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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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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학교가 이래?

경쟁과 폭력이 점령한 오늘의 학교를 응시하는 드라마 <학교 2013>, 작가가 기간제 교사로 일해 리얼리티 살리고, 교사·학부모에도 주목해
등록 2013-01-25 21:11 수정 2020-05-03 04:27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아이들에게 문학 시간에 시 한 편이라도 더 읽기 바라던, 가장 기본적인 요구를 하던 선생님은 ‘수능형 학습’이라는 이상하고도 높은 벽에 부닥쳐 결국 학교를 떠나기로 마음먹는다. 마지막 야간 자율학습 시간을 지키며 아이들에게 고하는 인사는 도종환의 시 ‘흔들리며 피는 꽃’이었다. KBS 드라마 은 이들, 흔들리며 피어나는 꽃들에 대한 이야기다.

KBS 제공

KBS 제공

“아이들은 감추고, 어른들은 모르는 곳”

서울 시내 178개 고등학교 중 학력고사 149등 하는 승리고등학교, 학교 기강이 무너져 지역사회의 항의와 민원이 끊이지 않는다. 여기에 강남에서 명성을 날리던 교장이 부임하고 ‘주폭과의 전쟁’을 외치듯 성적 향상, 교내 규율 강화를 엄포한다. 신흥 명문고의 명성을 얻으려고 학교는 아이들을 몰아세운다. 이 과정에서 학교는 대학 진학이라는 맹목적인 목표를 말하지만 설득력이 없고, 낙오하는 아이들이 없는지 되돌아보는 배려도 없다. 학교가 ‘감옥 같다’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무엇 때문에 공부가 싫은지, 당장에 수업을 따라가기 어려운 아이들이 어디서부터 꼬인 실을 풀어야 하는지, 하물며 공부를 잘하던 아이가 왜 갑자기 수업 시간에 주춤대는지 따위를 학교는 들여다보지 않는다. 무언가 무너졌다고 생각하면서도 바탕을 다시 다지기에는 시간이 없으므로 학교는 구멍을 메꾸듯 강남 스타 강사 출신 강세찬(최다니엘)을 기간제 교사로 임용한다. 시를 여러 번 곱씹는 수업 대신 문학작품의 한 토막 지문을 읽고 답 찾는 연습을 하는 수업을 선생님에게 요구한다. 학부모는 아이들의 말 한마디, 눈빛 하나에도 예민하게 반응하며 변화를 살피려는 선생님 정인재(장나라)보다 수능 점수를 올려줄 수 있는 강세찬의 말을 더 신뢰한다. 아이들은 꿈이 무엇이냐고 묻는 수업과 진학하고 싶은 대학에 가고 싶은 이유를 논리적으로 쓰라고 하는 수업 사이에서 자기들이 진짜 원하는 것이 배움인지 진학인지 헷갈려 한다. “아이들은 감추고, 어른들은 모르는, 이곳은 바로 학교다.”

KBS 드라마 의 다섯 번째 시리즈, 은 제목 뒤에 시리즈 넘버를 붙이는 대신 ‘2013’이라는 숫자를 택했다. 지금, 우리 학교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가장 세밀하게 들여다보고 말하겠다는 목표를 제목에서부터 드러낸 것이다. 의 한 관계자는 1월17일 과의 통화에서 “지금 학교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현실적으로 담았다”고 말했다. 3명의 작가진 중 1명이 서울 마포구의 한 고등학교에서 기간제 교사로 4개월간 일하며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대사를 살리고,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일하는 선생님 3명이 내용을 감수했다. 제작진 또한 일선 학교를 돌아다니며 학교의 일상을 들여다봤단다. “지금 우리가 드라마에서 그리고 있는 내용은 모두 과장이 아니다. 사전 취재에서 돌아본 학교에서 대부분의 아이들이 수업 시간에 자고 있었다. 처음 본 교실에서는 6명이 깨어 있었는데, 그중 2명은 거울을 보며 머리를 다듬고 있었다. 일반 인문계 고등학교의 이야기다. 처음 봤을 때는 충격이었는데, 계속해서 그런 교실이 이어졌다. 아이들이 새벽 2시까지 학원에 다니며 선행학습을 해오고 학교에서 모자란 잠을 보충한다는 것을 선생님들도 알고 있었다. 살아남지 못하는 것에 대한 아이들의 공포가 대단했다.” 제작진의 말이다.

‘학교 2013‘은 무너진 교실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가 각자 짊어진 무게에 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 제작진은 이들의 어깨에 짐을 지운 것은 ‘학교 밖 사회 시스템’이라고 했다. KBS 제공

‘학교 2013‘은 무너진 교실에서 학생, 교사, 학부모가 각자 짊어진 무게에 대해 이야기한다. 드라마 제작진은 이들의 어깨에 짐을 지운 것은 ‘학교 밖 사회 시스템’이라고 했다. KBS 제공

10대 청소년, 40대 부모가 본다

등장인물들의 캐릭터도 현실에서 많이 따왔다. ‘경기도 일짱’ 출신임을 숨기며 조용히 졸업하려는 유급생 고남순 캐릭터의 실제 인물은 중학교 때 본드를 불던 일진이었는데 선생님의 권유로 반장을 맡아 학교 생활에 적응해 현재는 대학에 진학했단다. 친구들 몰래 학원에 다니며 공부 비법을 숨기고, 명문대 출신 가족들에게 콤플렉스를 느끼는 모범생 송하경은 예나 지금이나 현존하는 캐릭터다. 박흥수 또한 ‘쇼핑’을 하듯 여러 고등학교를 전전하다 지금은 졸업을 목표로 한 학교를 다니고 있는 아이를 모델로 했단다.

