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데라제과점이라는 곳이 있었다. 지난번 칼럼에 이어 다시 빵 얘긴데, 빵 중의 기본이라는 식빵이 유난히 맛있는 집이었다. 커스터드크림이 가득 들어간 노란 크림빵은 유난히 고소하고 부드러웠고, 달고 포근한 카스테라는 말할 것도 없었다. 10살 무렵 자주 들락거린 가게인데, 그때까지는 어른 맛이라며 잘 먹지 않던 단팥빵마저 맛있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런데 사실 신데라제과점 빵 중 그야말로 엄지를 척 들게 하는 것은 우유식빵이었다. 말랑말랑한 빵에 딸기잼을 듬뿍 발라 반을 탁 접어서 우유랑 같이 먹으면 조화란 이런 것이로구나, 절로 깨칠 수 있었다. 이름이 왜 신데렐라도 아니고 신데라였는지는 알 수 없다. 어렴풋한 기억조차 없는 것을 보면 아마 빵맛에 정신이 혼미해져 이름의 유래를 묻는 것을 번번이 놓친 게 아닐까 싶다. 얼마 뒤 동네에 크라운베이커리가 들어왔다. 사람들은 화려한 케이크며 다양한 구색에 홀딱 반했다. 기업의 규모 있는 빵집에 밀려 신데라제과점이 사라졌는지 아닌지는 알 길이 없으나 나의 유년기 한 시절을 먹인 그 빵집은 이제 없다.
나의 고향 거리는 나를 먹이는 공간으로 그득했다. 비단 신데라제과점만 사라진 것이 아니었다. 두부 심부름을 자주 갔던 부식가게는 싹 밀려 주차장이 되었다. 뽑기를 해먹던 구멍가게 자리는 칼국숫집을 거쳐 컵케이크 가게가 들어앉았다. 지하에 감자크로켓 파는 가게가 줄지어 있던, 동네 상가 자리에는 10층쯤 되는 빌딩이 세워져 층층이 술집이며 밥집, 피자가게 따위가 들어찼다.
김연수의 단편소설 ‘뉴욕제과점’에서 이런 대목을 읽었다. “지금 고향에 있는 거리는 예전에 내가 살았던 곳이 아니다. 어떤 의미에서 나는 실향민이나 마찬가지다.” 사라진 뉴욕제과점은 소설가 김연수의 어머니가 김천역 앞에서 운영하던 빵집이다. “내가 태어나기 오래전부터 존재했던 고향 거리의 수많은 상점들처럼 뉴욕제과점은 새롭게 바뀐 환경에 적응하지 못하고 1995년 8월 결국 문을 닫았다. 어차피 인생은 그런 것이니까 이걸 비관적으로 생각해서는 안 된다, 고 몇 번이나 다짐했다. 나보다 먼저 세상에 온 것들은 대개 나보다 먼저 이 세상에서 사라진다. 정상적인 세상에서 정상적으로 일어나는 정상적인 일이다. 그러니까 뉴욕제과점이 이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는 일도 그와 마찬가지다.”
동네의 작은 가게들이 자본에 밀려나는 것은 서글픈 일이지만, 구멍가게 자리가 다시 어느 가정을 먹여살릴 칼국숫집이 되고, 신데라제과점 자리에 치킨집이 들어선 것에 대해서는 아쉬워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내 추억의 공간이 영원하길 바라는 것도 이기심일 테니까. 무언가 나보다 먼저 사라질 수 있다는 사실은 서글프지만 이제 인정할 때도 되었으니까.
이왕 소설에 한참 기댄 글이니 몇 문장 더 빌려와보자. “이제는 죽어서 떨어져나간, 그 흔적도 존재하지 않는 자잘한 빛, 그 부스러기 같은 것이 아직도 나를 규정한다는 사실은 놀랍기만 하다.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해서 사라졌다는 말은 아니다.”
신소윤 기자 yoon@hani.co.kr한겨레21 인기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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