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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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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마주한 내 안의 공포

의식 또렷했던 최면의 순간
등록 2012-12-21 19:21 수정 2020-05-03 04:27
영화 에서 주인공 톰 위스키(케빈 베이컨)는 한 파티에서 처제에게 최면에 걸린 뒤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뜬다. 한겨레 자료

영화 에서 주인공 톰 위스키(케빈 베이컨)는 한 파티에서 처제에게 최면에 걸린 뒤 보통 사람이 볼 수 없는 또 다른 세계에 눈을 뜬다. 한겨레 자료

“아버지가 집에 돌아오지 않아요.” 쉴 새 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동시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취재원 앞에서 이게 웬 추태인가. 30년도 더 지난 일을 두고 나는 왜 이제 와서 울고불고하는가. 발끝은 어떻게든 현재를 버티려는데 의사는 자꾸 나를 아버지를 막 잃었던 6살, 그때의 어린아이에게로 데려갔다. “죽음이 뭔지 알아요? 그 아이가 이해합니까? 그 아이는 어디로 가고 있나요?” 오랫동안 잊고 있던 광경이 떠올랐다. 장례식 도중 너무 울어서 작은어머니가 어린 나를 끌어안고 어디론가 데려갔다. 그때의 막막함과 공포, 불안이 이제 아버지의 나이에 가까워지는 어른을 덮쳤다. “그 아이의 마음은 어떤가요? 어떻게 견뎌내나요?” 의사의 질문은 가차 없었다. 도망칠 곳이 없었다. 털어놓는 수밖에. “무서웠어요. 엄마도 어디론가 갈까봐 무서웠어요.” 그리고, “부끄러웠어요.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불쌍하게 생각해요”.  

이곳은 신경정신과 의사 김영우 박사의 최면실이다. 최면에 걸리면 이런저런 계산이 없을 줄 알았다. 깜박이는 촛불을 바라보다 무의식 상태에서 지껄이게 될 줄 알았다. 그러나 눈을 뜰 수 없을 뿐 의식은 또렷했다. 내가 다른 사람과 나누고 싶지 않았던 응축된 감정과 기억을 자꾸 말하게 된다는 것 빼고는. 애초 어떤 종류의 신비 체험을 기대했던 나는 자꾸만 이곳에서 나가고 싶어진다.

최면에 들어가기 전 김영우 박사와 간단한 실험을 해봤다. 김 박사는 “눈을 감아보라”고 주문하더니 이렇게 말했다. “마음속으로 ‘눈꺼풀이 붙었어, 서로 떨어지지 않아’라고 생각합니다. 이제 눈을 뜨려고 해봐요.” 갑자기 살아난 무의식은 힘이 셌다. 눈을 뜰 수가 없었다. 김영우 박사는 이를 ‘무의식 1%의 힘’이라고 불렀다. 무의식에 51%의 지배력만 허락한다면 의식은 물론 우리 육체까지 통제한다는 것이다. 의사의 주문이 계속된다. “그 아이가 자라며 상처가 됐던 또 다른 기억이 나올 거예요. 이제 무슨 일이 생각나나 보세요.”

“오빠도 집에 돌아오지 않아요.” 이번엔 나도 놀랐다. 1986년 무렵의 일이었을 것이다. 수배 중인 두 오빠는 나란히 집에 들어오지 않았고 경찰들이 들이닥쳤다. 빨치산으로 사라진 큰아버지 귀신이 씌었다는 집안 어른들의 말이 무성했다. “그 아이는 무엇을 했어요?” 돌이켜보면 아이에게 기독교적 신비 체험이 시작된 것도 그 무렵이었다. “아무도 없어요. 엄마는 저만 보면 울어요. 저는 어쩔 줄을 몰라요.” 장했던 어머니는 자식을 둘이나 잘못 키운 무능한 실패자로 전락했고, 엄마와 자식들 간의 끈질긴 불화가 시작되었다. 이제 나는 왜 내가 자다 말고 아이의 코에 귀를 대보는지, 질긴 가족 관계를 끊을 궁리만 하는지, 늘 어떤 종류의 신념에 매달려야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최면으로 내가 마주친 것은 전생도 다른 인격도 아닌 가족 상실이라는 오래된 공포였다.

“이제 6살짜리 꼬마한테 갑니다 그때의 막막한 현실로 갑니다.” 의사는 다시 나를 6살의 자신에게로 데려간다. “그때의 자신에게 환하고 밝고 건강한 기운을 보내세요. 그 아이의 몸속이 깨끗하고 밝아지며 편안해지는 것을 상상합니다. 내가 그 아이를 보호하고 괴로움을 달래세요.” 난처하기 이를 데 없는 주문이다. 일과 가족관계에 대한 부담이 얽혀서 긴장과 피로와 분노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지쳐 있는 나는 한 달쯤 전부터 분석적 상담치료를 받아왔다. 자신을 달랠 방법을 안다면 상담을 받을 리 없지 않은가. 자유연상법으로 진행되는 정신분석에서 내담자는 떠오르는 장면을 이야기하고 그 이야기 속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경험을 한다. 이때의 대화가 평이하거나 논리적이라면 최면에서는 논리가 개입할 틈을 주지 않는다. 김영우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누구나 약하고 아팠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을 싫어한다. 의식과 이성의 저항이라는 두 개의 벽을 넘는 것은 정신치료의 공통 목표지만, 최면은 환자의 많은 말과 저항과 자기 합리화를 듣는 대신 무의식으로 바로 접근하는 방법이다. 이 치료에는 시간과 공간의 구별이 없다. 타임머신을 타고 돌아가 그때의 어린아이의 정서와 느낌에 지금의 자신이 직접 접속한다.” 환자가 과거에 ‘접속’했을 때, 최면시술자는 현재의 내가 과거의 자신에게 좋은 기운을 전달하는 장면을 상상하도록 계속 유도한다.

자기애와 자존감을 성장 과정에서 채우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그것을 해 보일 수 있을까. 최면을 끝내려며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 지금 내가 6살 딸아이를 안고 달래듯 6살 자신을 애지중지하는 것. 사형제 중 누구 하나 굶어죽거나 고아원에 가지 않고 무사히 어른이 되리라는 사실을 그때의 내가 알았더라면. 나는 과거로 그 이야기를 실어보냈다.

관계 상실로 인한 트라우마는 정신분석에서도 주요하게 다루는 주제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6살이던 내가, 내 딸이 6살이 되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10월에 상담을 시작한 것은 우연이었을까. 적어도 6살 딸이 없었더라면 최면에서 마주친 6살의 자신을 달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정신분석에서 많은 사람들이 자기 안의 울고 있는 어린아이를 발견한다. 그 아이를 달래고 사랑하게 되며 치료를 끝맺는 이가 많다. 내 기억 속 6살의 온도는 한결 올라갔다. 그러나 최면에서 시간을 건너뛰어 초등학생 때로 갔을 때는 나는 그 아이를 달래거나 그때의 엄마를 위로하기를 거부했다. 김 박사는 “최면은 혼자서도 할 수 있고 시시때때로 할 수 있다. 앞으로도 계속 그때의 아이와 엄마에게 건강한 에너지를 보내기를 시도해보라”며 최면을 마쳤다.

정신분석 경험을 토대로 한 내 사례는 특정한 영적 신념을 가졌거나 심각한 정신장애를 앓고 있는 사람들과는 다를 수 있음을 밝혀둔다.

남은주 기자 mifoco@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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