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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화한 ‘재갈 물리기’

감시사회의 새로운 규제
등록 2014-07-05 16:01 수정 2020-05-03 04:27
잭 볼킨의 블로그 화면 갈무리

잭 볼킨의 블로그 화면 갈무리

댓글, 게시판, 카카오톡, 페이스북, 블로그, 트위터 등 개인의 생각을 표현할 수단이 넘쳐난다. 저녁이면 먹방이 페이스북을 가득 채운다. ‘카톡 왔어’는 어느새 소음이 되었다. 포털 뉴스에서는 욕설이 가득한 댓글을 쉽게 만날 수 있다. 인류 역사에서 이렇게 다양한 표현의 수단을 손쉽고 저렴하게 가진 시대가 있었던가. 집회, 결사 및 표현의 자유가 철저하게 제한되었던 군사독재 정권의 긴 터널을 생각한다면 현재 우리가 누리는 표현의 자유는 더욱 값지다.

인터넷이라는 기술 진보는 인류에게 표현의 자유를 선사하고 있는가? 이 질문에 미국 헌법학자 잭 볼킨은 쉽게 긍정하지 않는다. 2003년부터 개인 블로그를 운영하고 있는 예일대 법대 교수 볼킨은 표현의 자유를 연구한다. 볼킨은 2014년 1월 ‘표현의 자유를 규제하는 낡은 방법과 새로운 방법’이라는 글에서, 개인의 표현의 자유를 직접 억압하는 방식을 구식으로 정의한다. 고발과 체포 등 개인의 입에 재갈을 물리고, 신문을 폐간하고, 방송을 통제하는 방법이다. 표현의 자유를 제약하는 새로운 방식은 개인을 겨냥하지 않는다. 통신망, 포털,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운영하며 막대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기업들이 정부 당국의 직접 규제 대상이다. 볼킨에 따르면, 이 기업들은 특정 이용자의 목소리를 다른 사람이 들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는 기반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시민이 표현하려는 바를 떠들어도 이를 듣는 사람이 없게 만드는 것, 이것이 새로운 표현의 자유 통제 방법이다. 감시사회에서 표현의 자유를 연구하는 볼킨 교수는, 잔인한 구식 통제 방법보다 통신사, 포털 및 검색 서비스 사업자 등을 통제해 표현 그 자체보다는 표현의 전달 및 확산을 제한하는 방법이 최근 규제 당국이 선호하는 방식임을 주장한다.

(과거) 정부는 표현의 자유를 제한하기 위해서는 특정 언론사 또는 출판사를 적으로 만들거나 언론인을 매수하는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그들이 표현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언론 및 출판 ‘기업’과 표현의 자유 규제는 서로 다른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다. 후자가 강화될수록 언론사 및 출판사의 기업 환경은 나빠진다. 따라서 이들 기업은 규제 축소를 그리고 표현의 자유를 외칠 수밖에 없다. 그러나 볼킨은 통신망 사업자, 포털 사업자 등의 이해와 규제 당국의 이해가 충돌하지 않음을 분석하고 있다. 잦은 자료 요청과 숱한 블라인드 처리 요구 등 정부 당국의 간섭은 통신망 사업자, 포털 사업자 관리 등 ‘추가 비용’을 일으킨다. 그러나 표현의 자유 규제는 이들 사업자의 사업 모델과 충돌하지 않는다. 특정 사업자 이용자 중 소수의 목소리가 해당 서비스 내부에서 확산되지 않게 하는 일은 사업자의 사업 기회를 위협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이들의 저항은 생색내기에 지나지 않을 수 있다. 표현의 자유를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위원

<font size="3"><font color="#991900">관련 디지털 텍스트</font></font>
잭 볼킨 블로그
http://balkin.blogspot.kr/

*‘강정수의 디지털 텍스트’는 디지털 시대 다양한 텍스트들에 담긴 지식, 정보, 문화 등에 대해 이야기하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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