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와로, 김전일, 코난… 그다음엔 오로라. 이 불가해한 능력자들은 주변 사람들을 차례로 사라지게 한다. 맥락도 이유도 없다. 그중에서도 오로라의 소멸 마법은 새로운 차원이다. 그것은 우리 대뇌의 전두엽 귀퉁이에 남아 있던 일말의 논리적 유추 능력까지 무력하게 만들고 있다. 왜 사라지는가? 원한인가, 복수인가, 출연자의 말 못할 속사정인가? 알 수 없다. 오직 임성한 작가의 내부에서 벌어지는 의식의 흐름에 따라 존재 유지 여부가 결정되는 것이다. 인간은 그런 무의미에 가장 큰 공포를 느낀다. 마치 에서 교통사고로 죽은 뒤 자기 집에 갇힌 부부의 혼령이 집 밖으로 나가려고 할 때, 초현실주의적인 문양이 그들을 질겁하게 만드는 것처럼. 그러나 이상한 나라의 는 시청자를 감염시키는 데 성공했다. 이쯤 되면 말할 수밖에 없다. 오로라는 우리 국민의 집단 무의식을 반영하는 초현실주의 작품이다. 터무니없는 에피소드의 연속이지만, 시청자는 그런 어처구니가 실제로 존재한다고 증언한다.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자기들끼리 외국어로 말하는 잘난 한국인들, 남동생의 아내를 쥐 잡듯 가지고 노는 데서 인생의 희열을 느끼는 시누이들, 어느 날 갑자기 상사의 눈 밖에 나서 책상을 비워야 하는 계약직… 이 사회는 어떤 예측도 불가능하다. 조금만 깊이 있게 그 문제를 들여다보려고 하면 새로운 자극적인 사건이 등장해 어제를 덮는다. 그리고 그 흑막 뒤에는 이 모든 걸 무책임하게 바라보는 거대한 여왕님이 있는 것 같다.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
임성한 드라마는 이른바 ‘욕하면서 보는 드라마’의 대명사다. 극 자체의 재미보다 그 내용을 욕하는 재미로 보는 드라마란 뜻이다. 이 욕하는 행위의 쾌감을 임성한만큼 잘 충족시켜주는 작가도 없다. 임성한 드라마에서는 이기적이고 속물적인 인물들이 서로를 뒤에서 헐뜯기에 바쁜데 이 노골적인 ‘뒷담화 화법’이야말로 욕하며 본다는 막장 드라마 시청의 메커니즘과 정확히 일치한다. 임성한 드라마 사상 가장 많은 욕을 이끌어내고 있는 만 봐도 그렇다. 인물들의 뜬금없는 줄초상도, 불륜이나 개 사주를 보는 이상 행위도 시원한 욕을 이끌어내지만, 이보다 두드러지는 건 인물들이 무수한 뒷담화를 통해 욕하고 싶은 시청자의 심리를 대변한다는 점이다. 시누이들이 로라(전소민)를 욕하면, 로라 친구가 시댁에 대해 험담하며 그녀의 마음을 대리하는 식의 뒷담화가 무한 반복된다. 방식도 다양하다. 자막과 만화의 말풍선 기법까지 동원한 뒷담화는 웬만한 버라이어티 못지않다. 시누이들이 프랑스어로 로라를 헐뜯는 장면은 그중 압권이다. 문제는 이런 험담이 지극히 말초적이라는 것이다. 기존 막장 드라마를 향한 욕설이 패륜에 대한 윤리적 비난에 가까웠다면, 임성한의 뒷담화는 우리 안의 속물근성과 편견을 그대로 받아쓴다. 그 안에는 ‘나보다 잘난’ 이를 향한 질시나 사회적 약자를 향한 비하, ‘맘에 안 들면 까고 싶은’ 욕망이 그 어떤 문제의식도 없이 날것 그대로 떠다닌다. 같이 욕하면서도 개운치 않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김선영 TV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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