텔레비전에선 너무나 웃기는 개그맨들이 실제 만나보면 조용한 사람이 많은 것처럼 만화가들도 자기 작품과는 전혀 다른 성격인 경우가 많다. 로 유명한 일본 만화의 거장 나가이 고(66)도 그렇다.
의 작가 데즈카 오사무가 일본 만화의 모범적인 주류의 틀을 만들었다면, 나가이 고는 삐딱하고 비주류적인 만화의 전형을 세운 만화가다. 그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대표작은 보다도 어둡고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과 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이 얼마나 사악한지 거침없는 폭력 묘사로 보여주는 현대의 고전들이다(도 원작 단행본 만화는 애니메이션보다 훨씬 기괴하고 어둡다).
하지만 나가이 고는 직접 만나보면 과연 폭력적인 만화를 그린 사람이 맞나 의심스러울 정도로 조용하고 부드럽다. 그는 자신이 독특하고 유별난 작품들을 그리는 것은 “남들이 이미 한 것이 아닌, 세상에 없는 이야기를 추구하기 때문”이라고 2007년 와의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물론 이 온화한 작가의 가슴속에는 만화에 관한 한 타협을 모르는 지독한 저항 정신이 넘쳐흐른다. 그의 출세작 은 만화의 저항 정신을 보여준 유명한 일화를 남겼다.
은 1968년 창간한 가 최고의 만화잡지로 급부상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인기 만화다. 명랑만화였지만 제목처럼 염치와 규율이라곤 없는 엽기적 학교를 무대로 기성세대의 기만과 위선을 비웃고 까부순 만화였다. 남자 교사는 반쯤 벌거벗고 호랑이 가죽을 입고 다니며 기합을 일삼고, 학생들은 교사들을 골탕 먹이는 것이 줄거리였다. 교육·학부모 단체들은 분노했고 독자들은 열광했다.
그러다가 이 만화는 큰 사회적 논란을 일으킨다. 1969년 일본에선 메릴린 먼로의 치마가 올라가는 영화 장면을 본뜬 광고가 크게 유행했는데, 나가이고는 여기에서 착안해 만화에 여학생 치마를 들추는 장면을 집어넣었다. 이후 일본 전국 학교에서 치마 들추기 놀이가 유행하자 이 아이들을 망친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리고 내용이 자극적인 만화에 대한 당국의 규제와 압박으로 사태가 번져나갔다.
그러자 나가이 고는 오히려 더욱 극단적인 내용으로 저항했다. 만화 1부 마지막을 충격적인 결말로 마무리지은 것이다. 극중에서 갑자기 정부가 이 불량한 학교를 없애려고 군대를 동원해 진압에 나서고, 학생들은 이에 맞서 무기를 들고 싸우다가 전원이 죽어버리는 것으로 끝내버렸다. 세계 만화 역사상 작가가 사회적 압박에 가장 충격적으로 맞받아친 사건일 것이다.
반향은 컸다. 표현의 자유를 외치던 다른 만화가들도 만화를 더 야하고 폭력적으로 그리며 나가이 고의 행동에 동조했다. 몇몇 작품이 판매 금지를 당했지만 결국 만화에 대한 사회적 압력은 유야무야되면서 지나갔다.
지금의 일본 만화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자유롭게 별의별 내용을 그릴 수 있는 데는 의 역할이 컸다. 은 만화는 저항으로 성장해나간다는 것을 온몸으로 입증한 너무나 나가이 고다운 만화였다.
참, 국내에 나와 있는 은 다른 일본 만화가가 내용을 바꿔 리메이크한 만화다. 아직은 이 유명한 만화를 우리말 번역본으론 볼 수가 없다.
구본준 기자 문화부한겨레21 인기기사
한겨레 인기기사
[현장] “변명도 않는 뻔뻔함에 분노”…‘김건희 특검’ 시민들 나섰다
윤 ‘공천 개입’ 육성에 ‘문재인 시절’ 꺼낸 정진석…야 “하야 건의하라”
구급대원, 주검 옮기다 오열…“맙소사, 내 어머니가 분명해요”
교수 사회, ‘윤 대통령, 공천개입 의혹’으로 시국선언 잇따라
나는 ‘치매’다…그래도 “동창회 가야죠, 여행도 가고 싶고”
“보이저, 일어나!”…동면하던 ‘보이저 1호’ 43년 만에 깨웠다
윤석열판 ‘태블릿PC’ 나왔다, 검찰로 틀어막을 수 있겠나 [논썰]
‘봉지 커피’라서 만만한가…동서식품, 커피 제품 가격 8.9% 인상
대구시국회의 “윤석열은 대통령직에서 손 떼고 퇴진하라”
노화 척도 ‘한 발 버티기’…60대, 30초는 버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