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겼고, Mnet 은 끝나고 ‘존님’을 남겼다. 출신의 훈남, 존박에게 이런 천치 같은 매력이 숨겨져 있을 줄이야. 샤이니가 에 나왔을 때, 살아 있는 비주얼로 증명했듯 존박은 샤이니 민호를 닮았다. 다만 이마부터 코까지만 닮았다. 그리고 하관의 반전. 존박이 스스로 “노래 주머니”라고 부르는 길쭉한 턱, 삼각형을 그리며 봉긋 올라간 윗입술은 그의 ‘덜덜이’ 캐릭터를 완성했다. 게다가 출신의 동료 김지수가 “죽은 물고기 같다”고 말한 눈은 작심하고 뜨면 한없이 멀뚱멀뚱해 캐릭터에 화룡점정을 찍는다.
‘이적쇼’는 ‘존박쇼’로원래 은 가상의 프로그램 ‘이적쇼’를 찍는 과정을 그린 페이크다큐다. “인정받는 싱어송라이터, 국내 톱3 작사가, 다복한 가정에 스터디셀러 작가, 저작권 부자”라고 스스로 말하는 엄친아 이적의 이면을 풍자하는 프로였다. 여자 밝히는 남자, 허세에 전 예술가 이적을 마치 다큐멘터리 찍듯 만들어 보여주는 것이었다. 진중권부터 김진표까지, 이적의 지인들이 등장하기도 하고 이적의 제자가 되려는 여성들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니까 공유를 닮았다고 주장하는 이적에게 “이런 적 같은!” 하면서 멘트를 날리는 식이다.
“존님은 바보야, 적이 형밖에 모르는 적이 형 바보!” 이적쇼를 찍겠다고 링거를 빼고 병원을 탈출한 존박을 두고 존아카펠라는 안타까워 그렇게 외쳤다. “존님의 도촬은 하루에 두 번까지 허용하는” 존박 팬들로 이뤄진 아카펠라 그룹 존아카펠라, 이들의 탄식처럼 존박의 캐릭터는 원래 그랬다. 이적의 곁에서 이적쇼의 보조 진행자로 쇼의 진실을 폭로하는 캐릭터. 그러니까 박준수 PD의 표현처럼 “멍청한 캐릭터가 아니라 멍청할 정도로 사실적인 캐릭터”였다(82쪽 상자 기사 참조). 예컨대, 천연덕스러운 얼굴로 “포장된 이미지로 데뷔하고 20년을 살아가고 있는 이적씨를 보면, 신승훈씨가 생각나네요”라고 독백한다든지, 이적이 “(성)시경이는 훨씬 까칠하고 (유)희열이 형은 변태예요” 하면 옆에서 “형은 둘 다” 하는 식이었다. 때로는 이적의 대변인으로 눈을 부라리며 “하여튼 방송국 놈들!” “엠넷 놈들 보자보자 하니까, 죽일 거다!” 외쳐서 웃음을 주었다.
그런데 갈수록 ‘이적쇼’는 ‘존박쇼’로 바뀌고 있었다. 음악적 영감을 주는 뮤즈로 출연한 개그맨 박지선에게 이적이 뺨을 맞아도 카메라는 이적보다 이적을 멍하게 쳐다보는 존박을 탐했다. 덜덜이 캐릭터를 드러내는 ‘움짤’이 인터넷에 넘쳐나고 마침내 하루도 냉면을 먹지 않으면 살지 못하는 ‘냉면성애자’ 캐릭터가 완성됐다. 냉면을 먹기 전엔 짜증을 한껏 부리다 이적의 냉면까지 한껏 덜어먹은 다음엔 “인터뷰 못했던 거 다 하시죠. 냉면을 잔뜩 먹었더니 콧노래가 절로 나오네요 니냐니뇨~” 하는 장면은 두고두고 인터넷에 회자됐다. 미국 명문대학 출신 엄친아 존박이 병맛 캐릭터로 거듭나는 순간이었다. 그에게 스머프 노래 “랄라라랄랄라 씽가랑씽숑”을 가르친 여배우 조여정이 아닌 줄 알면서도 “존박씨 진짜 바보예요?”라고 다시 물어볼 수밖에 없었던 것처럼, 그의 표정은 살아 있었다. 숱한 캐릭터를 보아온 이명석 대중문화비평가도 “정말 연기를 하는지 실제인지 헛갈릴 정도로 전무후무한 캐릭터”라고 말했다.
