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일요일 의과대학 동창들과 점심 식사를 함께했다. 그중 오랜만에 만난 한 친구는 목에 딱 붙는 연푸른 구슬 목걸이를 하고 있었다. “어머, 계집애 여전히 멋쟁이네. 목걸이 참 예쁘다.” 그 친구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너 몰랐구나. 나 지난해에 갑상선 수술 받았어.” 그러면서 목걸이를 들춰 보이는데 그 아래로 선명한 수술 자국이 나타났다. 나는 미안함과 겸연쩍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그녀는 대학병원 교수로 근무하는 정신과 전문의다. 정기 건강검진을 받던 중 우연히 갑상선 초음파에서 의심스러운 결절을 발견했다고 한다. 다른 정밀검사가 줄지어 이어졌고 갑상선암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그러고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떼어낸 병리조직 검사 결과가 음성, 즉 꽝이었다. 암이 아니었다는 얘기다. 암인 줄 알고 수술을 받았는데 암이 아니었던 것이다. 수술을 집도한 선배 교수도 몹시 당황하고 미안해했지만, 이미 떼어낸 갑상선을 다시 갖다 붙일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이후 그녀는 갑상선호르몬제를 복용하고 있다고 한다. 아마 평생 먹게 될 것이다.
얼마 전 미국 뉴저지에 사는 어느 선배로부터 편지를 받았다. 본업은 내과의사지만, 최근 사진 찍는 취미에 흠뻑 빠져 있었다. 가족과 함께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으로 사진촬영 여행을 다녀왔다고 한다. 그런데 여행 뒤 며칠이 지나 왠지 몸에서 미열이 나는 것 같고 으슬으슬해서 본인이 운영하는 병원에서 흉부 엑스레이 사진을 찍었다. 사진에 작고 희미하지만 의심스러운 음영이 나타났다. 역시 다른 정밀검사를 줄지어 받았고 검사 소견을 여러 전문가들에게 보내 의견을 구했다. 암일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를 들었고, 고민 끝에 폐조직을 떼어내는 수술을 받았다. 수술 날짜를 잡아놓고는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다. 이대로 수술대 위에서 죽을 수 있다는 상상도 했다. 인생을 되돌아보았고 가족의 소중함이 더욱 사무쳤다고 한다. 그러나 수술을 앞두고 고민했던 것과 달리, 너무나 싱겁게도, 수술 결과는 꽝이 나왔다. 다행히 헛소동으로 마무리된 것이다.
어느 예방의학과 교수는 최근 협심증 증세를 경험했다. 심장 분야 전문의인 친구 교수에게 조언을 구했더니, 당장 와서 관상동맥 조영술을 받으라는 얘기를 들었다. 그는 선뜻 결정을 못한 채 고민에 빠졌다. ‘조영술을 하면 어딘가 좁아지거나 막힌 혈관이 나올 거야. 그러면 심장전문의는 스텐트를 넣어서 넓혀놓겠지? 그러면 평생 약을 먹어야 하고 언제 닥칠지 모르는 스텐트의 잠재적 부작용을 시한폭탄처럼 안고 살아야 하겠지?’ 그는 자신이 그 정도로 아픈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검사를 받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식이요법과 운동을 시작했다. 그로부터 몇 달이 지난 지금, 그는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라며 즐거워한다.
의사들도 고민한다. 의료행위가 양날의 칼과 같음을 잘 알면서도 속수무책으로 당하기도 하고, 요령껏 피해가기도 한다. 정답은 없다. 의사가 이 지경이면 다른 사람들은 오죽하겠는가? 검찰청 사람들 이야기를 소재로 한 어느 드라마를 보니 이런 대사가 나온다. “죄를 잘 찾아내는 검사는 그냥 넘어가도 좋을 죄까지 뒤져서 멀쩡한 사람을 범죄자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하지.” 병을 잘 찾아내는 의사는 그냥 넘어가도 괜찮았을 병까지 찾아내 멀쩡한 사람을 환자로 만들어내는 것도 잘하는가? 뒤지면 뒤질수록 찾으면 찾을수록 나오게 마련이다.
‘건강염려증’을 지나 ‘건강강박증’적 피로사회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초정밀검사 결과 앞에서 무너져내리기 일쑤다. 한번 시작된 치료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늘어난다. 우리가 원시인이 아닌 이상 현대 문명의 이기를 잘 이용해야 하겠지만, 과용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되겠다. 의료계와 사회 모두의 지혜가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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