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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2년 6월. 한강 인도교를 관할하는 경성 용산경찰서는 끊이지 않는 자살자들 때문에 무척 곤혹스러웠던지, 인도교 난간에 붙이겠다며 자살자의 마음을 돌리게 할 표어를 현상 공모했다. “명사십리 해당화는 명년 춘삼월 다시 피지마는 인생 한 번 죽어지면 다시 오든 못하리라” “고진감래라니 죽지 말고 살아 있소” 등의 화려한 응모작들이 몰렸다. 결국 인도교 팻말에 붙은 문구는 “잠깐 기다리시오”였다. 그럼에도 1926년부터 1930년 사이 이곳에서 투신자살한 사람은 무려 109명이나 됐다고 한다.
자살, 특히 근대와 자살의 연결고리에 대해 독보적인 연구를 계속해온 천정환 성균관대 국문과 교수의 논의를 따라가자면, 그때와 지금의 자살을 어떻게 경험하고 인식하는지를 비교해보는 것은 우리네 삶과 사회를 읽는 핵심적인 화두가 될 것이다. 최근 나온 (문학동네 펴냄)은 그동안의 연구 성과를 1차적으로 정리해낸 책이다.
왜 자살이 화두인가? 자살이란 삶의 뒷면인 죽음을 스스로 선택한다는 점에서 “우리네 삶과 사회의 한계 자체”라고 한다. 그래서 지은이는 현상 또는 사건으로서 자살이 봉건시대부터 오늘날을 포함하는 근대에 이르기까지 어떤 양상으로 나타났는지, 어떻게 인식되고 다뤄져왔는지 그 변천사를 들여다보려 한다. 이를 위해 조선총독부의 자살 관련 자료나 대중매체에 나온 자살 관련 기사, 자살을 소재로 삼은 재현물과 자살에 대한 논의 등 폭넓은 단서들을 넘나든다.
자살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담았지만, 무엇보다 지은이는 근대에 접어들면서 자살의 원인이나 양태, 그를 대하는 사회적 인식이 크게 바뀌어왔다는 점에 초점을 맞춘다. 유교적 봉건 이데올로기가 작동하던 봉건시대에는 ‘분하고 수치스러워서’ 목숨을 끊었다는 기록이 많았다. 그러나 1910년대 들어 공식적인 자살 집계가 시작되고 ‘염세’ ‘정신착란’ ‘신경쇠약’ 같은 새로운 자살 이유가 등장하는 등 생명과 죽음을 통제하고 관리하려 드는 ‘근대 권력’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도저한 근대 권력의 흐름은 자살률이 기하급수적으로 폭증한 2000년대에까지 닿는다. 역사상 최고치를 기록하고 있고 세계 어느 나라보다 높은 한국의 자살률은, ‘자기계발’을 앞세운 신자유주의적 삶의 양식이 일상생활 곳곳에 파고든 “노무현 정부 시절에 달성되고 이명박 정부 때 굳어진 것이다”. 지은이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비롯해 삶의 절벽에 몰린 사람들의 자살이 온 사회에 만연하지만, 누군가의 자살에 더 이상 ‘반응’하지 않는 이 시대의 모습을 지적하며 이렇게 묻는다. “이제 우리는, 누가, 어떻게, 죽으면 충격을 받고, 또 그것을 인간다움에 대해 함께 성찰하고 실천하는 재료로 삼을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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