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 캐나다 작가 얀 마텔은 자신의 나라 총리에게 책을 권하는 프로젝트를 2007년부터 2011년까지 진행했다. 캐나다의 스티븐 하퍼 총리는 이 자신이 읽은 가장 인상적인 책이라고 꼽은 사람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작가정신 펴냄)로 올 초 번역돼 나왔다. 얀 마텔이 총리에게 권한 책은 모두 문학책이었다.
(박용준 옮김, 궁리 펴냄)에서 법철학자이자 정치철학자인 마사 누스바움은 법관들에게 문학을 읽으라고 권한다. 누스바움은 1994년 시카고 로스쿨에서 ‘법과 문학’ 강의를 시작했다. 로스쿨은 대학과 시내 빈민가를 분리하는 검은 철창에서 50m도 안 되는 거리에 있었다. 학생 70명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은 단 한 명이었다. 그들은 수업에서 리처드 라이트의 을 읽었다. 시카고 남부 빈민가를 배경으로 우발적인 계기로 살인을 저지르는 흑인 청년을 그린 소설이다. 학생들은 흑인 청년에게 이런 말을 하는 소설 속 등장인물과 비슷했다. “나의 집에서 10구역 떨어진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이 어떠한지 전혀 아는 바가 없어요.” 흑인 청년은 그 말에 대답하지 못한다. “그는 자신이 살인을 한 이유에 대해 결코 말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왜 죽였는지 말하고 싶지 않아서가 아니었다. 그 이유를 해명하려면 자신의 삶 전부를 설명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작 소설로 그들의 삶을 이해할 수 있을까. 저자는 서사문학에 대한 사유가 법에, 더 넓게는 공적 추론에 기여할 수 있는 잠재력을 지녔음을 굳게 믿는다. 쓸모없다는 상상력과 ‘공상’이 그런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E. M. 포스터의 는 동성애자를 자기 자신 혹은 자신이 사랑하는 이들 중 한 명으로 상상하게 만든다. 은 동떨어진 삶을 살아가는 타인의 ‘선함’에 관심을 갖도록 만든다. 법관에게 이러한 공감과 상상은 필수적이다. 그럼으로써 자신의 앞에 선 한 인간을 “정체불명의 사람”이 아니라 “고유의 개별적인 인간 존재”로 대하게 되는 것이다.
4장에서는 ‘문학적 감수성’을 발휘한 실질적인 판결문이 제시된다. 4장의 제목은 ‘재판관으로서의 시인’이다. 저자가 여러 번 인용하는 월트 휘트먼의 시가 왜 판사가 ‘시인’이어야 하는지를 설명해준다. “그(시인)는 다양성의 중재자이며 열쇠/ 그는 자신의 시대와 영토의 형평을 맞추는 자.” 얼마 전 한국 검찰은 한 시인을 법정에 세웠다. 현재의 대통령을 선거 기간 중에 비방했다는 혐의다. 참여재판의 배심원들은 만장일치 ‘무죄’판결을 내렸지만 재판관은 ‘연기’ 결정을 내렸다. 가장 ‘시인’이 안 될 것 같은 판사들의 나라, 한국의 로스쿨에는 본격적인 문학 강의가 있는가.
구둘래 기자 anyone@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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