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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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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밥을 먹어라, 사랑한다면

<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 >
등록 2014-11-01 15:05 수정 2020-05-03 04:27

어느 강의에서 남자 대학생들에게 여자들이 예뻐 보일 때를 적어내라 했다. 아마도 여성에게서 성적 매력을 느낄 때를 적지 않을까 했던 예상은 완전히 빗나갔다. ‘그냥 예쁠 때’라는 우문현답을 비롯해 의외로 말과 행동에 대한 다양한 의견들이 나왔는데, 그중 압도적인 것은 ‘밥 잘 먹을 때’였다. 잘 먹는 모습에 애정이 샘솟는다고? 다이어트한다고 깨작거리는 모습이 안타까워서인가. 내가 밥값을 내니 잘 먹어줬으면 좋겠다인가. 네가 먹는 것만 봐도 내 배가 부른 모성 본능이 남자에게도 있는 것인가. 애정을 느끼는 이의 끼니를 챙겨주는 게 인간의 진화적 특징인지, 그 이유는 뇌와 사랑에 대한 연구를 한 헬렌 피셔 같은 학자들의 책을 찾아보면 알 수 있을 테다. 어쨌든 사랑의 열정적 측면 극단에 섹스가 있다면, 사랑의 친밀한 측면에는 밥을 같이 먹는 행위가 있다.

얼마 전 카프카상을 받은 중국 작가 옌롄커의 대표작 . 2005년 발표된 이 소설은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는 마오쩌둥의 유명한 정치 슬로건 위에 매력적인 사단장 아내 류롄과 시골 출신 일반 사병 우다왕의 사랑을 그린다. 그 파격성으로 인해 당국으로부터 판금 조치됐고, 결국 본토가 아닌 대만에서 출간됐다. 위대한 주석의 말이 적힌 팻말이 욕망을 주고받는 신호가 되고, 주석의 초상화를 찢는 행위가 욕망을 일깨우는 최음제가 되는 이 작품의 의도는 여러모로 분명하다. 그러나 그 뻔한 의도성을 시적인 문장과 정제된 대화로 뒤엎는 데 이 작가의 탁월함이 있다.

이 작품에서 또 하나 봐야 할 점은 주인공 우다왕이 취사병이라는 것이다. 그는 30분 안에 4가지 채소로 최상의 국을 끓여내는 숙련된 병사다. 그의 ‘복무’는 요리에서 성애로 바뀐 게 아니라, 작품 안에서 공존한다. 한바탕 격한 소란 끝에 완전히 탈진한 뒤 류롄은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말한다. “나의 남자여, 배가 고파요.” 우다왕 역시 손을 들어 눈물을 훔치며 말을 받는다. “내가 곧 밥을 지어 바치리다.”

오로지 육체적 필요에 의해 관계가 이뤄지고, 처음부터 끝날 때까지 지위의 높낮이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는 이 러브스토리에서, 유일하게 두 사람이 연인으로 서로를 챙길 때가 바로 배고픈 순간이다. 두 사람이 오로지 남녀로만 존재하는 순간도 섹스를 할 때가 아니라 함께 요리를 하고 밥을 나눠 먹을 때다. 방금 전까지 알몸이던 두 사람이 함께 오이달걀볶음과 피망완자를 만들어 서로에게 먹여줄 때 더 안타깝고, 어떤 달콤한 대사보다 배고프다는 말에서 더 뭉클함을 느낀 독자가 나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니 사랑한다면 함께 먹어라. 값비싼 레스토랑이든 분식집 라면이든, 사랑하는 이가 사주는 것이라면 맛있게 먹자. 다이어트는 잠깐 잊어버리고.

김보경 웅진지식하우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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