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내일도 네가 제일 잘나가

밴쿠버 금메달 수상 이후 기록 경신 이어가는 스피드스케이팅 이상화
날마다 새로워지는 그는 누구보다 금메달감
등록 2014-02-12 15:06 수정 2020-05-03 04:27

그의 앞에는 예니 볼프가 있었다. 2010년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예니는 ‘넘사벽’이었다. 여자 500m 스피드스케이팅 월드컵 종합 2005~2006 시즌부터 2009~2010 시즌까지 연속 우승, 세계 종목별 선수권 2007~2009년 3연패. 세계신기록도 그녀의 것이었다. 2007년 3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처음 37초04의 세계신기록을 세웠고, 같은 해 11월 같은 곳에서 자신의 기록을 0.02초 단축했다. 밴쿠버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월드컵, 예니는 다시 37초00으로 세계기록을 갈아치웠다. 지난해 말부터 잇따라 세계기록을 바꾼 이상화 선수처럼.

어떤 한국 선수도 가보지 못한 경지

그의 옆에는 예니 볼프가 있었다. 밴쿠버 올림픽 여자 500m 아웃코스의 이상화 옆에 인코스의 예니가 나란히 섰다. 2006년 토리노 올림픽 5위, 이상화의 목표는 언제나 예니를 쫓아가는 것이었다. 4년을 한 걸음 한 걸음 쫓아온 이상화, 올림픽 첫 맞대결에서 초반 100m는 조금 처졌지만 3~4코스를 돌자 넘사벽을 넘어서 있었다. 여기가 끝이 아니었다. 이번에도 옆에는 예니가 있었다. 여자 500m 2차 레이스 마지막 조, 인코스의 이상화 옆에는 아웃코스의 예니가 있었다. 이번엔 3~4코너를 돌자 예니가 앞서 있었다. 이대로 끝나면 1~2차전 종합 역전도 가능한 상황. 마지막 직선주로, 이상화는 한 번씩 스케이트를 밀 때마다 조금씩 조금씩 따라붙었다. 마치 지난 4년, 하루하루 예니와 격차를 조금씩 좁혀온 것처럼. 4년의 노력이 5초의 순간에 압축돼 보였다.

일신우일신(日新又日新). 이상화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문장이다. 올림픽 뒤에도 오히려 담금질은 더해졌다. 김연아가 시즌을 쉴 때도, 모태범이 시즌마다 들쭉날쭉할 때도, 이상화는 일신우일신을 멈추지 않았다. 4번의 세계기록을 스스로 세우고 경신했다. 어떤 한국 선수도 기록경기에서 가보지 못한 경지다.

지금 그의 앞에는 이상화가 있다. 1979년생 예니는 예상 밖의 추월을 당해 올림픽 금메달을 놓쳤지만,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환하게 웃었다. 여제의 마지막 모습이라고 여겨졌다. 그러나 예니는 멈추지 않았다. 이상화라는 넘사벽이 앞에 있지만, 여전히 이상화 옆에서 경쟁한다. 올해로 35살, 마지막 올림픽에서 여제로 불렸던, 불리는 이들이 다시 만난다.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세계기록

이만하면 됐다 싶은 순간에도 그는 멈추지 않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 체중을 줄였다. 줄이고 말고 할 군살이 없는 프로 운동선수에게 근육을 늘리고 체중을 줄이는 과정은 끔찍한 고통이었을 것이다. 이상화는 감량 이후 도저히 불가능해 보이는 기록을 작성해갔다. 올림픽을 모든 선수의 정점으로 생각하는 한국에서 금메달을 따고 난 뒤에 밀려왔을 허탈함, 목표로 삼은 선수를 따라잡은 뒤에 느꼈을 허망함은 이상화의 것이 아니었다. 올림픽 금메달을 단 한 번의 레이스가 아니라 지난 4년의 종합으로 준다면, 이상화는 누구보다 금메달감이다.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