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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타는 성화를 던져라

여덟 번째 전시품- 1956년 멜버른 올림픽 가짜 성화
등록 2012-06-27 11:48 수정 2020-05-03 04:26
한겨레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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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20일, 이승기가 2012 런던올림픽 성화 봉송을 위해 출국했다. 총 8천여 명의 주자 중 이승기는 6월23일 맨체스터에서 성화를 들고 달린다.

성화 봉송은 언제부터 시작한 이벤트일까. 성화는 고대 그리스 올림픽에 피워놓은 불에서 기원한다. 그리스 신 프로메테우스가 올림피아 신전에서 훔쳐 인간들에게 선물한 불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다. 1936년 베를린올림픽 때 올림피아에서 이 성화를 채화한 뒤 베를린까지 달려 개회식에 점화하는 성화 봉송을 시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유대인 혈통의 스포츠 역사가 카를 디엠의 제안이었다는 설과 독일 나치의 전략이었다는 설이 공존하고 있다. 이후 제2차 세계대전 때 베를린올림픽 성화 봉송 코스의 역순으로 나치의 점령이 현실화돼 나치의 홍보 수단으로 사용됐다는 비판을 받았다.

이런 탄생 배경에 더해 시대의 흐름에 따라 국제적 이슈가 증가하자 성화 봉송은 종종 정치적 발언을 위해 방해받기도 했다. 올림픽 정신에 위배되는 정치적·사회적 문제에 대해 항의하기에 더없이 좋은 상징성을 띠고 있기 때문이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중국은 대륙의 기상으로 13만7천km 구간에서 봉송을 진행시켰다. 그러나 중국은 당시 티베트를 비인권적으로 탄압하고 있었고, 전세계가 이를 주목했다. 터키 이스탄불에서는 위구르인들의 격렬한 시위로 성화 봉송에 문제가 생겼고, 영국에서 선정된 봉송 주자들은 봉송을 거부했다. 세계 곳곳에서 시위대가 성화 봉송을 저지했고, 한국에서는 시위대와 중국 유학생들로 구성된 애국시위대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성화의 역사를 통틀어 가장 기념할 만한 성화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1956년 멜버른올림픽의 가짜 성화다. 독일 나치에 의해 고안된 파시즘의 홍보 수단으로서 성화를 인식하고 이를 조롱하기 위한 퍼포먼스였다. 오스트레일리아 시드니의 세인트존대학 수의과 학생이던 배리 라킨과 그의 친구 8명이 참여했다. 그들은 의자 나무에 은색 페인트칠을 하고 거기에 건포도 푸딩 깡통을 매달아 가짜 성화봉을 만들었다. 그러고는 위아래로 흰색 속옷을 입고 가짜 성화를 봉송했다. 이는 1948년 제2차 세계대전 종료 뒤 12년 만에 개최된 올림픽인 런던 대회에서 제1주자인 그리스의 코포랄 디미트렐리스가 군복을 벗고 올림픽의 평화정신을 되새기는 뜻에서 입었던 것과 같다. 그들은 경찰의 보호까지 받으며 시드니 시청까지 도착해 시장에게 건넸고, 시장은 연설을 시작했다. 그들이 빠져나간 뒤 실제 성화가 시청 앞에 도착하고서야 사람들은 그것이 가짜 성화임을 알아차렸다.

성화를 경매에 붙여 논란이 된 이번 런던올림픽이나 성화 주자 지원자들에게 돈을 받아 비난받았던 로스앤젤레스올림픽처럼, 올림픽 개최국이나 위원회가 만드는 역사보다, 내게는 중국에 반발했던 시위대나 배리 라킨 같은 시민들이 만든 성화의 역사가 훨씬 올림픽 정신에 어울려 보인다.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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