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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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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노보리 보고 간 놈 막장 실상을 알 턱 있나

폐광 10년째 맞은 사북 동원탄좌 광부들의 한 서린 언어들… 사행업소 화려한 조명 뒤로 막장 인생의 비참은 오늘도 이어지고
등록 2013-10-03 14:14 수정 2020-05-03 04:27

▶이 을 편찬합니다. 언어는 거울이면서 거짓입니다. 삶을 투영하기도 하지만, 삶을 왜곡하기도 합니다. 삶과 조응하기도 하지만, 삶을 조롱하기도 합니다. 국가가 국민의 표준을 지정할 때, 표준에서 배제된 국민은 ‘韓국’을 ‘恨국’으로 해석합니다. 국가가 언어의 표준를 규정할 때, 표준에서 배제된 언어는 ‘韓국어’가 아니라 ‘恨국어’입니다. 韓국어는 ‘뼈를 깎는 구조조정’이라고 쓰지만, 恨국어는 ‘뼛가루들의 눈물’이라고 읽습니다. 恨국어에서 ‘해고노동자의 호소’가 韓국어에선 ‘불순세력의 떼법’으로 오역됩니다. 은 ‘표준의 언어’보다 ‘표정 있는 언어’에 주목합니다. 韓국어는 ‘표준과 비표준’의 이분법으로 세상을 편집합니다. 은 표준에게 외면당한 은어·속어·조어 속에서 ‘恨국의 다층’을 길어내려 합니다. 첫 회론 10월 말이면 햇수로 폐광 10년째인 동원탄좌(1962~2004·국내 최대 민영 탄광이자 사북항쟁의 현장) 광부들의 恨국어를 채집했습니다. 당시 퇴직자(원·하청 합쳐 734명)의 그 후 10년도 추적했습니다. 은 독자와 함께 만듭니다. ‘독자 여러분의 恨국어’ 제보를 기다립니다(제보는 moon0@hani.co.kr로 보내주세요). 각자가 사는 지역과, 처한 현장과, 속한 노동과, 견디는 삶과, 흘리는 눈물과, 머금은 웃음과, 당하는 차별의 언어를 보내주십시오. 기대합니다. 그 언어들이 모이고 쌓여서 ‘韓국이 눈감아온 恨국의 심연’이 포착되기를.◀


▶관광노보리

[명사] 작업 환경이 가장 좋은 막장을 일컫는 은어. 주로 국가 고위 관리나 언론사 기자들이 갱내 견학을 오면 보여주는 곳이기도 했다. 1990년대 이후 기계화 채탄이 이뤄지면서 기어다니며 일하는 노보리는 사라졌다. *동원탄좌 폐광과 강원랜드 설립 뒤 사북(강원도 정선)의 외형은 엄청나게 바뀌었다. 관광노보리만으론 광부의 고된 삶을 파악할 수 없듯, 사북의 겉모습만으론 폐광 광부와 주민들 삶의 피폐함을 알기 어렵다.


▶노보리

[명사] 채탄부가 낮고 경사진 면을 기어 올라가며 탄을 캐는 막장 갱도. 일본식 탄광 용어. ‘상승사갱도’라고도 한다.

[사용례] 그(55)는 머리꼭지가 선뜩했다.

“누구요?”

좆이나 시팔. 저 새끼는 또 뭔가. 그는 느닷없이 나타난 ‘저 새끼’의 시선이 불편했다. 머리카락에서 흘러내린 비누 거품이 눈을 찔렀다.

물이 쫄쫄 흘렀다. 콸콸 쏟아지는 수돗물이 그리웠다. 수백 가구가 넘는 동원아파트 가로등 아래서 그는 웃통을 벗고 몸을 씻었다. 텅 빈 아파트단지 안으로 도둑처럼 기어드는 어둠에도 가로등은 반응하지 않았다. 아파트 창문은 모조리 깨졌고, 페인트칠은 깨끗이 벗겨졌으며, 복도마다 폭탄 맞은 듯 구멍이 뚫렸다. 아파트가 흉가인지 자신이 귀신인지 그도 모를 일이었다. 9월 사북 저녁의 쌀쌀한 공기가 맨살을 쓸었다. 그는 산에서 내려오는 물로 아파트 주차장에서 세수를 하고, 머리를 감고, 밥을 짓고, 설거지를 했다. (주)동원은 2년 전 아파트(광부 및 직원 사택)의 수도를 끊었다. 전기도 함께 거둬갔다. 2007년부터 회사는 집을 비우지 않는 옛 직원들을 찾아다니며 명도소송을 걸었다. 2004년 동원탄좌 폐광 뒤에도 떠나지 못했던 광부들이 짐을 쌌다.

‘저 새끼’가 주위를 얼쩡거렸다. 빨래를 하면서도 그는 자신을 흘낏거리는 ‘저 새끼’가 기분 나빴다. ‘저 새끼’ 같은 새끼들이 갑자기 나타날 때마다 그의 신경이 곤두섰다.

‘공식적으론 아무도 거주하지 않는 아파트’에서 그와 그의 중학생 딸은 숨어 살고 있었다. 오륙십대 홀아비 이웃 2명이 ‘없는 사람들’로서 아파트에 있었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사람이 살 때 사람은 어떤 존재인가를 그는 종종 자문했다.

