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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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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하고도 아름다운, 물뽕의 바다

중동 위기·에볼라바이러스 등 고비 넘고 찾아간, 알록달록한
산호밭에 형형색색 열대어가 노니는 이집트 홍해 ‘물속 여행’
등록 2014-09-27 11:49 수정 2020-05-03 04:27
A family of Clown fish hides among the anemone on the shallow sandbanks of the Ligitan Reefs, off the Malaysian island of Sipadan in Celebes Sea, east of Borneo, March 12, 2007.    REUTERS/David Loh   (MALAYSIA) - RTR1O4YQ

A family of Clown fish hides among the anemone on the shallow sandbanks of the Ligitan Reefs, off the Malaysian island of Sipadan in Celebes Sea, east of Borneo, March 12, 2007. REUTERS/David Loh (MALAYSIA) - RTR1O4YQ

마침내 니모를 보았다.

모든 스노클러, 다이버들의 꿈이라는 홍해를 위험을 무릅쓰고 찾았다. 이집트 카이로를 거쳐 샤름엘셰이크로 갔다. 지난 8월31일, 인천에서 아부다비를 경유해 카이로까지 13~14시간, 다시 국내선으로 1시간을 타고 도착했다. 경유시간을 합치면 24시간이 모자랐다. 그렇게 찾아간 그곳엔 정말로 니모가 있었다. 라는 애니메이션 주인공으로 유명해진 니모는 원래 ‘아네모네 피시’(Anemone Fish) 또는 ‘클라운 피시’(Clown Fish)로 불린다. 흰색 말미잘을 둥지로 삼는 물고기, 청정한 바다가 아니면 살지 못하는 물고기다. 그래서 수중환경이 정말 좋은 곳이란 지표가 된다. 홍해의 바다엔 그것이 하나가 아니라 드문드문 있었다. 타이, 필리핀, 인도네시아, 몰디브, 이탈리아, 몰타 등에서 스노클링을 죽어라 했지만 지금껏 보지 못했던 친구다.

드문드문 니모가 보였다

아름다운 바다는 무서운 곳으로 변하므로 세심한 탐색을 거쳐 스노클링을 해야 한다. 육지보다 넓은 바다에 분포하는 산호는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지 모른다. 몰디브 랑갈리섬 풍경(왼쪽)과 바닷속.

아름다운 바다는 무서운 곳으로 변하므로 세심한 탐색을 거쳐 스노클링을 해야 한다. 육지보다 넓은 바다에 분포하는 산호는 지구의 진정한 주인인지 모른다. 몰디브 랑갈리섬 풍경(왼쪽)과 바닷속.

언젠가 니모 비슷한 물고기를 보고 니모를 봤다고 했더니, 조카가 설명을 듣고는 “아니야” 했던 적이 있어서 정말 맞는지 한참을 살폈다. 저 아래 오렌지색 물고기를 보고 흰색 줄무늬를 확인하고, 두리번두리번 말미잘을 찾았다. 하얗고 끝이 뭉툭한 말미잘을 보고서 “유레카!”. 샤름엘셰이크에 도착한 둘쨋날 니모를 보고, 포인트를 잘 기억해두려고 지형을 확인했다. 그러나 다음날 해안선을 따라 스노클링을 하니 드문드문 니모가 보였다.

홍해를 가야겠다고 생각한 처음이 있었다. 언젠가 여행기를 보는데, 누군가 수중환경이 꽤나 좋다는 동남아 바다에서 스노클링을 하고 썼다. “여기도 좋구나. 그런데 어쩌냐, 우리가 홍해를 보고 왔으니.” 짧은 문장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이후로 보았던 홍해 사진은 숨이 막혔다. 알록달록한 산호밭이 그림처럼 펼쳐지고 형형색색 열대어가 노니는 곳을 수중환경이 좋다고 하는데, 홍해는 그 조건을 완벽하게 갖췄다. 너무 멀다고 미루고, 조금 위험해 망설였지만, 끝내 홍해는 나를 끌어당겼다.

사실 니모보다 먼저 우리를 맞은 것은 외교부의 ‘철수 문자’였다. 시나이반도에 위치한 샤름엘셰이크는 ‘여행자제’ 지역으로 분류돼 있다. 긴급한 업무가 아니면 가지 말라는 곳이다. 다른 시나이반도 지역이 ‘여행제한’으로 분류된 것에 견줘 여행경보가 한 단계 낮지만, 그래도 위험한 곳이다. 지난해 2월, 한국인들이 폭탄테러 참사를 당한 타바에서 버스로 4시간 떨어져 있다. 바다의 아름다움에 매료된 다이버들이 몇 달에 한 번씩 해외로 떠나며 ‘물뽕’ 맞으러 간다고 하는데, 물뽕 맞은 스노클러에게 그것은 긴급한 업무였다. 외교부 문자를 받고 불안한 기색을 보이는 어머니를 안심시킨 나의 말은 “국가보다 자본이 지켜주는 게 더 안전해”였다. 눈으로 보는 믿음의 증거도 있었다. 해안을 따라 늘어선 다국적 자본의 리조트들은 여기가 왜 시나이반도에서 ‘예외’ 지역인지 보여줬다. 개신교 권사인 어머니와 함께 갔지만, 지척인 시나이산도 가지 않았다. 그곳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았다는 산이다. 한번 마실 나가본 여행자 거리는 총으로 무장한 군인이 지키고 있었다.

