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스포츠를 다 할 줄 안다면 인생이 꽤나 풍요로워질 거라고 생각한다. 운동신경이 지독하게 둔한 주제에 스포츠라면 관람보다 직접 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이런 내 성향은 넷째이모가 길러줬다고 할 수 있다. 이모는 어떤 상황에서 누구와도 즐겁게 어울리려면 각종 운동의 룰과 기본 자세를 아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아주 어릴 때는 피구와 발야구, 길거리 농구나 약식 축구 같은 것을 했다. 어린이날이면 외가 식구들이 모두 모여 3살짜리 동생부터 70대 조부모님까지 골고루 넣어 팀을 짜서 체육대회를 했다. 사람들이 모여들어 구경하다 응원전으로까지 번지곤 했다. 나는 언제나 ‘찐따’ 같은 몹쓸 말을 들으며 놀림받을 정도로 못했다. 그러나 농구를 럭비처럼 하고 노마크 찬스에 헛발질을 했던 그 시간이, 내 정체성의 일부를 형성해버렸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자 볼링장에 갔다. 11파운드 공을 들 힘이 있는 언니, 오빠가 이모들과 내기 볼링을 치는 동안, 나와 작은언니는 뒤에서 빈손으로 기본 동작을 연습했다. 하나, 발을 내딛는다. 둘, 눈높이까지 공을 들어올린다. 셋, 오른손을 뒤로 뺀다. 넷, 공을 놓아주듯 굴리며 왼손은 옆으로 펼쳐 수평을 유지한 채 끝까지 공을 본다. 태릉선수촌의 만년 후보 선수가 된 심정으로 연습을 끝내고 돌아오면, 언니와 나는 아직 손이 작은 것을 한탄하며 이불 속에서 울었다. 중학교 때부턴 포켓볼과 사구를 쳤다. 주워다놓은 탁구대에서 탁구의 기본 동작을 배웠고, 이모는 도장에서 배워온 쿵후를 이불을 깔아놓고 가르쳤다. 방학이면 수영장에서 개헤엄을 쳤다.
그러나 권투를 하려면 줄넘기를 오지게 해야 하고, 검도를 배우려면 목검을 잡기 전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만 한 달간 연습해야 하듯 어느 스포츠나 단계별로 익혀야 할 고난의 기간이 있다. 그걸 극복하지 못했기에 내 스포츠 역사는 언제나 ‘야매’ 외길을 걸어왔다. 연습만 하다 승부는 시도도 못해보았다고 할까.
그런 면에서 닌텐도 게임 ‘위 스포츠’는 내게 축복 같았다. 그렇게 간편한 방식으로, 그러나 몸을 직접 움직여서 승부를 할 수 있다니. 3년 전 바나나킥을 안주로 소주를 마시고 펑펑 우는 날이 이어지던 그때, 어이없게도 나와 친구가 제일 갖고 싶어 하던 게 위 스포츠였다. 마침내 영화를 잠깐 접고 취직을 한 친구는 정말로 그걸 샀다. 우리는 그해 크리스마스이브에 테니스와 권투로 승부를 가렸다. 미국 텍사스에 있는 의과대학에서 위 스포츠에 대해 운동효과가 없다는 결과를 내놨든 말든 상관없는 일이다. 그때 우리가 원했던 건 몸을 움직여 승부를 내는 것, 그리고 승리든 패배든 명확한 감정에 도취되는 것, 결코 될 수 없는 누군가 돼보는 것이었으니.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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