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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의 나라

백중현의 <대통령과 종교>
등록 2014-11-15 12:18 수정 2020-05-03 04:27

“앞으로 한국 정치는 기독교가 일어나서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회의원은 기독교인이, 대통령은 장로가 해야 한다.” ‘정교일치’ 사회를 지향하는 한갓 기독교인의 ‘소망’으로 비칠 수도 있겠다.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조용기 목사가 1992년 기독교부흥협회 예배에서 피력한 ‘기독교 입국론’이다. 순복음교회는 1958년 가정교회로부터 시작해 신도 수가 1970년대, 1980년대 거의 3만 명씩 성장했다. 2010년에는 78만 명에 이르는 세계 최대 교회로 성장했다. 2005년 개신교 인구 870만명 중 차지하는 비중은 9%다. 순복음교회만 대규모가 아니다. 1993년 미국 종교전문지 가 교세 규모를 토대로 세계 50대 메가처치를 발표했는데 23개가 한국 교회였다. 10위권에는 5개가 포진하고 있다. 이 정도면 소망이 아니라 ‘천명’이다.

(인물과사상사 펴냄)는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박근혜 대통령까지 한국 대통령의 종교를 분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종교세력과의 정치적 관계를 추적한다. 기독교 신자인 이승만, 김영삼, 이명박 대통령을 제외하곤 종교를 가진 대통령은 독실하지 않았다. 바꿔 말하면 자신의 신념이 정치에 투영된 경우는 거의 기독교가 유일하다. 책의 추적 대상도 주로 기독교다. 저자는 기독교를 천주교와 구분하기 위해 ‘개신교’로 부른다.

개신교의 정치세력화는 이승만 시대에 시작됐다. 부정선거일로 유명한 5월10일이 투표일로 결정된 이유는 그 전에 지정하려던 날이 ‘주일’이어서였다. 국영방송을 통한 선교가 허락됐고 건국 이후 첫 민간방송으로 기독교방송이 인가됐다. 교도소 안에, 군대 안에, 경찰 안에 목사가 배정됐다. 크리스마스 공휴일 지정은 1949년 5월24일 국무회의에서 이루어졌다. 석가탄신일이 공휴일로 지정된 것은 26년 뒤인 1975년이었다. 한 불교 신자의 위헌 소송이 이뤄낸 결과였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개신교의 또 다른 부흥을 맞는다. 북한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면서 북한 출신 개신교도들이 남한으로 내려왔다. 이렇게 영락교회, 광림교회, 금란교회, 소망교회가 세워졌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의 평화통일 선언에 자극받아 1989년 12월 설립한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는 ‘반공’ 교리를 확실히 했다. 한기총 설립에 주도적으로 나선 이들이 북한 출신 목사다.

기독교 세력의 사랑에 보수 세력은 화답한다. 개신교 목사의 천명은 짝사랑이 아니다. 조갑제는 2000년 남북 정상회담 직전 ‘조갑제닷컴’에 이렇게 썼다. “그래도 한국에는 잘 조직된 거대한 반공 보루가 있습니다. 전 인구의 약 30%나 되는 개신교 세력과 약 70만 명을 헤아리는 군대가 그것입니다.”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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