위험을 피하는 나름의 대비도 있었다. 카이로에서 시나이까지, 육로가 아니라 항공편으로 이동했다. 지금 지구촌 여행은 ‘트립어드바이저’(Tripadvisor.com)가 지배한다. 전세계 호텔에 대한 여행자 리뷰가 끝없이 실려 있는 이곳에 간간이 들어가 꼼꼼히 살폈다. 우리가 가는 숙소에 묵은 리뷰에 위험하다는 말은 없었다. 여행에서 안전은 무엇보다 우선하지만, 지나친 안전민감증도 ‘한국병’ 혹은 ‘동아시아병’이라고 생각한다. 자본에 대한 믿음을 굳건히 다지며 갔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전쟁

세 번의 고비를 넘었다. 여행을 준비하다보면 지구촌의 불안이 남의 일이 아니다. 먼저, 메르스바이러스를 만났다.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유행한 메르스바이러스로 수백 명이 죽었다는 뉴스가 봄에 나왔다. 사우디에서 홍해만 건너면 이집트. 가야 하나, 망설였지만 카이로에서 혁명을 피해 도망친 독재자 무바라크도 숨겨준 샤름엘셰이크 아니냐며 믿음을 다졌다. 그래도 가야지, 하는데 이번엔 이스라엘이 가로막았다. 가자지구 공습이 시작된 것이다. 중동전쟁의 전리품으로 이스라엘이 무력 점령했던 시나이반도는 이집트와 이스라엘 사이에 있다. 가자지구도 가깝단 말씀. 설마, 이집트로 미사일을 쏘겠어, 하는 사이에 불안한 휴전이 성사됐다. 때때로 ‘취소가능’으로 예약한 숙박을 여차하면 바꾸기 위해 리조트 홈페이지를 확인했는데, 메르스바이러스에도 떨어지지 않던 숙박비가 가자지구 공격이 터지니 내려갔다. 호환마마보다 무서운 전쟁이구나, 싶었다. 마지막 에볼라바이러스. 발병 지역이 서아프리카이고 이집트가 반대쪽이긴 하지만, 그래도 아프리카는 아프리카다. 마지막까지 자본은 나의 믿음을 실험했다. 그래도 어쩌나, 숙박비가 싸도 너무 쌌다.

카이로의 피라미드도 버리고, 아스완의 아부심벨도 놓치고, 일주일 홍해에만 올인했다. 머나먼 곳으로 오직 바다만 보고 가도 좋을 만큼 바다가 좋았다. 지난 7~8년간 지구촌 바다를 적잖이 다녔다. 타이 꼬피피·꼬따오·꼬응아이·꼬리뻬, 필리핀 엘니도·코론, 인도네시아 길리, 지중해 파비그냐나와 몰타, 그리고 몰디브 랑갈리. 스노클링을 했다고 꼽을 만한 곳이다. 한없이 부드러운 바다에 빠지면 한없이 고요해 ‘물로 채워진 태 속의 편안함이란 이런 건가’ 생각했고, 두세 시간 잔잔한 바다를 노닐다보면 돌아가기 싫어 ‘이대로 죽어도 좋아’ 망상도 들었다. 그러나 물속에 빠지면 허우적거리며 살아나려고 애썼다.

사실 스노클링을 하면서 죽다가 살아난 적도 서너 번 있다. 처음 스노클링을 시작한 꼬따오 바다에선 갑자기 스노클링 장비에 문제가 생겼다. 순식간에 파도가 높아져 물안경에는 물이 차고 숨구멍은 막혔다. 스노클링 대롱에 물이 차는데 발은 바닥에 닿지 않았다. 겁에 질려서 죽어라 헤엄을 쳤다. ‘몸에 힘을 빼면 뜬다’고 절박한 다짐을 하면서. 다행히 바닥에 발이 닿던 순간에 만감이 교차했다. 다시는 이렇게 살지 않으리, 했지만 다시 그렇게 살았다. 길리에서는 어머니를 트라왕간 숙소에 버려두고 혼자 메노로 놀러갔다. 바다에 들어가 이동할수록 해파리인지 무엇인지 모를 생물들에 에워싸였다. 역시나 바람은 불고 파도는 치는데 발이 닿지 않았다. 몇 년 만에 심히 당황해 해안으로 사력을 다해 헤엄쳤다. 한적한 바다엔 아무도 없었다. 겨우겨우 나와서 혼자 헐떡이며, ‘혼자라서 서럽다’는 인정하고 싶지 않은 생각을 모처럼 했다.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 바닷속

결코 이런 얘기를 하지 않았다. 스노클링하지 말라고 잔소리를 들을 것이 뻔해서다. 결국은 할 텐데, 하고야 말 텐데, 말이다. 그만큼 바다는 치명적이다. 마흔 가까워 스노클링을 해보고서야 지구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은 지상이 아니라 바닷속이라는 것을 알았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 산을 찾아서 지구를 헤매듯, 물뽕을 맞으러 아시아의 바다를 헤맸다. 몇 달을 참다 바다에 가면, 물고기를 보면 “반갑다 얘들아, 니들을 만나러 멀리서 왔잖니”라고 혼자 대롱을 입에 물고 중얼거린다.

