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몸과 마음은 과거를 통과해 만들어졌지만, 시선은 미래를 향해 열려 있다. 흘러가버린 것과 다가오는 것 사이에 지금이 끼어 있다. 다가오는 것은 우릴 흥분시킨다, 기대하게 한다, 불안하게 한다. 그 세계는 과연 멋질까, 끔찍할까.
다가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일찌감치 예고한 책이 부지기수지만, 손꼽히는 걸 고르라면 적지 않은 이가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와 조지 오웰의 ‘1984’를 꼽을 것이다. 두 책이 그리는 미래는 일단 닮았다. 그리고 다르다. 무척이나 이상적인 미래세계가 어찌하여 무척이나 이상할 수밖에 없는지, 물음표를 던진다.
1932년에 태어난 ‘멋진 신세계’는 과학문명이 극도로 발달해 사람은 그저 관리만 받으면 되는 이상세계를 담고 있다. 한마디로 ‘이 편한 세상’이다. 부모가 누구인지도 모르는 아이들이 인공수정으로 태어나 적재적소의 훌륭한 일꾼으로 자란다. 모두가 부모 자식을 모른다면, 우리가 무겁게 짊어질 수밖에 없었던 책임의 짐은 얼마나 가벼워지겠는가. 고민과 불안이 필요 없는 홀가분한 사회에서 모두가 자발적으로 멋진 신세계를 즐긴다. 하지만.
1949년에 태어난 ‘1984’는 집필 시점에서 먼 미래라기보다는 가까운 미래를 담았다. 이곳 사람들 역시 고민과 불안이 필요 없는 홀가분한 사회에 산다. 빅브러더와 당이 모든 것을 관리하기 때문이다. 다만 관리는 억압과 금지의 원칙을 따른다. 무오류의 큰형님과 당에 권력은 그 자체로 목적이 된다. 사상을 통제하기 위해 언어는 간소하게 쪼그라들고, 일상적인 전쟁준비태세는 지배 수단이 된다. 모든 것이 통제되고, 빈틈없이 안정적이다. 그러나.
두 사람의 미래예측 중 무엇이 적중하고 있을까. 둘 중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다는 식의 흥미로운 논쟁은 책에도 담겼고, 인터넷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누구 손을 들어야 할지 나는 모르겠다. 그런 유토피아를 꿈꾸는 권력자는 늘 현재진행형이었고, 그것이 디스토피아임을 깨달은 이들에 의해 간신히 저지되곤 했다는 사실을 알 뿐이다. 2024년 겨울, 윤석열이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쓴 ‘유토피아를 향한 포고문’을 디스토피아로 읽은 우리가 있지 않은가.
두 작가의 닮은 점이 또 있다. 동물이 지배하는 세계를 그렸다. 여기서 동물은 그저 동물만이 아니라, 사람 그 자신이다. 오웰은 ‘동물농장’을 통해 독재의 오작동과 부패를 그렸다. 헉슬리는 ‘원숭이와 본질’을 통해 제3차 세계대전 이후의 뒤바뀐 세상을 그렸다. 책 속에서 원숭이들은 저명한 인간과학자들을 고문해 생화학무기와 핵폭탄을 만들어 끝내 절멸의 전쟁을 일으킨다. 인간이란 무엇인가. “개를 애지중지하면서도 다하우(유대인을 학살한 강제수용소)를 건설하고, 온 도시를 포격하면서도 고아를 사랑하고, 린치에 항거하면서도 오크리지(최초로 원자폭탄을 제조한 도시)를 찬성하는” “보잘것없고 덧없는 권력은 몸에 걸치고도, 당연한 상식에는 무지한” 존재일 뿐이다. 책을 다시 읽는데 왜 자꾸 윤씨 무리가 떠올랐을까. 그러고도 “행복했다”니.
노순택 사진사
*노순택의 풍경동물: 어릴 적부터 동물 보는 걸 좋아했습니다. 동물을 키우려고 부모님 속을 썩인 적도 많았지요. 책임의 무게를 알고부터 키우는 건 멀리했습니다. 대신 동물책을 많이 읽었지요. 시골로 내려와 살기 시작하면서 개와 닭과 제가 한 마당에서 놉니다. 작업을 위해서, 또는 다른 일로 국내외 여러 곳을 오갈 때면 자주 동물원에 들릅니다. 편안한 마음과 불편한 마음이, 마치 거울을 보는 것처럼 스며들거든요. (격주로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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