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아리 제공
투수가 공을 던진다. 저 폼은 틀림없는 속구다. 타자가 배트를 휘두른다. 그런데 속도가 뚝 떨어져 날아온다. 타자는 자세가 흐트러지며 타이밍을 놓친다. 이것이 바로 체인지업이다. 변화구가 공의 방향을 바꾸어서 타자를 공략하는 것이라면, 체인지업은 공의 속도에 변화를 줘서 타자의 허를 찌르는 것이다. 속도를 바꾸는 아이디어에 대해 생각해보자.
박찬일 셰프의 글에서 읽은 적이 있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의 식당에서 일할 때 그의 스승이던 주방장 주세페는 소스를 끓일 때 이렇게 외쳤다고 한다. “당장 소스 불 줄이지 못해? 연애랑 소스는 천천히 해야 제맛이라고!” 주세페 바로네. 그는 슬로푸드 운동 시칠리아 지부를 이끈 사람이기도 했다. 슬로푸드의 반대말은 무엇인가. 패스트푸드다.
패스트(fast). ‘빠름’은 정보기술(IT) 광고에서 여전히 핵심 키워드인 모양이다. 십수 년째 우리는 광고를 통해 지겹도록 ‘우리가 제일 빠르다’는 선언을 듣고 있다. 유승준이 “따라올 테면 따라와봐”를 외치던 때로부터 지드래곤이 “팔로 팔로 미”를 외치는 지금까지. 요즘도 이동통신 3사가 모두 빠름을 부르짖고 있는데, 이건 영원히 이어질까?
기술이 빨라져서 더욱 느려지는 것도 있다. 고속촬영 기술이 발달하면서 슬로모션의 세계는 눈부시게 느려졌다. 우리는 김연아의 동작이나 빌 비올라의 영상작품을 또렷하고 아름다우며 느린 장면으로 기억한다. 슬로모션은 인식의 왜곡일까? 누구나 인생에서 슬로모션으로 기억하는 장면이 있을 것이다. 사랑을 해본 자라면 더더욱. 바람에 흩날리던 누군가의 머리카락 같은 것 말이다. 영화 에서 본 장만위(장만옥)와 량차오웨이(양조위)의 느린 움직임은 그래서 오히려 정확하게 느껴진다.
속도는 당연하지 않다. 우리는 속도를 선택할 수 있다. 일상에서, 나에게 좋은 통찰을 던져주는 건 고양이들이다. 고양이는 아주 날쌘 동물이지만 대부분의 시간을 가만히 앉아 있는다. 햇빛을 쬐거나 공기 중의 먼지를 주의 깊게 바라보면서. 그것은 큰 위로가 된다. 시간을 들여 가만히 고양이를 볼 수 있는 사람에게는 말이다. 사람들은 인생을 마라톤에 곧잘 비유하며 지금은 뒤처진 것 같아도 길게 보면 나중에 앞설 수 있으니 꾸준히 달리라고 충고한다. 고양이들은 가만히 앉아서, 느릿느릿 앞발로 세수를 하며, 인생은 달리기도 속도경기도 아님을 일깨워준다. 그들은 아주 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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