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인권은 한 시대의 우상이었다. 그가 1985년 들국화 1집을 발표하며 한국 대중음악사에 본격 등장했을 때부터 그의 노래는 노래 이상이었다. 그의 노래는 그 시절 청춘이었던 모든 이들의 열망과 절규를 대변했다. 그들의 영혼에 새겨진 전인권의 노래는 청춘의 BGM이었을 뿐만 아니라 청춘의 일부가 되었다. 기성의 권위에 억눌리고 성장통으로 매일같이 상처받을 수밖에 없었던 이들의 아픔과 절망을 껴안은 노래, 결코 꺾이지 않을 열정을 야수처럼 처절하게 토해내던 그의 노래는 청춘의 자화상이자 비상구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이들이 그의 노래를 들었고 그의 노래와 함께 성장했다.
청춘의 자화상이자 비상구그러나 그의 노래는 한결같지 못했다. 1987년 이후 잇따른 마약사건에 연루되었고 그의 건강은 급속도로 나빠졌다.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 또한 길을 잃고 수렁에 빠졌다. 그 시절 희화화된 그의 모습을 보는 팬들은 한없이 안타까웠다. 평생 명곡만 만들고 멋진 모습만 보여줄 수는 없지만 너무나 달라진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일은 청춘 시절 첫사랑이 망가지는 것을 지켜봐야 하는 것처럼 괴로운 일이었다.
그 마음을 알았던 것일까? 그는 끝내 다시 돌아왔다. 2012년 들국화를 재결성하고 원년 멤버 최성원·주찬권과 함께 무대에 선 그의 목소리는 놀랍게도 젊은 날 그대로였다. 그의 재기는 우상의 완벽한 귀환이었으며 전인권 음악 역사의 새로운 시작이었다. 전인권은 2013년 무려 27년 만에 왕년의 멤버들과 함께 들국화의 이름으로 새 앨범을 발표하고 무대를 누볐다. 안타깝게도 들국화의 드러머 주찬권이 갑자기 세상을 떠나고 최성원과의 의견 차이를 좁히지 못해 들국화의 활동은 멈춰버렸지만 그는 이제 다시 자신의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 9월19일 ‘전인권 밴드 그리고 친구’라는 이름으로 새 앨범 을 내놓은 그는 10월11~12일 서울 블루스퀘어 삼성카드홀에서 공연을 펼친다.
9월30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그는 자신감에 차 있었다. 먼저 건강부터 물었더니 난시가 있고 몸무게도 늘었으며 오래 앓아온 대상포진 때문에 가을이나 환절기 때 통증이 오기도 하지만 아프면 약 먹고 쉬면 된다고 밝게 대답했다. 그러고 보니 그의 나이는 올해로 예순이다. 그는 아직 쉰아홉이라고 우기지만 60대로 진입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는 나이다. 하지만 그는 기억력도 좋았고 활기가 넘쳤다. 지난 2년 동안 그는 자신의 말처럼 음악에 푹 빠져 지낸 것처럼 보였다. 음악도 많이 듣고, 카피도 많이 하고, 기타 연습도 꾸준히 하고 있다고 했다. 실제로 그는 백건우의 클래식 연주에 빠져서 몇 시간씩 들은 적이 있다고 고백했고, 잠비나이와 게이트 플라워즈 같은 당대의 한국 밴드들을 거명했으며, 원더걸스 예은의 보컬을 칭찬했다. 멜론과 벅스, 유튜브 같은 온라인 음악 서비스를 스마트폰으로 이용하고 있다는 그에게서 노년의 이미지를 찾기는 어려웠다. 갈수록 건강이 좋아지고 있다고 호기롭게 말할 만했다.
