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동 상인은 넘쳐나는 중국 관광객으로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잠시 엉뚱한 상상에 빠져보자. 명동을 찾는 관광객이 없다면? 서울 인구도 명동이 상업지구로 성장한 일제강점기 수준으로 낮추고 여기에 스마트폰의 대중화라는 다소 어울리지 않는 조건을 추가한다면, 명동에는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현실적인 상상일까. 아니다. 인구 30만 미만의 대다수 유럽 또는 북미 도시의 현재 모습이다. 이들 도시 중심에 위치한 상업지역의 점포가 하나둘 문을 닫고 있다. 백화점을 찾는 사람이 빠르게 줄어들고 있다. 한때 반짝였던 쇼핑몰의 장신구들에 먼지가 쌓인 지 오래다. 상인들은 원인을 나름 알고 있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전자상거래(E-Commerce)다. 아니 상인들은 이를 악마의 상거래(Evil-Commerce)라 칭하는 데 주저함이 없다.
2014년 독일에서 두 개의 연구보고서가 발간되었다. 첫 번째 보고서의 제목은 ‘악마의 상거래’다. 전자상거래협회의 위탁을 받은 연구진은 오프라인 상거래 쇠퇴의 원인을 찾고자 했다. 연구 위탁자의 뜻이 반영되었다고 단정할 수 없지만 전자상거래가 그 원인이 될 수 없다는 게 연구 결과다. 2000년부터 2010년까지 독일 중소 도시의 상가 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다만 상가당 매출은 줄었다. 그 원인을 전자상거래에서 찾기에는 이른바 ‘증거 불충분’이다. 전자상거래는 택배 수요의 폭발적인 증가를 수반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전자상거래는 불필요한 환경오염을 유발한다는 주장 또한 연구진의 조사 대상이었다. 이들은 이 역시 ‘증거 불충분’이라고 답변한다. 더불어 전자상거래는 중·장기적으로 환경친화적이라는 주장을 덧붙였다. 다만 연구진은 노동자 1인당 노동생산성 비교를 통해 전자상거래가 오프라인 상거래의 생산성을 앞선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전자상거래가 전체 일자리 감소로 이어진다는 것을 부정하지 않는다.
두 번째 연구보고서를 발주한 곳은 독일 상인연합회(HDE)다. 연구 결과는 전자상거래가 걱정한 것처럼 오프라인 상거래를 대체하지 않으리라는 것과 2020년에도 전자상거래는 전체 거래의 20~30%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전망을 담고 있다. 연구보고서는 전자상거래는 24시간 이용할 수 있으니 오프라인 상거래에만 적용되는 영업시간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소비자 입장에서라면 특정 상거래 채널을 고집할 필요가 없다. 백화점에 등을 돌리는 이유는 이보다 더욱 편하고 좋은 조건에서 물건과 서비스를 구매할 방법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옷가게에서 몸에 맞는 옷이 없을 때, 옷가게에 주문을 하고 집으로 배달이 된다면 이를 전자상거래로 불러야 할까? 또는 모바일로 메시지를 받고 상점에서 물건을 찾아간다면? 특정 장소, 특정 채널에 따라 홈쇼핑, 모바일 쇼핑 등으로 분류할 필요가 없는 사회로 진화하고 있다. 저널리즘을 종이에만 한정할 필요가 없듯이 말이다. 이러한 변화를 인식하고 상거래를 혁신하는 곳만이 살아남을 뿐이다.
강정수 연세대 커뮤니케이션연구소 전문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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