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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격이 ‘99’로 끝나는 이유

마이클 페럴먼의 <무엇이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가>
등록 2014-05-03 22:22 수정 2020-05-0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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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신 차리지 않으면 하루아침에 비정규직으로, 신용불량자로 전락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기계발에 힘쓰지 않는 무능한 노동자는 시장경제의 범죄자다. 최근 미국에서 ‘네 일은 네가 책임져라’(You’re On Your Own)는 뜻의 ‘요요(YOYO) 경제’라는 신조어가 나왔듯이, 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거나 아예 일할 기회조차 없어도 불평할 권리는 없다. 소비자에게 필요 없거나 매력 없는 물건이 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것처럼 기업에 불필요한 노동자는 고용되지 않을 뿐이다. 시장을 우선하다보니 본말이 전도됐다. 이 책을 쓴 마이클 페럴먼에 따르면, 침대에 맞춰 다리를 잘라내듯 시장에 맞춰 노동자와 노동의 가치를 깎아내려온 프로크루스테스주의를 수치화하고 실현해온 사람들은 바로 경제학자다.

미국의 진보적 경제학자인 마이클 페럴먼은 “경제학자들은 인간의 삶을 연구하기보다는 ‘경제적 동물’이라는 허구적 개념에 매달려 객관적인 과학자인 것처럼 주제넘게 나섰다”는 비판을 서슴지 않는다. “사체 경직된” 경제학을 부검하는 일은 애덤 스미스의 유산을 파헤치는 것에서 시작한다. 현대 주류 경제학자들의 종교는 ‘시장’이고, 그들의 성서는 애덤 스미스의 이다. 미국 최대 통신기업이 4만 명의 노동자를 해고하면서 내놓았던 논평 “일거리가 없는 게 아니라 일자리가 없다. 노동자는 회사에 자신의 기술을 팔러 온 상인이나 마찬가지”라는 말과 “경제의 핵심은 생산보다는 교환에 있다”는 애덤 스미스의 주장은 판박이다.

지은이 스스로 가장 핵심적인 장이라고 한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 것들’은 이 책의 질문에 대한 답이라고 할 만하다. 경제학자들은 공공교육이나 공공의료를 시장질서를 거스르는 사회적 낭비라고 규탄한다. 그러나 책은 마케팅이라는 이름의 막대한 ‘스팸노동’, 자본가들이 자신의 상품을 지키기 위해서 배치하는 ‘감시노동’, 그리고 투기적인 활동은 더 큰 상상할 수 없는 비용을 요구한다고 지적한다. 미국에서 흔히 사용하는 ‘99센트 가격제’는 소비자에게 1센트를 깎아주기 위해서가 아니다. 고객이 동전을 털어 물건값을 정확히 낼 리가 없으므로 종업원들은 계산할 때마다 금전등록기를 열어 판매 액수를 제대로 입력할 수밖에 없다. 감시노동으로 고안된 이 가격제를 지키기 위해 정부는 동전 발행을 위해 막대한 사회적 비용을 치러야 한다. 미국 사회가 앓고 있는 부당해고, 지독한 가난, 열악한 건강보험 등 갖가지 문제는 견고한 시장경제라는 바위에 갇혀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서는 아테네의 영웅 테세우스가 프로크루스테스를 무찔렀다. 지은이는 우리를 무능하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수갑으로부터 우리가 스스로를 구해야 한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지속되는 망치질이 끝내 자본주의적 통제를 쪼갤 것이다.” 경제를 제대로 이해하는 실질적인 진보를 위해 쓰였다는 이 책은 김영배 경제부장이 우리말로 옮겼다.

남은주 문화부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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