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가 된 집회.’ ‘케이(K)팝 콘서트장 같은 집회.’ 내란죄 피의자인 대통령 윤석열의 비상계엄 선포 이후 서울 여의도 국회 앞을 비롯해 전국에서 열린 ‘윤석열 탄핵’ 촉구 집회 수식어들이다. 이처럼 집회가 축제가 될 수 있고, 축제가 사회 변화를 촉구하는 집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옛날부터 증명한 동료 시민들이 우리 곁에 있다. 성소수자 시민들이다.
2000년 시작한 퀴어문화축제는 축제가 운동이 될 수 있음을 일찌감치 보여줬다.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처음으로 대통령실 앞을 행진하는 집회를 연 주인공도 성소수자 시민들이다.(2022년 5월17일 ‘국제 성소수자 혐오 반대의 날’ 공동행동 행진) 성소수자 시민들은 늘 광장에 있었고, 일정한 대오를 갖춘 사람들이 팔뚝질하며 ‘투쟁’을 외치는 남성 중심 집회와는 다른 새로운 집회의 장을 만들어왔다. 그 현장에 무지개 깃발을 들고 늘 함께한 박한희(변호사)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 집행위원과 2024년 12월18일 이야기를 나눴다.
―성소수자 단체들이 12월13일 시국선언을 통해 ‘민주주의와 인권의 가치를 짓밟은 내란수괴 윤석열은 즉각 퇴진하라’고 외쳤다.
“대선 후보 시절 ‘여성가족부 폐지’와 같은 안티페미니즘을 내밀며 남성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은 윤석열 대통령은 집권 뒤에도 성평등 실현에 아무런 관심이 없었다. 인권을 아예 무시했다. 여성, 성소수자, 장애인 등 소수자를 전혀 대화 상대로 인정하지 않았다. 차별금지법 제정을 국회에 권고한 국가인권위원회의 위원장 자리에 차별금지법 제정을 반대하고 ‘동성애 반대’라는 혐오표현을 표현의 자유로 인정해야 한다는 인물(안창호)을 임명했다. 또 (인권 보호 강화를 목표로 하는 범국가적 종합계획인) 제4차 국가인권정책기본계획(2023~2027년)에서, 그리고 (교육부가 2022년 12월 확정·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에서 ‘성소수자’ 용어를 아예 빼버렸다. 성소수자를 ‘존재하지 않는 사람’으로 보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가 성소수자 존재를 부정하고 성평등 정책을 무력화한 일은 윤석열 정부 집권 전부터 우리 정치권이 오랫동안 방치한 차별과 혐오가 누적된 결과라는 지적도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도 대선 후보 시절 ‘동성애에 반대한다’고 말했다. 또 대통령 당선 이후 차별금지법 제정이 ‘우리가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2021년 11월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 기념식 축사)라고 말하면서도 임기를 마칠 때까지 차별금지법 제정을 위해 노력하지 않았다. (박근혜 정부 집권기였던) 2015년 유엔 자유권규약위원회는 한국에 ‘당사국은 혐오표현 또는 폭력을 포함하여, 성적지향 또는 성별 정체성에 근거한 모든 형태의 사회적 낙인과 차별을 용인하지 않는다는 것을 명시적, 공식적으로 표명해야 한다’고 권고했지만, 이 권고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지켜지지 않았고 지금까지 지켜진 적이 없다. 보수 개신교 세력의 성소수자 혐오에도 단호하게 대처하지 않았다.”
―윤석열 탄핵 이후의 사회는 어떤 사회여야 할까.
“시민들은 과거 ‘저항으로서의 민주주의’를 넘어 다양성을 존중하는 ‘소통의 민주주의’를 지향하고 있다. 성소수자 시민을 비롯해 여러 동료 시민이 함께 만든 민주주의다. 지금은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로 박살 날 뻔했던 민주주의를 다시 회복하는 과정인데, 이 회복하는 과정에서 다시 주류의 목소리, 권력을 가진 다수의 목소리만 대변하는 민주주의로 회귀하면 안 된다. 그걸 민주주의 회복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기만이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주거, 보건의료, 고용, 교육, 금융, 교통, 행정·사법절차 등 모든 생활 영역에서의 차별을 금지하는 차별금지법 제정이 필요하다. (노무현 정부가 2007년 12월 차별금지법안을 제안한 이래로) 무려 17년이 지났다. 우선적인 해결 과제가 돼야 한다.”
―한겨레21에 바라는 점이 있다면.
“광장에 나온 다양한 사람들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중요한 역할을 해줘서 감사하다. 앞으로도 다양성이 존중되는 민주주의를 위해 늘 함께했으면 좋겠다.”
오세진 기자 5sji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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