기 때문이다. 고동민 쌍용차지부 대외협력실장은 “불온서적도 아니고 경영상 위기를 초래하는 것도 아닌데”라며 웃었다. 그는 “감옥이나 군대처럼 서신 검열을 당한다”고 덧붙였다.
모든 편지는 전해져야 한다
여전히 창살 너머를 오가는 편지도 있다. ‘감옥으로 띄운 편지’는 평화단체 ‘전쟁없는세상’이 발행하는 소식지다. 여기엔 수감된 병역거부자의 편지가 실린다. 벌써 235번째 소식지가 나왔다. 지지자들은 감옥으로 바깥 세상 소식을 전하고, 수감자들은 바깥으로 그곳 생활을 알린다.
지난해 초 시작된 ‘노란봉투 캠페인’은 손해배상·가압류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을 위한 모금운동이었다. 4만7547명이 참여해 14억7천만원이 모금됐다. 성금만이 아니라 손으로 쓴 편지도 함께 모였다. 올해는 쌍용차 우체통으로 시작한다. 여전히 편지는 간절한 마음, 절박한 심정을 전하고 있다. 모든 편지는 전해져야 한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이자영씨와 ‘기차길옆작은학교’ 아이들의 편지 전문은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습니다.http://goo.gl/rFbx8B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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