바로 옆에서 벌어지는 일들, 오늘도 학교에서 만났던 캐릭터들이 화면 속에서 움직이니 이 드라마의 가장 열렬한 시청자는 10대들이다. 닐슨코리아가 제공한 연령대별 시청률 분석을 보면, 다른 연령층에 비해 10대 남녀의 시청률이 높다. 1월15일 방송된 13회에서 10대 남성의 시청률은 12.8%. 10대 여성의 시청률은 19.3%를 기록했다. 1회 때 10대 남성 2.4%, 10대 여성 4.2%에서 출발해 점차 시청률이 증가한 양상이다. 한편 40대 여성층의 시청률은 13회 방송에서 14.3%를 찍었다. 학교 현장에 관심이 많은 학부모와 아이들이 같이 보는 드라마란 방증일 테다.

이것은 관계에 대한 드라마다

그러나 어른들이 아이들이 처한 현실을 들여다보려고 을 보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이전 시리즈가 학생들에게 초점을 맞췄다면, 은 학생·교사·학부모에게 비슷한 무게를 배분했다. 강퍅한 학교 현실에 상처 입는 존재가 학생만은 아님을, 그리고 어른들이 질타하는 학교 문제가 학생에게서만 비롯한 게 아님을 이야기한다. 전교 2등이지만 ‘헬리콥터맘’인 엄마의 만족을 언제나 다 채우지 못하는 민기(최창엽)는 “날 때부터 스무 살이면 좋겠어요. 어차피 그 전까진 없는 인생이니까”라고 말했다. 교사 정인재는 “이게 현실인 것 같아요. 다들 애쓰고 애쓰지만 많은 선생님들이 처음에 되고 싶었던 선생이 될 수 없는 거. 될 수 없다면 다음엔 어떻게 해야 하나, 그게 안 보여요”라고 말했다. 학교에서 권력을 행사하고 시험 문제 유출도 마다 않던 민기 엄마(김나운)는 아이를 몰아세우다 못해 학교 옥상 끝 벼랑에 서게 하고서야 몰래 울음을 터트린다. TV평론가 윤이나씨는 “각자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 학교나 성적을 넘어 친구들과의 관계, 세상에 대한 압박 같은 것들에 대해 이야기하는 드라마, 낭만이 사라진 교실을 그린 드라마”라고 했다.

사라진 낭만의 틈을 비집고 들어온 것은 폭력의 일상화다. 극심한 학교폭력 문제를 영상으로 풀어보자는 데서 이야기가 출발했다고 밝힌 의 관계자는 아이들이 경쟁의 순간에 직면하게 되면 얼마나 치열해지는지를 현장에서 목격했다. “시험 기간에 공부 잘하는 아이의 사물함에 든 책에 물을 쏟아부어서 못 쓰게 만들었던 에피소드 등은 실제로 있었던 이야기다.” 자신의 성적을 높이려고, 누군가에게 인정받으려고 아이들은 신체·언어적 폭력을 무차별로 행사한다. 그리고 이들의 상처를 모른 척하거나, 학벌주의에 목매며 아픈 곳을 헤집는 어른들 또한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폭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SBS 스페셜‘ ‘학교의 눈물-일진과 빵셔틀’ 편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던 김영식(가명)씨가 자퇴서를 내고 학교를 나서고 있다. 학교는 평범한 아이가 순식간에 가해자가 된 배경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SBS 제공

‘SBS 스페셜‘ ‘학교의 눈물-일진과 빵셔틀’ 편에서 학교폭력의 가해자였던 김영식(가명)씨가 자퇴서를 내고 학교를 나서고 있다. 학교는 평범한 아이가 순식간에 가해자가 된 배경을 궁금해하지 않았다. SBS 제공

사회가 만든 악, 학교폭력

드라마 밖 현실의 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의 이야기에도 귀기울여볼 만하다. 이 지금 교실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핍진하게 담은 가상의 이야기라면, ‘학교의 눈물-일진과 빵셔틀’ 편은 경쟁의 압박과 외로움에 시달리는 아이들에게서 나타난 병증으로 학교폭력을 말한다. 아이들은 학교에 대해 “창틀에 갇혀 있는 느낌” “어쩔 수 없이 들러야 하는 곳” “있는 것 자체가 지옥” “인생의 갈림길”이라고 말했다. 총 3부작으로 나눠 학교폭력 문제를 들여다보는 다큐는 가정환경이 건강하고, 성적이 좋고, 생활기록부상에 별다른 문제 사항이 발견되지 않는 아이들, 이른바 평범한 아이들이 친구를 감금·폭행하거나 장기적으로 돈을 뺏는 등 폭력의 가해자로 나섰다는 데 주목했다. 창원지법 소년부 천종호 판사는 이렇게 말했다. “어른들 문화가 학교 내에서 그대로 드러나고 있어요. 서열, 세력, 권력… 학교폭력 문제의 1차적 책임은 아이들이 아니라고 봅니다. 우리 사회가 만들어낸 것이기 때문에 그 해결도 우리 사회가 짊어져야 한다고 생각하거든요.”
학교라는 울타리를 무너트리고 밀려 들어온 현실에 우리 모두는 이렇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나 희망이 있다면 그것은 다시, 낭만일 것이다. ‘젖으며, 흔들리며 줄기를 세우고, 따뜻한 꽃잎을 피운다’는 내용의 시를 들으며 흔들리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언젠가는 이 불안한 시스템이 무너지리라는 걸 시청자는 눈치챘을 것이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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