자정의 유희왕이 성인개그를 만날 때존박의 ‘흔들리는 동공’은 지상파로 진격했다. MBC 에 ‘유진박’으로 다녀갔고, KBS 에 출연한다. 그의 연기는 몰래카메라 편에서 보았듯이 연기와 실제의 경계에서 시청자의 판단을 잃게 만드는 호소력이 있다. 그냥 생긴 것으로 웃기는 듯 보이지만 이것은 쉬운 표현이 아니다. 존박 스스로 에서 말하지 않았던가. “덜덜이가 보기엔 쉬워 보여도 쉽지가 않거든요.” 물론 우려도 있다. MBC 다큐스페셜 에서 내레이터를 맡은 존박은 뮤지션으로 입지를 쌓기 전에 가벼운 이미지로 고정되지 않을까 걱정한다. 거꾸로 생각하면 이렇다. 그는 덜덜이 캐릭터가 한창 화제를 모으지만, 그 인기에 취하지 않고 진지한 뮤지션으로 자신의 지향을 내보이는 프로그램을 동시에 선택할 만큼 영리하다.
사실 의 화려한 피날레는 채찍과 밧줄과 하이힐의 3종 세트를 들고 등장한 유희열이 장식했다. 이적의 선배로 나온 유희열은 NASA의 브랜든 리 박사가 만든 호피무늬 하이힐의 발냄새를 흡입하며 창작의 고통을 잊고, 밧줄에 묶여 채찍을 맞으며 음악적 영감을 얻는 비밀을 공개했다. 채찍을 맞고 내는 신음 소리 하나, 존박의 무릎에 앉아서 “라면 먹고 갈래?” 할 때의 숨소리 하나에 ‘감성변태’의 진수가 배어났다. 오랫동안 심야 라디오 DJ를 하면서 연마하고 음악 프로그램 진행을 하면서 널리 알려진 ‘자정의 유희왕’이 드디어 성인개그의 달인 신동엽을 만난다. 유희열은 tvN <snl>에 고정출연을 하는데, 벌써부터 유희열과 신동엽의 ‘최강 19금(禁) 병맛의 탄생’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이명석 평론가는 “유희열은 여성적 19금 코드”라며 “‘SNL 코리아’는 미국의 ‘SNL’과 달리 생방송 느낌이 약했는데, 라디오 생방송을 통해 익힌 유희열의 개그가 더해지면서 생생한 느낌이 살아나지 않을까”라고 말했다.
“너 나한테도 밀리면 어떡하냐. ‘패닉’에선 김진표한테 밀리고 ‘카니발’에선 김동률에게 밀리고 ‘처진달팽이’에선 유재석에게 밀리고 에선 존박에게 밀리더니, 급기야 나한테도 밀리냐, 븅신.” 이적이 에 연재하는 ‘이적표현물’에서 지인 태일의 입을 빌려 한 말이다. 비록 존박의 인기에 가리긴 했지만, 이적은 자신이 쌓아온 이미지를 병맛으로 희화하는 “적 같은” 일을 마다하지 않았다. 특히 그가 빛난 순간은 오랜 지인을 만날 때였다.
에 김진표가 나와 둘의 과거를 서로 폭로하고 희화하는 장면은 존박이 없어도 웃겼다. 2013년의 이적이 1995년의 김진표에게 했던 말, “20년 후에 넌 괜찮은 남자로 자라게 된단다. 결혼도 두 번이나 하고”. 이렇게 서로의 치부를 희롱하는 병맛은 둘 사이에 쌓인 역사가 없으면 불가능한 것이다. 이적과 김진표의 대화에서 비유는 절정에 달했다. 둘은 존박을 “청순한 바보”라고 했다가 “남자 메릴린 먼로?”라고 던졌다가 “패멀라 앤더슨 정도”로 정리했다. 이승환이 나왔을 때도 그랬던 것처럼, 진지한 음악적 배경을 가진 뮤지션들이 망가질 때 생기는 웃음은 하나의 개그 패턴이 되었다.
