넬슨 만델라를 처음 만난 건 1996년 미국 뉴욕의 어느 헌책방에서였다. 자서전 <long walk to freedom>을 읽자 어렴풋했던 거인의 진면목이 오롯이 드러났다. 그의 영결식에 100명이 넘는 전·현직 세계 정상들이 참석한 데는 울림이 있는 말과 그 말에 힘을 실어준 삶이 있었다.
위대한 투사이자 정치가였던 만델라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말이었다. 그런데 그 말의 대부분은 27년 동안 교도소 담장을 넘지 못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백인 정부가 ‘정부 전복을 기도했다’는 이유로 그의 말까지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당시 남아공에선 만델라를 인용하는 것조차 불법이었다. 1990년 그가 로벤섬의 감옥을 벗어난 뒤 그의 사상이 담긴 그릇도 비로소 자유를 찾았다.
“모두를 위한 평화와 민주주의, 자유의 이름으로 여러분 모두에게 인사드린다. 나는 선각자가 아니라 국민 여러분의 보잘것없는 종으로서 여기 여러분 앞에 섰다. 여러분의 지칠 줄 모르는 영웅적 희생 덕분에 오늘 내가 이 자리에 설 수 있게 되었다. 따라서 남은 생도 여러분에게 맡긴다.” 석방 이후 첫 연설부터 세계를 울렸다.
‘넬슨 만델라 메모리 센터’가 만델라의 말을 모아 (윤길순 옮김, 알에이치코리아 펴냄)을 펴냈다. “가장 많이 인용되기도 하지만 (동시에) 가장 많이 잘못 인용”되기 때문이다. 센터는 그의 각종 연설문, 아내를 비롯해 가족, 지인들과 주고받은 편지, 다큐멘터리 같은 기록 등 방대한 자료를 토대로 그의 ‘진짜’ 말만을 추려냈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영웅’(Hero)을 펼치면 “부수고 파괴하는 것은 아주 쉽다. 영웅은 평화를 이루고 건설하는 사람”이라는 만델라식 정의가 적혀 있다. ‘사랑’(Love)에 대해서는 그가 뭐라고 언급했을까. “모두들 나를 만지고 싶고 껴안고 싶어 하니, 이들의 사랑 때문에 내가 죽을 판이다. 나의 팬인 사람들, 나를 숭배하는 사람들로부터 나를 지켜야 할 지경”이라고 너스레를 떤다. 또 ‘자신에 대해서’(Himself)에서는 “가끔은 나도 다른 지도자들처럼 발을 헛디뎠으니, 나만 고고하게 빛난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고백이 등장한다. 책임(Accountability)부터 시오니즘(Zionism)까지 317개 주제어로 만델라를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그가 오래 머물렀던 교도소, 그가 가장 많이 고민했던 아프리카와 남아공에 관한 내용이 많은 게 특징이다.
그래서 이 어록은 ‘만델라 초보자’보다는 어느 정도 그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권할 만하다. 여느 책처럼 첫 장부터 쭉 읽기보다는, 특정 주제에 대해 ‘마디바’는 뭐라고 말했을까 궁금할 때 펼쳐보는 방식이 어울릴 것 같다. 사전을 읽는 경우는 드무니까. 인간의 자유와 평등, 인종차별 철폐와 민주주의를 향한 그의 긴 여정은 끝났지만, 그의 삶과 말은 앞으로도 오래도록 인용될 인류의 정신적 유산이 됐다.
김보협 에디터부문 편집2팀 기자 bhkim@hani.co.kr</lo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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