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수영복은 아마도 스포츠사에서 가장 큰 이변을 만들고, 가장 빠른 속도로 퇴출된 물건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 전신수영복은 0.1초라도 기록을 단축하려고 삼각팬티나 반신수영복을 입고 온몸의 털을 밀면서까지 저항을 줄여보려던 선수들에게 획기적인 아이템으로 등장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나온 세계신기록 25개 중 23개가 전신수영복을 입은 선수들에 의해 기록됐다.
문제가 된 것은 2009년 로마 세계수영선수권대회였다. 2009년 로마 대회에서는 베이징올림픽 노메달 선수였던 독일의 파울 비더만이 아레나사의 ‘X글라이드’를 입고 경기에 나서, 수영 황제 마이클 펠프스를 제치고 자유형 200m 금메달을 차지했다. 그는 스스로 “신기록 중 2초는 수영복 덕분”이라고 말해 논란의 중심에 섰다. 펠프스는 전신수영복이 금지되기 전까지는 경기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고, 반신수영복을 입던 박태환 선수는 전신수영복을 입겠다고 선언했다.
2009년 8월, 의 이언 심슨 기자는 ‘보디콘돔’, 즉 전신수영복의 효과를 체험해보기로 했다. 수영선수에 코치까지 역임했던 심슨의 말에 따르면, 전신수영복은 입는 데만 15분이 걸리고 혼자 지퍼를 올릴 수 없어 도와주는 사람이 필요하다. 벗을 때는 손가락 관절 네 군데에 상처를 입을 정도로 힘들다. 입수 전 스트레칭만으로도 엉덩이 부분이 찢어질 정도로 압박이 심하다. 근육을 압박해 몸을 ‘꽉 눌린 소시지’처럼 유선형으로 만든다. 이 과정은 의 스칼렛 오하라가 코르셋을 입는 장면을 보는 것처럼 흥미진진한 한편 안쓰럽다.
그러나 그 고통을 참을 만한 가치는 충분해 보인다. 심슨은 기사에서, 일단 물속에 들어가니 부력이 좋아 금방 떠오르고 미끄러운 느낌이 좋았다고 썼다. 무엇보다 50m를 평소보다 3초나 단축된 28.73초에 주파했다.
심슨의 기사가 결정적 영향을 끼쳤으리라 생각하진 않지만, 결국 선수들의 기량 문제가 아닌 ‘장비 싸움’ ‘기술 도핑’이라는 비난과 압박이 거세지자 세계수영연맹(FINA)은 2010년 1월부터 전신수영복을 금지하기로 했다. 수영복 재질은 직물로 한정되고, 남자 선수는 허리부터 무릎까지, 여자 선수는 어깨부터 무릎까지로 수영복이 차지하는 면적도 제한됐다. 펠프스처럼 이제야 ‘수영복이 아니라 수영에 대해’ 얘기하게 됐다는 반응이 있는 반면, 수영에 대한 사람들의 관심과 선수들의 기록 향상, 관련 산업의 발전을 저해하는 과민 반응이라는 반응도 있다. 여전히 경제나 기량 면에서 약소국이라 장비 개발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선수들에게 균등한 기회를 주고 공정한 경쟁을 하기 위해 필요한 조처라는 관점도 있다. 어디까지가 선수를 돕는 ‘과학’이고 어디부터가 ‘기술 도핑’인지, 이런 변화가 선수들이나 스포츠 팬들에게 어떤 영향을 끼칠지, 여러 사정이 얽힌 복잡한 문제다. 두 달 앞으로 다가온 런던올림픽 수영 경기를 보면 조금이나마 힌트를 얻을 수 있을까.
김지현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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