축복처럼 목소리가 돌아왔다[%%IMAGE2%%]그럼에도 오랫동안 흔들리던 과거의 시간들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래저래 좋지 않았던 그를 오래 지켜보며 안타깝고 속상했던 마음을 직접 이야기하면서 나도 모르게 목이 메더니 눈물이 쏟아졌다. 그는 “미안하다”고 했다. 그는 자신이 오랫동안 기대지 말아야 할 것들에 기대고 있었다는 것을 숨기지 않았다. 한때 “불치에 가까운 중독자”였다고 했고, “굴곡이 꽤 많았다”고 이야기를 꺼냈을 때는 “굴곡 정도가 아닌 시간이었다”고 인정했다.
결국 그는 강제로 병원에 보내졌다. 그곳에서 그는 “정말 견디기 힘들었지만 엄청난 절망을 이기고 스스로 희망을 찾아냈다”. 자신에게 힘이 하나도 남지 않았을 줄 알았는데 “팔을 하나 들어보니까 힘이 있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이 힘으로 천천히 희망을 찾아내자”고 다짐했고, 결국 건강한 모습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리고 스스로 서는 법을 깨우친 그에게 축복처럼 목소리가 돌아왔다.
달라진 것은 건강만이 아니었다. 한때 대마초가 없으면 노래를 못하는 줄 알았던 그는 생각까지 달라졌다. “모든 것에 너무 애착을 가지고 계속할 것 없이 나머지를 소중하게 생각하니까 몸이 낫게 되었다”는 그는 이제 채우기보다 비울 줄 알고 오늘에 감사할 줄 안다. “19살 때 자신이 얼마나 힘이 셌는지 기억할 수 없”지만, “내가 걷는 것이 옛날보다 느리다면 느린 대로 즐거움이 있는 것”이라고 했다. 오늘의 행복을 즐길 줄 아는 그는 무척이나 편안해진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그의 음악은 이제 예전보다 자연스럽다. 그는 자신의 음악이 대중과 유리된 예술가만의 예술이 되기를 바라지 않는다고 했다. 자신의 음악에서 ‘대중성’이 중요하다고 여러 번 강조했다. 전인권이 말하는 대중성은 무엇일까? 바로 “대중의 애환을 표현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장 그리기 쉬운 그림은 자신만 볼 수 있는 귀신 그림”이라며 예술가의 지나친 주관성을 경계한 그는 “대중성을 우습게 생각하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부모와의 정” 같은 대중적 정서를 벗어나서 살 수 없는데 “대중성 하나 못하고 무슨 음악을 한다는 것이냐”는 반문이었다.
단순히 인기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그가 생각하는 대중은 그냥 하찮거나 흔한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대중 개개인을 다 대장이라고 생각해요. 대중의 눈을 속일 순 없어요. 세상이 아무리 힘들어져도, 항상 대중의 힘으로 지금까지 역사가 이뤄져왔어요. 몇몇 사람이 어떻게 했다 해도 사실은 대중의 힘으로 이루어졌다는 걸 다 알고 있잖아요”라며 그는 대중에 대한 경의를 표현했다.
직선적이면서 거칠고 미세한 떨림그러면서 예로 든 것은 현인의 노래였다. “그분이 ‘눈보라가’ 하면 진짜 눈이 내리는 것 같아요. 그래서 현인 선생님을 정말 최고의 가수로 치고 있어요”라고 극찬한 것도 바로 그들의 노래 속에 담긴 대중적 호소력 때문이었다.
그렇다고 예술성을 포기하거나 대중음악에 의미를 담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었다. 그는 “옳은 것을 향한 꼬장”이라는 표현을 썼다. 자신의 옛날 노래를 다시 들어보니 “나름대로 아주 강한 삶에 대한 꼬장이 있더라”며 웃던 그는 “록은 옳은 것을 위해 꼬장을 부릴 줄 알아야 하는 것 같다”고 자신의 록 철학을 드러냈다. “그 생각은 변함없어요. 요즘은 더 많아질 수도 있어요”라는 얘기 속에서 느껴진 것은 세월이 흘러도 타협하지 않는 로커의 단단한 의지였다.
