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경제학자 가이 스탠딩이 쓴 가 위험한 책인 것은 노동하는 우리들 대부분이 처해 있는 맥락을 일깨우기 때문이다. 1980년대 프랑스 사회학자들은 증가하는 임시노동자들을 보면서 불확실하다는 뜻의 ‘프리커리어스’(Precarious)와 무산계급 ‘프롤레타리아트’(Proletariat)를 조합해 불안정노동자, ‘프레카리아트’(Precariat)라는 용어를 만들었다. 독특한 불안, 독특한 일련의 요구를 가진 이 새로운 계급은 처음엔 비정규직, 실업자, 계절노동자처럼 노동시장의 가장 극악한 처지에 몰린 사람들만을 일컬었다.
21세기의 로빈 후드, 도시 거류민들…. 프레카리아트라는 말에서 2006년 유로메이데이 때 축제용 복면을 쓰고 슈퍼마켓에 나타나 아무것도 사거나 훔치지 않고 다만 진열대를 엉망으로 만든 뒤 소비와 소유에 대한 메시지만 남기고 떠난 사람들에 대한 이미지만을 떠올린다면 당신은 불안을 느끼지 않을 수 있다. 그러나 고용주나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느라 노동시간을 계속 늘려나가며 자신의 시간 사용을 통제할 수 없어서 스트레스를 겪는 생활, 숙련 기술처럼 여러 형식의 노동 훈련을 점점 더 늘려가야 하는 프레카리아트의 삶은 우리와 크게 멀지 않다. 지금 이탈리아에선 프레카리아트는 불확실한 생존 방식을 함의하는 말로 넓어졌다.
프레카리아트는 전통적으로 프롤레타리아트에게 있었던 사회적 계약관계, 즉 복종과 한시적 충성을 대가로 노동 보장이 제공되는 식으로 복지국가를 받쳐주는 불문율에 해당하는 거래조차 하지 못한 사람들이다. 문제는 이 거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은이는 지금 많은 나라에서 성인 인구 중 4분의 1이 프레카리아트에 속한다고 추산한다.
마르크스는 프롤레타리아트에게 변혁의 열쇠가 있다고 보았지만, 노동 공동체에 관심이 없고 분노·아노미·걱정·소외감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프레카리아트 계급은 절대 균일하지 않다. 재분배와 기회 평등을 요구하며 불안에 맞서길 원하는 프레카리아트도 있지만 포퓰리즘이나 네오파시즘에 끌려다니는 이들도 있다. 어느 프레카리아트든 노동주의적 고용 보장의 시대엔 미련을 갖지 않는다. 계급을 소수 엘리트, 정규 고용직인 샐러리아트, 프레카리아트 등으로 나누고 하향식 학교 교육부터 인터넷 중독까지 생활의 모든 국면을 프레카리아트화로 설명하는 이론을 받아들일 수 있을까? “너무 오랫동안 수명을 다해가는 노동 방식의 편을 들어왔다”며 좌파가 처한 위험을 경고하는 이 책이 영국에서 전통적 사회주의자들의 반발을 불러일으킨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아직 형성 중인 계급’의 눈으로 세상을 보는 것은 예언적 힘을 갖게 한다. 한국에선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저작선을 번역해온 박종철출판사에서 이 책을 번역한 이유를 생각해보게 된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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