대부분 여행에 노모와 동행해 자격증을 딸 만한 시간을 낼 여유가 없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니라도 다이빙보다는 스노클링이 좋다. 온전히 자신의 몸으로 모든 상황을 제어해야 직성이 풀리는 탓이다. 다시, 홍해로 돌아오면 명불허전이었다. 보라색, 초록색 산호는 몰디브 랑갈리섬 바다보다 화려했다. 물고기는 수는 많지 않았지만 종류는 다양했다. 몰디브에서 보았던 상어는 보지 못했지만, 문득 가까이서 유영하는 이글 레이(쥐가오리)는 있었다. 저 멀리서 가오리가 지나가는 모습을 보면 신성한 기운이란 이런 것이구나, 생각이 든다. 한번에 두세 시간 바다에 빠져서 다니면 이런 예기치 않은 선물을 바다는 주기도 한다. 몰디브, 길리의 바다엔 심심하면 나타나는 거북이도 있었다.

여전히 바다는 아름답지만, 사진에서 보았던 환상적인 바다는 이제 지구에 없다. 이집트 홍해에도, 타이 안다만에도, 필리핀 동중국해에도, 검회색으로 변한 죽은 산호들이 넘쳐난다. 기후변화로 대량살상 참사를 당한 것이다. 이렇게 지구온난화는 이제 지구상에서 스노클러 선배들이 보았던 환상적인 바다를 지웠다. ‘산호를 지키는 지구인의 모임’이라도 있으면 당장 가입하고 싶을 만큼 위기는 심각하다. 산호는 민감한 생물인데, 이런 바다는 지구의 미래다.

정작 무서운 것은 테러가 아니라 사고다. 아름다운 바다는 사실 위험한 곳이다. 세이렌의 소리를 들으며 바다에 나간 당신을 파도가 언제 덮칠지, 조류가 언제 막을지 모른다. 더구나 조류는 잔잔한 바닷속으로 흐른다. 몇 번 고비를 넘기고 처음 들어가는 바다에서는 반드시 구명조끼를 입고 들어가 먼저 그곳의 상태를 살핀다. 조류와 파도가 어떤지 확인한 다음 구명조끼를 벗을지 결정한다. 아찔한 경험을 통해 세운 나름의 수칙이다.

혹시나 바다에 간다면, 푸껫에 가지 말고 피피에 가라. 사무이를 들러서 반드시 따오에 가라. 어렵게 시간을 내고 피 같은 돈을 들여서 비행기를 타고 날아가 천국의 마지막 관문 앞에 멈추는 여행이 아쉽다. 푸껫과 사무이 같은 다국적 자본이 운영하는 리조트에서 한두 시간만 배를 타고 가면 그림 같은 바다가 있다. 피피의 풍광과 따오의 산호가 반긴다. 그러나 푸껫 같은 곳에 리조트를 세워둔 자본은 숙박 수요를 메우기 위해 거기서 멈추라 한다. 잠시 투어를 하고 오면 결코 알지 못할 비밀을 섬은 품고 있다. 잊지 못할 물뽕의 맛을 선사할 바다가 있다.

저예산 여행자가 더욱 즐겁다

이집트 항공 광고에 이런 문구가 있다. ‘저예산 여행자가 더욱 즐겁다’(Budget travelers have more fun). 맞다, 기동성 좋은 배낭여행이 더욱 깊숙이 다가간다. 지구촌 정말로 좋은 곳은 그들의 차지다. 대나무로 지은 하루 3만원짜리 방갈로에서 잤지만, 낮에는 배를 타고 나가 스노클링을 즐기고 밤에는 해안에 늘어선 식당에서 밥을 먹었던 리뻬의 밤과 낮을 잊지 못한다. 낮에는 물고기와 노닐고 밤에는 물고기를 잡아먹는 환상적인 이중생활, 작디작은 섬에서만 가능하다. 혹시나 이번 겨울에 해외로 간다면 필리핀 코론에 가보라. 카르스트 지형이 빚은 동양화 같은 섬들과 환상적인 물빛과 형형색색의 산호가 있다. 게다가 가깝다. 마닐라를 거쳐 5시간만 비행기를 타면 이른다. 현지인과 여행자의 ‘격리’가 없는 코론 타운엔 600원짜리 벤티(Venti) 사이즈의 망고셰이크와 2만원짜리 몰디브 못지않은 투어가 있다. 물론 시간이 된다면, 몰디브 리조트의 10분의 1 가격으로 그에 못지않은 바다를 선사하는 홍해도 있다. 아, 책임을 피하기 위해 항상 마지막에 붙는 말은 ‘위험은 당신의 책임’(At your own risk).

글·사진 샤름엘셰이크(이집트)=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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