[%%IMAGE3%%]실제로 이번에 발표된 앨범 에는 이런 생각이 빠짐없이 담겨 있다. 그의 노래에는 거창한 메시지도 없고 어려운 표현도 없다. 앨범의 제목 부터 새로운 삶의 2막을 열고 싶다는 의지의 진솔한 표현이다. 이 앨범에는 삶이라는 사막을 묵묵히 건너가는 낙타 같은 사람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외로움과 아쉬움이 그의 매력적인 보컬로 간절하게 담겨 있다. 미디엄 템포의 과 같은 수록곡들의 호소력은 여전히 절절하고 아릿하다. 그의 대표곡들이 그러했듯 그의 보컬은 직선적이면서 거칠고 미세한 떨림으로 듣는 이의 마음을 뒤흔든다. 대중이 공감할 수밖에 없는 애환의 표현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이제 “내가 살아가는 이 슬픔과 기쁨 사랑해야지”()라며 성숙한 시선을 드러낸다. “세상 만물에 생각 있어 모두 때란 게 있을 테니/ 기다릴 때 기다릴 줄 아는 거라네 기다려야지/ (중략)/ 에라 일어나 춤이나 한판 추자”()라는 노랫말에서는 달관의 경지까지 느껴진다. “사람답게 살고 싶은 힘”을 응원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의 수록곡은 대부분 록이지만 과거 그의 음악들처럼 힘이 넘치거나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지는 않았다. 그는 더 이상 특정 장르의 음악을 하기 위해 음악을 하지 않는다. 그는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이 모두 “자신이 생각하는 대중성의 표현”이라고 했다. 그가 각별히 신경 쓰는 것은 밴드 음악으로서의 퀄리티였다. “이 앨범의 드럼 소리, 베이스 소리가 들을수록 다를 거예요. 내가 노래를 했지만 베이스나 드럼에 침해가 안 되도록 노력했고, 내 노랫소리도 더 듣기 좋게 신경 썼어요. 그게 밴드 형태죠”라는 말에서 느껴지는 것은 밴드 음악에 대한 숨길 수 없는 애정이었다. 그는 인터뷰 내내 밴드 멤버들에 대한 애정과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 베이시스트 민재현, 드러머 신석철, 건반 정원영 등으로 구성된 밴드 멤버는 그 이름만으로도 충분한 뮤지션들이다. “자기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주고, 세계에 내놔도 일등을 할 수 있는 실력을 가진 친구들”이라는 자부심이 어색하지 않은 멤버들이다.
그래서였을까? 그는 밴드의 이름도 바꿀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녹음하면서 신석철이 드럼을 치고, 민재현이 베이스 치고, 내가 노래하고, 신석철이 기타를 입힐 때, 서로 말 안 해도 알아서 하는 그 분위기가 가장 행복했다”고 얘기했다. “이제는 정말 음악하고 싶다”는 그는 시간 약속 지키고, 짜증 내지 않고, 거짓말 안 하는 것을 팀의 철칙으로 정했다. “아무리 어제 공연하고 오늘 피곤해도 그 다음날이 공연이면 공연 전에는 꼭 연습을 한다”라는 그의 말 속에서 느껴지는 것 역시 밴드 음악에 대한 단단한 ‘장이 기질’이며 열정이었다.
거장보다 소중한 것은 현역이다앞으로는 프로그레시브한 음악을 해보고 싶다는 그가 옛날만큼 빼어난 음악을 할 수 있다면 근사한 일일 것이다. 하지만 그렇지 못하더라도 상관없는 일이다. 지금처럼 꾸준히 음반을 내고 공연을 하면서 우리 곁에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모든 것들이 빠르게 사라지는 시대, 거장보다 소중한 것은 현역이다. 그래서 그가 오래오래 우리 곁에서 노래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그의 노래를 지키는 것은 우리의 박수와 환호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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