광부들이 탄재 가득한 갱내에서 탄을 캐고 있다. 광부들의 삶을 담은 언어는 폐광 뒤에도 그들의 고된 현실을 직설하고 은유한다.

광부들이 탄재 가득한 갱내에서 탄을 캐고 있다. 광부들의 삶을 담은 언어는 폐광 뒤에도 그들의 고된 현실을 직설하고 은유한다.

그는 동원의 ‘마지막 퇴직자’ 734명 중 한 명이었다. 10년 새 53명이 땅에 묻히거나 뿌려졌다. 60%는 먼지 쌓인 허파가 딱딱해져서 죽었다. 시간은 그들에게 늘 공격적이었다.

땡땡땡(입갱 신호) 땡땡(퇴갱 신호)…. 대기실을 울리던 타종 소리는 기억조차 아득했다. 광부들을 땅 아래위로 실어나르던 케이지(엘리베이터)도 멈췄고, 인차(사람을 실어나르는 차)와 광차(탄을 실어나르는 차)는 레일마저 걷혔다. 선탄장(갓 캐낸 석탄 더미에서 돌을 골라내는 작업장) 피어오르던 탄재 안개는 자취 없이 사라졌고, 하이바(안전모)와 캐프(안전등)는 박물관에 전시됐다. 갑방 근무시간(아침 8시~오후 4시)에도, 을방 근무시간(오후 4시~밤 12시)에도, 병방 근무시간(밤 12시~아침 8시)에도, 그도, 그 누구도 출근하지 않았다. 미술 시간 사북 아이들이 까맣게 색칠했던 지장천 물이 맑아질 때마다, 지장산 위에 쌓인 보다(폐석을 뜻하는 일본어) 더미의 탄재가 씻겨나갈 때마다, 탄광이었음직한 흔적도, 광부였다고 말하는 사람들의 기억도 희미해져갔다. 연탄마저 외지에서 사다 썼다.

아파트를 점령한 수풀 사이로 중학교 3학년 딸이 언덕길을 올라왔다. 촛불을 켜고 지내는 방에서 딸에게 공부를 말할 순 없었다. 고등학교는 기숙사가 있는 외지로 보낼 생각이었다.

그는 선산부(채탄·굴진 과정에 선두에서 작업하는 숙련공. 일본식 표현은 ‘사끼야마’)였다. 그는 ‘톱도끼 받던 날’(선산부가 되는 날)의 흥분을 잊지 못했다. 후산부(선산부 뒤에서 일을 보조하는 미숙련공. 일본식 용어는 ‘아다무끼’) 앞에선 은근히 목에 힘을 줬다. ‘저승밥 싸가지고 다닌다’는 말도, ‘선산부는 선사부’(先死夫·선산부 작업의 위험성을 빗댄 표현)란 말도 비웃으며 그는 살아남았다. ‘딱 3년만 하고 떠나자’는 모든 광부의 거짓말을 그도 3년마다 갱신하며 나이를 먹었다. 23년을 광부로 살았는데, 그는 갈 곳이 없었다.

딸의 교복 가방 너머로 사북 시내가 하나둘 네온사인을 밝혔다. 러브호텔과 안마방, 레포츠용품 대여점 불빛이 사북의 밤하늘을 채웠다. 카지노 강원랜드에서 돈을 탕진한 사람들의 담보 잡힌 차들이 전당포 주위마다 줄을 섰다. 강원랜드에서 한판 놀러 와선 겉만 보고 사북이 좋아졌다는 인간들은 탄광이 한창일 때 관광노보리나 보고 간 놈들과 똑같았다. 불 꺼진 육오공(해발 650고지) 수갱탑(막장으로 내려가는 수직갱도) 위에서 칠이공(720고지) 강원랜드가 ‘형광등 괴물’처럼 발광(發光)했다.

언어는 때론 선동이었고, 자주 기만이었다. 과거 그를 ‘산업전사’라고 칭했던 언어는 현재의 그를 ‘노가다’라고 부른다. 석탄 증산을 ‘애국’이라며 독려했던 언어는 어느 순간부터 감산과 폐광을 ‘합리화’라며 말을 바꿨다. 언어를 정의하는 권력을 가진 자들은 그와 동료들의 정체성을 극단으로 뒤바꾸며 언어를 감염시켰다.

“혹시 ㅈ(56)을 아십니까.”

그의 팔에 소름이 돋았다. 사람을 보면 무서운 아파트에서 ‘저 새끼’가 ㅈ의 행방을 물었다. ‘저 새끼’는 서울에서 온 기자라고 했다. 10년 동안 연락하며 지낸 ㅈ이 갑자기 연락두절이라며 횡설수설했다. ㅈ은 지난해 6월까지 동원아파트에서 살았다. ㅈ은 물이 새는 사동 501호에서 빈집 101호로 짐을 옮기고 수도 계량기를 떼어다 붙였다. 전기는 이틀 막일해 산 전선으로 501호에서 끌어왔다. 회사의 단전·단수 뒤 ‘물불 없는 삶’을 견디던 ㅈ도 아파트를 떠났다. ㅈ의 이삿짐을 그가 리어카로 실어날랐다.

그가 마른 수건으로 몸을 닦았다. ‘저 새끼’가 ㅈ을 찾지 못한 ‘어떤 이유’가 있었다. 그가 ‘저 새끼’에게 말했다.

“갑시다. ㅈ한테.”

도움말 정연수 탄전문화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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