고양이고양, 망극민속촌…
인터넷에서 시작된 병맛 개그, B급 코드는 이제 방송으로 진격했고 다시 인터넷으로 순환한다. 시청이나 경찰청 같은 엄숙한 국가기관의 홍보도 B급 코드를 활용하는 시대다. 고양이를 캐릭터로 내세운 고양시청 트위터는 많은 팔로어를 모았고 화제를 낳았다. 트위터에서는 캐릭터를 활용했고, 페이스북에서는 ‘좋아요’ 8천 개를 돌파하자 고양시장에게 고양이 분장을 시키는 ‘병맛짓’을 감행했다. 더구나 고양이 일러스트와 다양한 만화를 중년의 고양시청 디지털홍보팀장이 직접 연습해 그리는 것으로 알려져 화제를 모았다. ‘감개무량하옵니다’ ‘망극하옵니다’를 연발하는 한국민속촌 트위터 홍보도 B급 코드를 활용한 성공 사례로 꼽힌다. 최근엔 부산경찰청도 가세했다. 바야흐로 B급의 전성시대다.
추신1. 이적, 유희열, 존박… 병맛도 있어 보이는 이들이 해야 진짜 병맛이 나나? 반감을 느끼는 여러분도 있다.
추신2. 에 한 번도 출연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곳에 계셨던 분은? 김동률.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페이크다큐 개척자 박준수 PD 인터뷰
실제인가, 설정인가
박준수 PD는 <uv> 을 연출했다. 한국 페이크다큐의 개척자, 그렇게 부르면 되겠다. 존박의 ‘덜덜이’ 캐릭터는 실제인가 설정인가? 그에게 물었다. 그는 ‘메소드 연기’에 대해 말했다.
-덜덜이는 만들어진 캐릭터인가.
=존박씨의 팬들은 이미 그의 표정에서 허당 같은 모습을 보고 있었다. 팬들이 던지고, 작가들이 잡아내고, 존박씨가 연기했다. 예컨대, ‘냉면성애자’도 평소 존박씨가 냉면을 하루 한 번씩 먹을 만큼 좋아해서 나왔다. 식초나 겨자를 치지 않고 먹는 식성도 그렇다. 이렇게 이미 있는 것에서 출발했으니 완전히 가공된 캐릭터는 아니다.
-그래서 더 정말인가 싶은가.
=웃기는 것 같지만, 페이크다큐 형식이 정말 메소드 연기를 요구한다. 몰입하지 않으면 연기가 되지 않는다. 이적씨도, 존박씨도 정말 자신을 놓더라. 아주 연기력이 좋다.
-은 이전 프로와 설정이 좀 다르다.
=<uv>이나 이 있어 보이지 않는 사람이 있어 보이는 척하는 프로였다면, 의 이적씨는 완전히 있는 사람이다. 이렇게 출발점은 다르지만 결국 말하려는 것은 비슷했다. 다들 속물적인 구석이 있고 솔직히 드러내고 싶을 때도 있지만 세상의 눈치를 보잖나. 그렇게 억압된 우리 안의 욕망을 드러내는 면에서 같았다. 원래 은 유부남 이적의 비애를 드러내는 방식으로 접근했다. 엄친아 이적도 여자를 밝히고 그러는.
-그러니까 반전의 매력이 포인트였나.
=사실 존박씨의 덜덜이는 멍청하다기보다는 멍청할 정도로 사실적인 캐릭터다. 눈치 없이 말해서 진실을 전하는 사람 말이다. 가식이 있거나 머리를 굴리면 그렇게 못한다. 그게 바보처럼 보이는데, 실은 시청자를 속 시원하게 대변한다.
-유희열씨를 주인공으로 프로그램 만들 생각은 없나.
=그가 원하지 않을 거다. 원래 알던 사이인데 그렇게 잘할 줄은 몰랐다. 본인이 연기는 못하겠다고 해서 마음대로 하라고 했다. 그런데 빵 터졌다. 본인은 나중에 대본대로 했다고 말해달라고 하더라. 이적씨는 유희열씨를 두고 ‘입에 뇌가 달렸다’고 하던데. 살리는 것이 상상 이상이었다.
</uv></uv>
</sn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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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4일 한겨레 그림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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