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 형제의 (Aschenputtel)는 우리에게 프랑스 문필가 샤를 페로 버전의 로 더 잘 알 려져 있다. 샤를 페로는 그림 형제보다 100년 앞서 유럽 에 전승되는 민담을 수집해 책으로 펴냈다. 페로의 책에 실린 이야기는 그림 형제의 와 마 찬가지로 계모와 의붓자매에게 괴롭힘을 당하면서도 착 하고 성실하게 살던 한 소녀가 무도회에서 왕자를 만나 행복한 신부가 된다는 내용이다.
<font size="3">‘상드리용’이 ‘신데렐라’로</font>
그렇다면 ‘재투성이’는 어떻게 ‘신데렐라’가 되었을까? 프랑스어로 재투성이라는 뜻의 ‘상드리용’(Cendrillon)이 영어로 옮겨지면서 ‘신데렐라’(Cinderella)가 되었다는 해 석이 유력하다.
한편, 동화 속 재투성이는 계모와 의붓자매들의 박해 를 받으면서도 기꺼이 자신에게 주어진 일을 감수하며 결코 화를 내거나 다투지 않는다. 이 정도로 자신의 감 정을 드러내지 않는 것은 심리학적으로 건강한 상태인 걸까? 재투성이는 왜 이런 성격을 지니게 되었을까?
독일의 신학자이자 심리학자인 오이겐 드레버만은 (교양인 펴냄)에서 재투 성이에 대해 다음과 같은 심리학적 분석을 내린다. “자신 의 가장 중요한 보호자인 어머니의 죽음은 아이의 마음 에 지울 수 없는 ‘불안’을 드리운다. …여기에 계모와 의 붓자매의 구박과 모욕이 더해지면서 아이는 자기가 존재 하는 것 자체가 진정 죄이며, 그 죄를 갚으려면 다른 사 람의 요구에 맞추어 살아야 한다는 것을 배운다. 타인에 게 부담이 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절대로 자신의 감정 을 드러내지 않고 남을 위해 살아가는 재투성이는 이렇 게 태어난다. 현실 세계에서도 이러한 재투성이를 얼마 든지 만날 수 있다.”
심층심리학적 동화 읽기의 대가인 오이겐 드레버만 은 19세기 독일의 그림 형제가 옛이야기들을 수집해 엮 은 에서 우리의 삶과 성격을 결정짓는 정신의 원형적 체험을 발견한다. 환영받지 못한 아이로서 굴욕의 잿더미 속에 살면서도 결코 긍지를 잃지 않는 재투성이, 나르시시스트 아버지로 인해 가시 울타리에 갇혀 스스로 성장을 멈춘 가시장미 공주, 어머니를 마녀로 바꾼 라푼 첼의 가족 로맨스, 자식의 삶을 조종하려는 아버지와 자 기 자신을 잃어버린 ‘영리한’ 엘제까지. 책은 어린 시절 부 모와의 관계에서 비롯된 부정적 감정의 감옥에서 벗어나, 절망에서 자유로 도약하는 여자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font size="3">심리 문제에 관한 경이로운 기록</font>
우리는 왜 여전히 백설공주나 가시장미 공주(잠자는 숲 속의 미녀) 이야기에 매혹되는 걸까? 계모 밑에서 자 란 것도 아닌데 자신을 재투성이(신데렐라) 같다고 느끼 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 책은 저자가 심리상담을 하면서 만난 살아 있는 동화 속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함께 실어 동화를 환상이 아닌 현실로 읽게 한다. 겉으로는 늘 명 랑하고 다투는 일도 없이 잘 적응하는 듯 보이지만 속으 로는 항상 뼈저린 고독과 슬픔을 느끼는 여성에게서 ‘재 투성이’를 보고, 자식을 위해 희생한 어머니와 그런 어머 니를 돌보며 독립은 꿈도 꾸지 못한 채 늙어가는 딸에게 서 ‘라푼첼’의 모습을 발견하는 식이다.
그러니 알겠다. 불안과 금기와 구원의 상징으로 가득 한 그림 동화야말로 인간의 운명을 가르는 근원적인 심 리 문제에 관한 경이로운 성찰의 기록이라는 것을.
오승훈 기자 vino@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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