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최초의 ‘거대한 실패’를 안겨준 베트남전쟁은, 얄궂게도 역대 최고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케네디 시절에 시작됐다. 물론 그 전쟁을 구체적으로 수행한 인물은 케네디 사후 대통령직을 이어받은 부통령 린든 존슨이었지만, 미국이나 베트남 모두에 아물지 않는 상흔을 남기고 세계에 미국 패권주의의 사나움을 드러낸 이 전쟁의 기획자들은 최고 중의 최고라 불린 케네디 행정부 내 ‘최고의 인재들’이었다.
데이비드 핼버스탬의 (The best and the brightest, 송정은·황지현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다음과 같은 물음에서 비롯됐다. ‘왜 미국 최고의 두뇌들이 베트남전이라는 최악의 오류를 범했는가.’ ‘세계질서의 수호자’ 미국은 자신들이 ‘삼류국가’라고 무시한 베트남을 상대로 참혹한 실수를 저질렀다.
핼버스탬은 500회의 인터뷰와 방대한 자료조사를 통해, 미국의 최고 엘리트들이 체계적 조사나 전문가들의 의견에 대한 경청 없이 자의적으로 설정한 수치를 토대로 주먹구구식 전쟁을 치렀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책의 곳곳에서 출몰하는 ‘오만과 편견’에 따라 전쟁에 나선 세계의 경찰 미국의 몰골은, 어이없음을 넘어 차라리 가련하게 느껴진다.
자신들이 옳고 정당하다고 믿은 그들은 반(反)식민주의를 내세운 베트남의 저항적 민족주의를 공산주의로 오도했다. 베트남전은 세계의 공산화를 막아야 한다는 ‘도미노이론’의 최전선이었다. 사실 더 큰 문제는,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깨닫고서도 방향을 틀지 않았다는 데 있는지 모른다. 결국 베트남전쟁이 잘못된 개입임을 케네디 정부에서 이미 깨달았지만, 뒤를 이은 대통령 린든 존슨의 ‘위대한 사회’ 건설에 대한 개인적 야망과 관료세계의 경직성, 그리고 미국은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자기기만에 뿌리를 둔 ‘낙관주의’가 그들로 하여금 제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막았다. ‘윤똑똑이’는 ‘헛똑똑이’였다.
기자 시절 1964년 미군의 베트남 주둔에 의문을 제기한 일련의 기사로 이미 퓰리처상을 받기도 했던 핼버스탬은, 취재원들이 의도적으로 흘려주는 소스에 놀아나는 워싱턴의 출입처 기자들을 혐오했다. 그는 정부와 권력의 거짓말을 밝히는 것이 기자의 의무라고 생각했고, 진실을 말하는 기자는 필연적으로 외로울 수밖에 없다고 믿었다.
1972년 출간돼 큰 반향을 일으키며 미국 내 반전 여론 형성에 기여한 이 책은, 핼버스탬을 ‘뉴저널리즘의 창시자’로 만들며 그를 미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기자이자 역사가로 우뚝 세웠다. “이 빛나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책은 이 세대를 넘어 다음 세대의 양심을 휘저을 것”()이라는 상찬은, ‘기자들의 기자’에게 보내는 경의처럼 보인다. 아직도 기자라는 이름이 매력적이라면, 그 한 이유가 이 책에 있다.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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