텃밭 가꾸기가 반쪽 시골생활 즐거움의 1순위라면 개와 함께하는 즐거움은 적어도 2~3순위는 될 것이다. 소싯적부터 개가 별로였던 내가 십수 년의 반쪽 시골살이 끝에 확실하게 변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내가 개를 좋아하게 된 게 아니라 개가 나를 애견(愛犬)주의자로 교화시킨 것이다.
연구년 1년을 마치고 돌아온 나를 잊지 않고 너무 좋아 울고 뛰고 뒹굴다가 오줌까지 싼 녀석이 누구던가? 지금은 대학생이 된 막내 푸름이가 초등학교 시절, 통학버스 서는 말랑고개까지 마중 나가 둘이서 나풀대고 장난치며 들길 지나오던 녀석은 누구던가? 눈이 오나 비가 오나 거실 창밖 툇마루에서 코 박고 자며 밤새 텃밭을 고라니로부터, 우리 식구를 불청객으로부터 지켜주는 이 녀석은 누구인가? 내가 출근할 때면 풀이 죽어 대문 아래 땅바닥에 온몸을 축 늘어붙이고 하루 종일 기다리다 13년 된 내 지프차의 엔진음을 알아듣고 꼬리를 헬리콥터 날개처럼 돌리며 귀가하는 나를 마중 나오는 이 녀석은 누구인가? 아내가 밭에 가나 들에 가나 앞서고 뒤서며 지켜주는 이 녀석은 누구인가? 먹고 남은 음식물 접시를 윤이 나도록 핥아 설거지를 도와주고, 외식하다 남은 음식을 반겨 환경보호에 일조하는 이 녀석은 누구인가? 그리고 이 칼럼의 사진에 시도 때도 없이 셀프 모델로 자원봉사 하는 이 녀석은 누구인가? 끝도 없는 애견 예찬의 결론은 간단하다. 나에게 개는 사랑하지 않고는 못 배길 녀석이라기보다는 사랑해주지 않으면 미안한 마음이 들게 나를 교화시킨 녀석이다.
그러나 애견 예찬이라는 동전의 뒷면은 애견 비탄과 애견 불편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애견 비탄의 최고 심연은 10년 넘게 키우던 개를 떠나보낼 때다. 물 받아마실 힘도 없어 처연한 눈으로 주인을 쳐다보면서도 꼬리를 흔들 때, 떠나기 며칠 전부터 키 큰 반송 아래서 하염없이 제 놀던 곳을 굽어볼 때, 그러다가 슬프고 아름다운 눈으로 주인을 보며 온 힘을 짜내 큰 소리로 “커엉” 하고 한 번 짖고 떠날 때, 뒷산 양지바른 곳 녀석들 묻힌 곳의 풀이 유난히 무성함을 보고 떠나보낸 녀석들을 불현듯 상기할 때, 그리고 내 육신 또한 이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고 느낄 때 형용하기 어려운 페이소스를 느끼게 된다. 그러나 너무 센티멘털해질 필요가 없는 것이 개 기르는 만만치 않은 불편함이 우리를 애견 비탄으로부터 구제해주기 때문이다. 아마 다음과 같은 편지라도 써야 할까보다.
얘야, 우리가 말랑고개 넘어가 토종 장닭 물어죽이지 말라고 얼마나 말했더냐! 15만원이나 물어주었단다. 그리고 제발 너보다 약해 보인다고 어린 사람, 늙은 사람 보고 더욱 사납게 짖으면 절대 안 된다. 푸름이가 초등학교 1학년 때, 네가 무서워 도망치던 푸름이 친구를 뒤에서 밀어 우리 부부 손발이 없어진 것 기억하니? 하도 잘못했다고 빌러다녀서 말이다. 그리고 말이야, 너는 왜 오토바이 탄 집배원만 보면 그리도 사납게 쫓아가더냐? 서양에서도 개를 ‘집배원의 악몽’이라고 하니 너만의 일은 아니지만 내가 미안해 어쩔 줄 모르겠구나. 잔소리 나온 김에 몇 가지 더 붙이자꾸나. 제발 고라니 어미 앞에 두고 새끼 고라니 잡지 마라. 어미 소리가 너무 구슬프다. 뱀 잡으면 자랑할 필요 없으니 제발 가져오지 말고 말이야. 우리가 말을 안 해 그렇지 네가 또박또박 1년에 두 차례 대여섯 마리씩 새끼 낳으면 이제는 분양도 정말이지 할 곳이 없더구나.
흰둥아, 하늘아, 들아, 산아, 동동아, 너희들 때문에 어디 여행도 잘 못 다녔지만 그래도 우리는 너희가 있어 행복했다. 그리고 고백하는데 누가 충남 사투리로 나에게 “개 혀?”라고 묻는다면 예전에는 “뭐 그저 그런대로…”라고 했는데 이제는 단호하게 “안 혀!”라고 한단다. 너의 몸만 사랑하다가 몸과 마음을 동시에 사랑하게 되고 이제는 너의 마음만 사랑하게 된 ‘아자씨’가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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